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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19. 2024

인간의 본질은 이야기에 있다

1차 인터뷰

18.03. 2024.

경복궁 근처의 수제 맥줏집


A : 인터뷰어

B : 인터뷰이

편의상, 순서는 A-B로 꾸렸음.




- 선배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죠?

- 나는 서울 토박이예요. 생각보다 서울 토박이는 귀한데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서울의 종로에서 살았다고 해요.

-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 나는 감정평가사로 19년 동안 재직 중입니다.

-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요?

- 솔직히 말해서 평범한 수준. 내 직업이 엄청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내 생계를 위해서 적절한 수입을 벌고 있어서 그 부분에 관해선 만족하는 수준이에요. 다른 부분에선 약간 모자란 거 같아.

- 어떤 사람들은 직업에 만족해야 행복하다고 하는데 선배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 만족이라. 나는 사람들이 이래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 직업에 꼭 만족해야 돼? 대충 다닐 만하면 된 거 아냐? 솔직히 말해서 돈 벌러 직장 다니는 거지, 그런 거 아니면 누가 남의 일을 대신 하고 싶겠어요?

- 그럼, 직업의 선택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 다른 것들을 참아내고 다닐 만하냐가 중요하죠.

이를테면,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점 하나, 본인이 미친놈인지 모르는 족속들과 부딪혀야 하는 점 하나, 이 연봉으로 내가 얼마큼 생활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 하나.

-그렇다면, 그건 타협에 가까운 것이네요?

-그렇지. 사실, 우리에게 선택이랄 게 뭐가 있나요? 대부분 타협이지. 날 때부터 선택하지 못했잖아.

태어나보니, 우리 집이었고 우리 부모님이었어. 그러니 현실과 타협하는 거죠.

- 왠지, 그 타협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물론이죠. 내가 가진 한계선을 명백히 알고 있어야 탈이 안 나요. 다 같은 사람이니까 다니다 보면 괜찮아질 거 같죠? 아니에요. 생각보다 직장 동료 때문에 이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인적 관리에 그렇게 돈을 쓰는 거야. 써도 미친 자는 계속 나타나거든. 일종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스스로 계속 물어봐야 해. 그래야 적응을 하든 문을 열고 나가든 해요.

- 매체에서 줄기차게 선전하는 것이기도 하죠. 나를 찾아라. 나를 알아라. 선배님은 스스로 질문을 하며 자신에 대하여 공부했나요?

- 일단, 내가 나를 파악한 건 부모님이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줄 때부터였어요.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의 뜻이 궁금했고 부모님에게서 그 뜻을 듣게 되었지. 그렇게 나를 구성하는 하나가 채워진 거죠. 

그다음부터는 부모님과 형제들, 우리 집안의 어른들이 나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어요. 나는 이런 집안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 있고 위치는 어디쯤이다, 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말이지.

그 후에는 쉬워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예술 작품으로 나를 알게 되었고 내가 어떤 연예인과 어떤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니 나라는 사람의 기호에 대해서도 알게 됐죠.

그렇게 하나씩 나를 알아가며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 모두 외부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는 말들은 잘못된 걸까요?

- 맞아요. 나라는 자아는 최초로 타인을 만나야만 만들어지는 거예요. 거울 없이 나는 나로 자랄 수 없어요.

엄마와 아빠를 보며 행동과 표정을 따라 하고 또래집단에선 정서를 공유하죠.

그러면서 내가 나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요.

어떤 정보를 통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조립하고 매개체를 찾아내는 거죠.

나는 진정한 자아 따윈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를 채우고 비워내며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건, 사족인데 내가 그래서 불교가 좋아. 비우라고 하잖아. 내가 생각할 때, 나를 비워내야 채울 수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 그럼, 성인이 되어서도 우린 계속 외부의 것들로 나를 만들어 가는 건가요?

- 네, 문제는 우린 비우질 못한다는 거예요. 계속 채우기만 해.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말에 그런 책을 읽고 매체를 접하면서 나처럼 보이는 걸로 치장을 해요. 그런데 그게 나의 자아냐? 아니지, 그냥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중에서 좋아서 고른 기호일 뿐이죠.

-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자아는 만들어지고 선택하고 기호에 의해서 달라지기도 하네요. 그럼, 본질은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라고 봐도 될까요?

-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는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 이 술집 안에 있는 누구라도 붙잡고 당신에 대하여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해 봐요. 간결한 대답이라도 서사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이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특징이죠.

인과율을 사랑하는 포유류,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의 근원을 알아야만 하는 동물. 그래서 자아에 서사가 생기는 것이고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도 부르는 거겠죠.

- 그럼,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는 타인에게도 서사를 부여할까요?

- 당연하죠. 내가 누군가를 싫어할 때는 근원부터 시작하여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나의 기호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고 내가 정한 한계선을 벗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다로 끝이 나야 감정에 정당성이 부여됩니다.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어떤 관계를 정의할 땐 항상 서사의 구조를 가지고 설명하게 돼요.

- 생각해 보니, 저 또한 그렇네요. 제가 선배님을 존경하는 이유도 서사를 가지고 있네요.

- 뭐야, 갑자기 고백하고 그래 짜증 나게. 그만 웃어, 정들어.

- 그럼,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선 우리는 항상 주인공인 걸까요?

- 나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난 이 말이 지겨워.

어차피 인간은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이고 이기적이지.

대학을 다닐 때, 나는 무수히 많은 시험에 낙방했어. 졸업하고 나서도 2년 동안은 백수였어요.

그때, 깨달았어. 내 이야기 속에서도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이야 말로 진정 위험하다는 사실을.

내가 나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되려면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죠? 만 차례 이상 담금질을 해야만 그 반열에 올라서는 거야.

- 나의 이야기인데도 타인이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 그렇죠.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거든. 네 인생이니까 너만의 것? 아냐.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구, 내 동료, 나의 가정 등 모두 연결된 이야기예요.

나의 자아를 설명할 때, 나를 둘러싼 것들에게서 탈출할 수 없듯이 나의 이야기는 나를 둘러싼 사람과 사물의 이야기인 것이죠.

-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선배님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이참에 출가를 하시는 건 어떠세요?

- 출가를 하기엔 내 자아가 지나치게 세속적이야. 내가 말했잖아. 내 직업에 만족하는 유일한 부분이 수입이라고.

이런 사람이 출가하면 또 다른 '풀소유'가 되는 거예요.

-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시원하게 한 잔 하시죠.

- 그래, 안주 좀 더 시켜라. 말을 하도 했더니 배가 고프다.




우린 모두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며 결말이 동일해 보이지만 받아들이는 일이 다르다.

내가 주변 사람을 인터뷰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나를 바로 알고 싶어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제대로 알려면 내 주변을 아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혼자 사유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나의 가족과 아내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유를 공유해 갈 것이다.

언젠가 죽음에 이르기 전에 내가 나를 바로 알고 평온한 잠에 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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