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햇살아래 바람한줌
Dec 27. 2018
이해를 못했다.
그리고
그건 단단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시절
부모님의 비보에
조문객들이, 친인척들이 왜 웃고 떠들고
시끄럽게 하는지..
또 한편에서 연기하듯
왜 그리 소리내어 우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그 시절로 부터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또 다른 10년이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그건 단단해 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춘기시절에 독기를 품듯 꾹 참고 참았던 것들이
가끔
봇물 터지듯 나도 모르게 툭 튀어올라
눈물로 밤을 보내게 만들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해가 되었다
10여년동안 무소식이던 친구의
부모님 비보소식에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갈 수 있었던 자리에서
그 웃음들이 울음 소리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픈 마음은 친구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 아픔을 위로하는 마음도 조문객의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고
조문객인 나는 친구와 또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올 내일에
이 시간을 내려놓고 잠시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거기에서
친구는 위로에 더한 희망을 배우고 있었고
나 또한 친구에게 내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모님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또 다른 생명들이 기다린다는
희망이라는 내일이 있기에
단단해 질 수 없는 그것을
서로 나누며 웃을 수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