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Nov 11. 2024

정분의 시작_4

4. 진술, 하나

<이반장>

이상한 거죠. 그 ,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좀 싸한 느낌.

김사장의 얼굴에서 그게 느껴졌습니다.

자기 대신 가달라는데, 기분이야 이상했지만 뭐, 들어줬죠.

그래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죠.

우리 집에 5분 거리에 있거든요.

내가 지금 가는 길인데, 그 사이에 당신이 가서 좀 확인해 보라고 했죠.

아, 그랬더니, 아내가 황급하게 다시 전화를 한 거예요.

그 건물에 사는 몇몇이 나와서 웅성대고 있더라는 거죠.

거기 지금 난리 난 것 같다고, 집 안에서 큰 싸움이 난 것 같다고 말이죠.

그래서, 경찰에 신고부터 하고 간 겁니다.

아내 보고도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형사는 굳은 얼굴로 이반장에게 담배를 건넸다.

기이하고 처절한 강력 사건을 최초로 목격한 남자의 얼굴엔 망연자실한 표정이 가득했다.

도대체 그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거기 딸내미가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거예요,

그래서 문을 박살내고 들어왔죠.

네, 119랑 경찰 하고요.

아주 난장판이었어요.

딸내미는 엄마한테 깔려 있고 아들놈이 글쎄, 장도리를 들고 있더라고요.

아주, 미칠 노릇이죠.

어휴, 그런데 그 거실이랑 작은 방으로 털뭉치 같은 게 막 떨어져 있는데!

그게 거기에서 키우던 강아지 사체였어요.

머리는 삶아져 있었고.

진짜, 그게 무슨 짓인지.

그게, 서로 죽이려고 싸우고 강아지도 토막 내고. 아니, 그게 사람입니까?


<친부>

같은 시각, 다른 방에선 김사장이 진술을 하고 있었다.

네모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남자의 눈에는 서로 다른 목적이 보였다.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입이 열리기를 바라는 그 순간, 뿌연 먼지가 백열전구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형사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아내는 원래 이상한 사람입니다.

나 아니면, 가정도, 아니 남자와 연애도 못 할 팔자라고요.

교회를 다니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실패했어요.

그 집안이 원래 무당 집안입니다.

장모님도, 외할머니도 모두 무당이에요.

그에 비해 우리 집안은 기독교를 믿습니다.

나는 교회에도 잘 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에요.


그의 말에 실소를 지으며 형사가 물었다.

어떻게 결혼했냐고요?

뭐, 애절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집안끼리 안면이 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우리 집안이 사랑으로 아내를 감싸 안은 거죠.

아내는 원래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곤 했어요.

처녀였을 적에도 그랬다고 합디다.

어쨌든, 딸아이가 수능을 마치면서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했는데 그래도 소용없더군요.

그러다, 이런 사달이 난 겁니다.

며칠 전부턴 단식을 하며 기도를 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엄청 시끄럽게 다투더라고요.

하도 시끄러워서 무슨 일이냐고 나가봤더니, 강아지를 죽이고 있지 뭡니까.

엄청나게 놀랐어요.

아내의 미친 병이 애들한테까지 전염이 된 건지, 다들 제정신이 아니더군요.

강아지에게 악령이 붙었다나, 뭐라나.

나는 한참 말리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애들이 어찌나 살벌하게 나를 째려보던지.

심장이 차갑게 식을 정도로 날 째려봤어요.

악의가, 살의가 가득한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출근한 거예요.


그래서 출근했다는 김사장의 말에 형사는 약간의 짜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까?


솔직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반장을 나 대신 집으로 보낸 건, 서로 찌르고 싸운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사님이라면, 가족끼리 그렇게 싸운다는 게 믿기겠습니까?

그래서, 이반장을 대신 보냈고 나는 일처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출발하려고 한 겁니다.



<친모>

그녀는 당당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굳은 얼굴로 음절마다 힘을 주어 말했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비정함마저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악귀가 저지른 짓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건 악귀가 강아지에게 들렸고 죽고 나선 딸에게 갔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접신하여 신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형사는 그녀의 직업이 무당이냐고 물었다.

그 여자가 내뿜는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발바닥에 땀이 나 스타킹을 갈아 신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뇨, 나는 무당이 아니에요.

나는 신의 사자이고 대변자입니다.

나는 하늘로 돌아가기 위하여 준비하다 악령을 죽여 깨끗이 하고 내세에 태어나라는 계시를 받았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고 영적인 에너지를 채운 겁니다.

우리 가족은 나를 위시하여 모두 악령과 싸웠어요.

우린 함께 힘을 합쳐 강아지를 죽였고 그 영을 깨끗해지도록 분리하여 삶았습니다.


남편 분은 출근해서 그 시간에 집에 없었다고 하던데요?

형사는 아예 구두를 벗어 신발 위에 발을 살짝 올려두며 물었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뭘 알겠어요?

그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일 뿐, 나와 같은 대변자는 아니니까요.

그는 겁이 나서 도망갔을 뿐이고 그게 전부예요.

딸은 분명히 빙의 됐었습니다.

그 악귀가 어찌나 나를 향해 달려들던지.

형사님들은 모를 거예요.

사탄 들린 자가 얼마나 강성한지.

어쨌든, 나와 악귀는 싸웠고 아들은 날 도왔어요.

딸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하던데, 그럼 악귀는 사라졌나요?


악귀 들린 사람 치고는 너무 멀쩡하던데요?

형사는 병원으로 후송한 딸의 상태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심, 그 아이가 살아갈 일이 걱정스러웠다.


하긴, 형사님들이나 의사가 뭘 알겠어요.

눈빛이 순해진 거면 악귀가 빠져나간 거니까... 아, 그래요?

역시 우리가 싸운 덕분에 악귀가 빠져나간 모양이네요.

신의 전지전능함에 감사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정분의 시작_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