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정리의 힘’을 읽고 정리력 카페에 가입했다. 100일 동안 정리 미션이 주어지는 정리 페스티벌 모집글을 보고 이거다 싶었지만 업무가 몰려있는 때라 망설여졌다. 정리에 대한 갈망은 커져가는데 실천이 안 되니 답답했다.
그러다가 참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방학 때 우리 집 첫째가 친한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온 가족이 반나절을 청소에 매달렸다. 하지만 우리 집은 몇 시간만에 깨끗해질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니었다. 그렇게 청소를 해놓고도 안 깨끗하다고 느꼈는지 첫째는 친구가 오자 “이방이랑 저방 들어가지마. 눈이 썩어.' 하며 방문 앞을 막아섰다. 나는 간식 준비하다가 빵 터졌다. 이방과 저방을 합치면 우리 집의 반인데 대체 어디서 놀라는 것인가.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미안했다. 우리 아들에게 깨끗하고 떳떳하고 사교하기도 좋은 집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정리 페스티벌을 신청했다.
정리 페스티벌은 100일 동안 첫째 날 20리터 봉투 채우기부터 시작해서 100일동안 매일 정해진 비우기/정리 미션을 수행하고 인증 사진과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일 정리방법과 정리에 대한 동기를 다질 수 있는 안내글이 올라온다. 소정의 참가비가 있고, 등업을 할 때마다 간식 선물 쿠폰이 온다. 구체적인 정리 방법을 알려주고, 당근과 채찍으로 나를 인도해줄 프로그램이나 사람이 절실했다. 혼자서는 시작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정리의 요정’으로 불린다. 정말 정리라곤 하지 않는 남편도 더러움을 참지 못해 정리를 하게 만든다는 뜻에서 남편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하하하.
하지만 하루에 15분만 투자하면 되는 간단한 정리 미션들은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성취감은 컸다. 인증사진과 정리 일기를 쓰는 일은 나의 새벽 루틴이 되었고 재밌었다. 정리는 좋은 글감이 된다는 카페 매니저의 말이 맞았다.
100일 정리 일정표 ( 출처: '정리력 하루 15분' 카페)
정리 페스티벌을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나는 벌써 내가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미루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나는 항상 나의 수준과 역량보다 넘치는 일을 짊어지고 낑낑대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리 미션을 매일 꼬박꼬박 하면서 할 일 리스트에 들어있었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았던 다른 일들도 해나가기 시작했다.
고장나서 불편했지만 방치되어있던 물건을 고쳤다. 작게는 독서대 2개를 택배로 부쳐서 고쳤고, 안방 변기에 물이 새던 부분을 고쳐서 청소하지 않아도 더 이상 곰팡이와 물기가 생기지 않았다. 냉장고 문쪽에 깨졌있던양념수납함을 새것으로 주문했다. 가구 as를 신청해서 삐거덕거리던 옷장 경첩을 고치고, 너무 옷을 많이 넣어 떨어진 서랍장 뒷판넬도 고정시켰다. 열 때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어 들어 올려야 겨우 소리가 안 나던 방문을 고쳤다. 이제 힘 안 들이고 조용히 방문을 여닫을 수 있다. 모두 정리 페스티벌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웬일인지 나답지 않은 추진력을 발휘했다. 사실 해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 일들이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파악하고,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쁘지는 않을지 몰라도 ‘살기 편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방치된 물건을 버리고 고쳤는데, 방치되어있던 나를 돌본 느낌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깨진 유리창이어서 너도 나도 함부로 대하던 나의 공간과 시간이 이제 튼튼하고 깨끗한 유리창으로 갈아 끼워지기 시작했다.
공간이 삶과 닮았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무서운 말이었는데 이제는 기대되는 말이 되었다.
물건을 비우기 시작하자 욕심과 불안도 비워지기 시작했다. 불안해서 이것저것 사들이고, 불안해서 이일 저일 하던 내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주방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다.
창고에 뭐가 있는지 다 안다.
그리고 유지가 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아까워하지 않고 잘 나눠준다.
이제 자유시간이 나면 정리하기를 선택할 때가 있을 정도로 정리 자체를 즐기게 됐다.
