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Oct 06. 2024

정분의 시작

당일

1. 당일


"잡아! 얼른 잡아! 꽉 잡아야 돼!"

"아, 진짜, 씨. 지금 해, 지금! 발버둥 친다고!"

엄마는 칼을 높이 쳐들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딸아이는 미꾸라지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몸을 휙 뒤집더니 그대로 방문을 벗어난다.

아들은 도망가는 동생을 보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발버둥 친다고 했잖아! 잡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엄마는 칼 든 손을 내려놓고 큰 숨을 쉬었다. 그리고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다시 칼을 들었다.

"다시 해. 이번엔 안 놓쳐. 이 악귀 새끼야! 다시 해보자!"

그러나 분개하는 엄마와 달리 아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땀에 젖은 티셔츠를 앞뒤로 흔들며 열을 식혔다.

베란다 바깥은 분명 바람이 불고 있으련만 집안은 온통 뜨거운 입김으로 가득했다.

하긴, 그것도 알 길이 없다.

밖으로 향하는 창문엔 잿빛의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 아들의 눈에 거실의 풍경이 비친다.

에어컨은 꺼져있고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다.

엄마는 냉큼 일어나라는 눈빛으로 째려보았지만 아들은 미동도 없었다.

대신 식탁 아래에 축 처진 강아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초코.

강아지의 이름이었다.

어느 날, 동생은 학원에서 돌아오며 품에 강아지를 한 마리 안고 왔다.

버려진 강아지라며 자신이 돌보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동생이 좋아하던 초코는 가족의 칼을 맞아 죽었다.

아들은 초코의 사체를 보더니 겁이 덜컥 났다.

"이거... 이거, 정말 맞는 거야?"

아들이 고개를 들어 엄마에게 묻는다.

침을 꿀꺽 삼키며 콧등의 땀을 훔치고 엄마의 대답을 기다린다.

엄마는 칼을 식탁 위에 던지듯이 올려 두더니 아들을 빤히 보았다.

우리, 착한 아들.

엄마는 아들의 선한 눈동자를 보며 조용하고 말없던 아들을 떠올린다.

"알아. 나도 마음이 아파. 하지만 우리 손으로 끝내는 게 맞아. 그러지 않으면 분명히 다른 사람 손에 죽을 거야."

"후... 시발..."

엄마의 간절한 말에도 아들의 입에선 욕이 절로 나왔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악귀가 씌웠다고 해도 여전히 동생이었다.

아니, 분명히 동생의 육신을 가진 내 동생이 맞다.

어떻게 죽이기 위하여 붙잡으라는 말인가.

엄마가 칼로 내려치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정말, 동생이 미친 게 맞는 걸까?

아니, 악귀가 씐 게 맞긴 한 걸까?

회한에 빠진 아들을 채근하던 엄마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딸은 잽싸게 뛰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갔다.

현관문을 엄마가 가로막고 있으니 별 수가 없었다.

"진짜 미쳤어! 다 미쳤어! 어떻게, 어떻게 초코를 죽일 수가 있어?"

딸은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그 작은 강아지를 죽일 수가 있을까.

우리와 함께 살던 가족이었던 동물을 그렇게 무참히 말이다.

"나더러 미쳤다고? 악귀가 씌었다고? 아니, 미친 건 엄마야, 너네라고!"

"저, 저, 미친년..."

딸의 악다구니에 엄마는 바로 욕설로 반응한다.

아들은 그런 모습도 지겨웠다.

이젠 완전히 지쳤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우리 가족은 망했다.

완전히 콩가루가 되어 박살 나버렸다.

아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큰 숨만 내쉬었다.

이런 위급한 순간에 혼자만 내빼버린 아버지가 생각났다.

"비겁한 새끼."

아들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원망을 쏟아냈다.

동생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잡으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부모로서 책임을 저버린 게 아닌가.

"억?"

엄마는 외마디 비명을 쥐어짜듯이 내었다.

또 시작인가.

