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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Nov 12. 2024

정분의 시작_5

5. 진술, 둘

아들과 딸의 진술을 들으러 간 날은 사건이 벌어진 이튿날이었다. 

엄마는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그러나 아들은 스크루 드라이버에 다리를 세게 찍혀 구멍이 났고 딸은 경미한 골절을 입고 말았다. 

그래서 병원으로 후송하여 치료를 먼저 받게 하였다. 

형사들은 다음 날 아침, 청소년 전문가를 대동하고 병원을 찾았다. 


<아들> 

엄마는 교회를 다녀요. 

무당이나 그런 건 아닌데 접신이나 빙의에도 관심이 꽤 많고요. 

평소에도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하긴 했는데, 근래 들어 매우 심해졌어요. 


언제부터 그러셨니? 


대략, 한 달 정도? 

네, 그 정도 된 것 같아요. 

어느 날,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항상 성경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고요. 

종종, 교회 사람들이 집에 와서 기도를 하곤 했어요. 


그래? 너도 함께 기도했니? 


저요? 전 종교를 믿지 않아요. 

동생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는 종교는 없지만 뭔가가 세상에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엄마가 접신을 한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정신병 같기도 하고, 뭐, 스스로 접신이라고 하니까 그런 거겠죠. 

어쨌든, 한 달 전부터 엄마는 확실한 계시를 받았다면서 자기가 곧 죽을 거라고 말했어요.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씀하셨다는 거니? 


네, 죽는다고 했어요. 

곧 하늘나라로 간다고, 그래서 이승에서의 짐들을 정리한다고요. 

열흘 동안 천천히 짐들을 밖에다 내놓았고 저도 도왔어요. 

동생은 전혀 돕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죠. 

아마, 그게 화근이 됐을 거예요. 

엄마랑 다툰 거 같던데,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동생의 영혼을 정화해야겠다면서 단식기도를 했어요. 


엄마가? 


네. 며칠 전부터는 우리까지 기도를 하라고 하더니,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못 마셨니? 


아뇨, 마셨죠. 

엄마 몰래 이것저것 먹었어요. 

동생은 엄마가 기도하는 동안에 뾰로통하게 있었지만 저는 그냥 협조해 줬어요. 

귀찮기도 하고 그냥, 엄마가 하고 싶다는데 도와준 거죠. 

그런데 어제는 많이 심각했어요. 

엄마는 우리 집안의 악령과 정화에 대하여 우리가 모여서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그러라고 말하며 자신은 빼 달라고 했고요. 


아빠의 말을 엄마가 들어주셨어? 


네, 아빠는 이미 정화된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밤새 물도 안 마시고 기도만 하는데 아주 죽겠는 거예요.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고함을 쳤어요. 

강아지에게 악령이 갔다면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동생은 졸고 있었고 전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접신했다면서 강아지를 정화해야겠다고 두툼한 책을 들고나가는 거예요. 

식탁 옆에 강아지 소파 위에서 초코가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책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저에게도 당장 이 강아지를 정화하라고 소리 지르면서 아주 난리를 쳤어요. 

그 눈이 엄마가 아니더라고요. 

그냥,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는데 저도 책을 들고 와서 강아지를 때렸어요. 

그랬더니 초코가 막 울고 짖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는데, 동생이 그 소리를 듣고 깬 거예요. 

동생이 우리를 붙잡고 초코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책을 던지고는 주방에서 칼을 찾아왔어요. 

엄마가 휘두른 칼에 초코가 맞아서 피가 막 흐르고 동생은 소리를 지르고 지옥 같았어요. 


정말, 무서웠겠구나? 아버지는 뭐 하고 계셨니? 


아버진 그때 나오셨어요. 

네, 맞아요. 자고 있었죠. 

나와서 자초지종을 물으셨는데 엄마가 강아지에게 악령이 씌웠으니 정화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자기가 출근한 뒤에 하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동생이 아주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서로 욕하고 험한 소리가 막 오가고 난장판이었어요. 