가장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던 미션은 냉동실 비우기였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널널한 냉동실을 가지게 되었다. 친정엄마가 힘들게 채취하고 데치고 요리하고 얼려 보내준 음식들은 나에겐 사랑이기도 하지만 숙제이기도 했다. 그 부담이 죄책감이 되어 냉동실을 꽉꽉 매우고 있었다. 엄마가 아픈 무릎으로 휘어진 손가락으로 해 준 음식을 상해서 버리는 날에는 음식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과감하게 정리했다. 음식을 받는 것보다 엄마의 사랑을 기쁘게 받는 일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고마움으로 받기 위해선 여유 있게 비워져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면서 친정엄마의 짐과 선물을 자주 만났다. 한 때 큰 집에서 잘 살다가 IMF 이후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집을 줄이고 또 줄였다. 하지만 아무리 좁은 집으로 이사 가도 우리 엄마는 짐을 줄이지 못했다. 엄마가 차마 버리지 못한 짐이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딸의 집에 고스란히 남았다. 나도 엄마같이 못 버리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나는 어느 책에서 너무 중요한 한 줄을 만났다.
'정리를 못하는 것은 유전이 아니다.'
‘나는 안되나 봐.’하는 낙담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던 이 말이 이제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정리 페스티벌을 통해 차근차근 정리 근육을 키워가면서 생긴 확신이다. 물건에 둘러싸여 좁디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나는 못 버리는 병이 있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우리 엄마한테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100일 동안 스스로 알아서 인증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소그룹 채팅방이 있었다. 처음에 소그룹 채팅방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어, 나는 그런 거 해야 되는지 몰랐는데?' 퇴근하면 아이들 먹이고 재우기 바빠서 폰 들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어쩌지?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마지못해 시작한 채팅방이었는데 정체기가 올 때마다 방장님과 팀원들의 댓글과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니 정리를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어서인지 잘 공감해주고 다른 사람도 잘 격려했다. 정리는 심리적인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초보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필수적이다. 이것도 못 버리냐는 내면의 비난하는 목소리보다 지우개 하나, 몽당연필 하나처럼 시시한 물건이라도 버리기로 결심하면 잘했다고 짝짝짝해주는 외부의 목소리가 더 커야 이 긴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다.
정리 페스티벌이 끝난 집을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집에 대한 만족감이 들었다. 사실 우리 집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증 기간 동안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은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 나의 애프터 사진이 웬만한 사람의 비포 사진이었다. 하지만 몸무게는 같아도 지방이 빠지고 근육량이 많아진 건강한 몸처럼 집이 달라졌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얼음을 얼마든지 얼릴 수 있는 넉넉한 냉동실을 갖게 되었다. 주방 위 싱크대가 클린스팟( 싱크대, 화장대, 식탁 등 매일 깨끗하게 치워져야 다음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정해서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어 요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피아노 위에 물건이 쌓여있지 않아서 나도, 애들도 오랜만에 피아노 뚜껑을 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둘째는 어벤저스 테마곡을 쳤다. 가스안전점검 때마다 뒷베란다 보일러 문을 열기 위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문 앞에 쌓여있던 짐을 주방으로 꺼냈었는데, 당당하게 점검받았다. 옷을 많이 버려 입을 옷이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내가 가진 옷이 한눈에 들어와 더 창의적으로 멋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보내 준 제철 나물은 바로 무쳤고, 이웃과 나눴다.
100일간의 정리 페스티벌은 끝났지만, 나는 베란다 정리를 이어갔고, 굿윌스토어에 기증할 박스를 채워나갔다. K점 넘기( 버리기 힘든 난이도 '상'의 물건 버리기 ) 미션 때 고민만 하고 버리지 못한 한복도 같이 기증하기로 했다. 미션 기간 동안 추려둔 아이들 작아진 옷도 동네 친한 동생에게 갖다 줬다. 직장에서도 부서가 옮겨지는 1월에나 짐 이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정리를 자발적으로 했다. 필요 없는 서류를 버리고 파일에 라벨링을 했다. 미션은 끝났지만 내가 매니저가 된 정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아노가 있어도 칠 수 없는 집이었다.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피아노를 치고 싶은 집’으로 만들고 싶다. (피아노 뚜껑 위는 깨끗해졌지만 피아노 선반 위는 아직 물건이 가득하다.) 버리기 작업을 하느라고 정리 작업은 별로 못했다. 이젠 ‘정리’에도 집중해보고 싶다.
내가 삶의 통제권을 뺏기는 일은 집 밖에서도 충분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지쳐서 집으로 온다. 집에서 물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얼마큼 있는지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안정감을 주었다. 불안이 많은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이었다.
정리 페스티벌에 참여하길 참 잘했다.
잠시 멈춰 서서, 방치되어있던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이때는 몰랐다. 정리 페스티벌이 끝나고 6개월이 채 안되어 나는 17년 살던 집을 팔게 될줄은... 비우기가 시작이었다.
(이사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PS. 정리 페스티벌 마지막 미션이었던 후기 백일장에 제출했던 글을 다듬어 썼습니다.
'정리력 하루 15분'카페에서 진행되던 정리 페스티벌은 이제 '1일 1 정리' 카페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