엄마는 이런 행동을 접신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들도 딸도 엄마의 말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접신이라는 단어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했지만 ‘접신을 행한다’는 그 모습이 적응하기 힘들 만큼 기괴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눈의 흰자위를 까더니 곧 손과 발을 기묘하게 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병을 앓는 듯한, 혹은 무거운 무언가를 끌고 가는 듯 힘겨운 신음을 내었다.

이내 엄마의 입에서 그르렁 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겨웠다.

아들은 이런 모든 것들이 지겹고 싫었다.

정말, 우리 집에 악귀가 내려온 걸까.

그렇다면, 왜? 왜 우리 집일까.

아들은 접신한다는 엄마를 보며 고민에 빠졌지만 곧 다시 일어나야 했다.

엄마가 낮고도 거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또 무언가가 엄마 몸에 내려온 것이다.

"커다란 찜통을 가져와. 그리고 악귀가 실렸던 사체를 청결하게 하라."

아들은 베란다에 있는 양은으로 만들어진 들통이 떠올랐다.

급히 베란다로 간 아들이 물었다.

"이거?"

"어서 가져와!"

엄마는 으르렁대며 소리를 쳤다.

아들은 양은 찜통을 꺼내 엄마 앞에 내놓았다.

엄마는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그 통을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TV의 슬로 모션 같았다.

엄마는 천천히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가장 센 불로 물을 끓이려는 것 같았다.


딸은 한동안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엄마가 주방에 계속 있는지 궁금했다.

문 소리가 나지 않게 살짝 쥐고 아주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정면으로 현관문이 보였고 오른쪽에 엄마가 서 있었다.

여전히 찜통을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아들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빠만 피하면 바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

딸은 도망가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숨을 가다듬고 뛰쳐나갈 다짐을 했다.

그러다 문을 쥔 자신의 손등이 온통 시퍼런 것을 보자 눈물이 났다.

지금 딸의 온몸엔 멍이 들어 있었다.

엄마와 오빠에게서 도망치느라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었다.

"미쳤어,진짜..."

갑자기 죽은 초코가 생각났다.

아버지란 사람은 미친 가족들을 말리지도 않고 함께 초코를 죽였다.

자격 없는 인간.

딸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마침, 아들은 일어나 엄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대로 정면으로 달리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다.

딸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체를 청결하게."

엄마가 지독히 낮고 거친 음색으로 반복하여 말했다.

아들이 식탁 아래에서 강아지의 사체를 주워 식탁에 올렸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큰 식칼을 건네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여전히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칼을 왼손에 꽉 쥐고 있었는데 딸이 몰래 방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입하고 있었다.

딸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밖으로 나가 경찰에 신고하고 이 지랄 맞은 집에서 탈출할 계획이었다.

탁.

끄그그 그 그 극.

탁.

끄그그 그 극.

굉장히 기분 나쁜 소리가 딸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텁.

곧이어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수분끼가 있는 어떤 물체가 마룻바닥에 떨어져 척하고 달라붙는 소리였다.

딸은 한 손을 현관문의 손잡이로 뻗으면서 잠깐 엄마와 오빠를 보았다.

"아."

딸은 외마디의 탄성을 내었다.


그것은 사실 비명에 가까웠으나 커다란 충격으로 오히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식탁 아래에 떨어진 그것은 까무잡잡한 털뭉치가 피에 젖은 모습으로 기다란 모양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딸의 눈이 빨갛게 타올랐다.

"죽인 것도 모자라서 시발..."

엄마는 딸을 향해 싱긋 웃으며 보란 듯이 칼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식탁 위의 어떤 사체를 향해 내리쳤다.

탕!

쇠붙이가 단단한 것에 밀려나 튕기며 굉음을 내었다.

딸은 한 뼘 남짓 남은 거리에서 손잡이를 향하던 손을 거두어 주먹을 쥐었다.

도망가기 위하여 남겨두었던 힘을 엄마를 저지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다시 한번 칼을 높이 들었다.

딸을 향한 비웃음.

한쪽 입꼬리가 한껏 치솟은 괴상한 표정.

딸은 엄마가 그렇게 주장했던 빙의를 믿기로 했다.

저 여자는 나의 엄마가 아니다.

딸은 신발장의 문을 열어 서랍을 뒤적거렸다.


기다란 십자드라이버가 눈에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