아빠가 좀 닥치라고 소리를 질러서 우린 다 입을 다물어서 조금 진정이 되었는데 아빠가 물었어요. 

그러니까, 초코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물었고 엄마에게서 칼을 빼앗아 초코를 찔렀어요. 

동생은 초코를 품에 안고 울고 불고 난리였죠. 

피도 엄청 묻었어요, 걔. 

엄마는 역시 아빠는 지혜롭다면서 이제 강아지를 6등분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게 악마의 숫자라면서 악귀를 6등분해야 저주를 막을 수 있다고요. 

동생은 피를 닦으러 욕실로 갔는데 애가 아주 이상해 보였어요. 

온몸을 덜덜 떨면서 양팔을 축 늘어뜨렸는데 엄마는 그걸 보곤 정신 차리라고 말했어요. 

악귀에 현혹되지 말라고. 

그런데 진짜 갑자기 동생이 엄마의 목을 조르는 거예요. 

그 눈빛이 아주 살벌했어요.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표정으로. 

그래서 저는 급하게 달려들어 동생을 엄마에게서 떼어냈어요.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엄마는 길길이 날뛰었죠. 

거보라고, 악령이라고, 자기 말이 맞지 않냐면서요. 

어쨌든, 아빠가 출근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동생을 죽이려고 들진 않았어요. 

아빠가 일하고 오겠다면서 그동안 집안 청소 좀 해놓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무책임하다고 엄청 화를 냈죠. 

솔직히 저도 어이없긴 했어요. 


그럼, 엄마는 그때 동생을 죽이려고 하신 거야? 


네, 엄마는 악귀가 동생에게 빙의했다면서 죽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초코의 시체를 분해해서 삶은 것도 엄마예요. 

저는 그냥 이것저것 달라고 하기에 갖다 준 것밖에 없어요. 

아, 동생은 저도 공격한 거 맞아요. 

근데, 생각을 해 보세요. 

동생이 제 허벅지를 드라이버로 찔렀다니까요? 

보이시죠? 

존나 아파요, 이거. 

화가 안 나겠어요? 저는 죽이려고 한 건 아니지만 엄마는 확실히 죽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네가 엄마랑 같이 먼저 동생을 공격했잖니? 


먼저 공격한 건... 그건 맞죠. 

그래도 역시 엄마가 시켜서 한 거라고요. 

전 엄마가 칼이나 망치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도 망설였어요. 

이게 맞는 건가 계속 의심했다니까요. 




<피해자> 

이 사건의 피해자인 딸은 병실에 앉아 덤덤한 표정으로 형사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눈엔 포기와 회한으로 가득 찬 무언가가 고여 있었다. 

그렇지만 작은 주먹을 굳게 쥐고 진술을 이어가는 그 아이의 태도는 어른스러웠다. 


네, 제가 찔렀어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제 강아지를 죽여 토막 내려했고 저는 혼자였어요. 

아빠는 나 몰라라 하고 엄마는 미쳤고 오빠는 사리분별을 못했죠. 

제가 보기에 엄마는 귀신에 빙의된 게 아닙니다. 

그냥 미쳤어요. 

조상이 무당이었다는 강박과 스스로의 신경쇠약증이 합쳐져 그런 괴물이 된 거죠. 

엄마는 친구도 없고 이상한 종교에나 빠져서는 기도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처벌을 받게 되나요? 


네가 처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넌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정당한 싸움을 한 거로 보이는데?


뭐,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그렇다면 정상참작을 꼭 해주세요. 

전 두 번 다시 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그 사람들과 이별할 겁니다. 


그래도, 가족이지 않아? 


아니요. 그들은 가족이 아니에요. 

전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들과 더 엮이고 싶지도 않아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나요? 

전 지금 고3이에요. 

제 인생을 망칠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제 미래가 더 중요해요. 

꼭, 반드시, 전 그들과 분리되어야 해요. 


병실의 창문 너머 찬 바람이 일었다. 

딸아이는 커다란 반창고가 붙은 손으로 창문을 꼭 닫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하늘로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앞날을 예견하듯이 매서운 공기가 병실 창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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