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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Dec 27. 2023

B야, 그냥 흘려들어

불편한 마음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A

비 오는 날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차가 갑자기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바지에 물이 튀었다. 

아.. 앞으로는 우산도 쓰고 우비도 입어야 하나.. 예상을 못 했다. 찝찝한 상태로 학교를 들어간다. 젖은 바지가 다리에 들러붙은 느낌이 싫어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간다. 아 비 오는 날에 여분의 바지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게 나으려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다음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아닌 예상했던 상황으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까.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아.. 엉덩이 쪽도 물이 젖었나. 의자가 왜 축축해지는 기분이지.. 뒤돌아 확인해 보니 착각이었다. 불쾌한 감정은 불쾌함을 낳는다. 불쾌한 착각까지 하게 만든다. 왜 이런 날 평소 보이지 않던 책상 먼지가 보이는 건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분명 어제는 보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보이는 건지.. 오늘 운수 좋은 날이 틀림없다.


“선배, 어제 연락했던 것에 대해 생각은 해봤어?”

“어? 어제? 아.. 면접 팁 물어봤었지.”

“응응. 당장 내일이라 긴장되는데 선배가 전에 그 면접을 봤었다는 얘기를 들어가지고 물어봤지”

“아 근데 그거 전날에 뭐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만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나도 그랬어>”

“아 그래?? 흠 걱정이긴 하지만 그랬구나. 알겠어 고마워”


대화를 마치고 급하게 나는 자리를 정돈하는 데 애를 쓴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시작할 수는 없다.  먼지 닦이로 이곳저곳 청소를 해주고, 평소 손 닦으려고 걸어 놓은 수건으로 옷을 정돈해 준다. 수건은 오늘 가져가고 내일 다른 수건을 걸어 놓아야겠다. 


B

아 내일 드디어 면접이다. 면접은 볼 때마다 떨리고 긴장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관련 예상 질문부터 면접 꿀팁까지 구글링을 하다 동기가 A 선배가 해당 직무 관련 면접을 본 적이 있다고 해서 연락을 드렸고, 오늘 출근하면 얘기를 듣기로 했다. 선배가 상당히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것만 같아 참 감사하다. 


다른 면접들도 이렇게 다 준비를 했더라면 지금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상당히 의미를 찾게 해주는 그런 영화다. 오 예상보다 오늘 날씨가 좋다! 분명 어제 비 온다고 했었는데 해가 뜰 줄이야. 심지어 우산도 깜빡하고 못 가지고 나와서 다시 들어갈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다.


오히려 준비가 부족해 보이는 하루가 이렇게 채워지는 기분이 들 때 나는 기분이 참 좋다. 준비가 안되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다른 무언가가 내 이런 모습을 메꿔주는 그런 날,, 그게 오늘이고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다. 


출근을 하니 동기들이 내일 면접 파이팅이라고 초콜릿을 두고 갔다. 참 고마운 동기들이다. 처음 회사 들어와서 내가 적응을 못하고 있을 때부터 동기들 덕에 버틸 수 있었고 지금까지 왔다. 선배에게 어제 듣기로 한 꿀팁을 들으러 가야겠다.


“선배,, 혹시 어제 연락드린 것에 대해 생각은 해보셨을까요?”

“어? 어제? 아.. 면접”

“네네. 당장 내일이라 긴장되는데 선배가 전에 그 면접을 봤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바쁘시겠지만 <실례 무릅쓰고> 연락을 드렸었습니다”

“아 근데 그거 전날에 뭐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서, 보니까 준비 열심히 했던데 하던 대로 하면 돼”

“아 그래요,,? 혹시 선배가 받았던 <질문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 그거 내가 조금 있다 알려줘도 될까? 지금 바빠서”


[그냥 흘려 들어]

두 사람은 같은 하루를 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다른 상황들의 연속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고, 다른 결정과 다른 생각을 한다. 이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A와 B의 이야기는 애처롭게도 모두 내 이야기다. 정확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때, 이어서 반대의 입장도 겪었을 때 나는 그때야 비로소 A와 B를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먼저 A의 하루는 유독 불운이 가득했다. B가 동일한 상황에서 불운이라고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A는 본인의 하루가 본인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나기를 바라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들의 연속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루를 어떻게든 잘 보내기 위해 A는 정리 정돈을 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B가 등장한다.

B의 하루는 평소보다 유독 감사가 많았다. 본인이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었지 하고 돌아볼 수 있는 상황들이 외부요인으로 인해 더 큰 감사로 다가왔다. 점차 쌓여가는 하루에 대한 기대는 A와의 대화 또한 기대하게 했고, A와는 이전에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B 스스로의 하루의 대미를 장식해 줄 시간으로 생각하면서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다시 돌아와 A는 본인에게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는데 온 신경이 쏠려 있었고, 그러던 중 B가 다가왔다. 면접에 대해 도움을 주기로 했던 어제의 대화가 기억이 나지만, 본인은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어른이기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믿고 답을 해준다. <크게>, <나도 그랬어> 중용의 의미를 담은 이 두 마디는 본인이 만족하기에 충분했다. B에게 긴장감을 덜어주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에 좋은 답변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착각을 하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구체적으로 팁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자신을 까맣게 잊고 있다. 

B는 A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을 한다. 분명 어제 카톡을 했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가 될 거라고 짐작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던 대화의 양상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실례 무릅쓰고>, <질문이라도> 라는 표현을 쓰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A에게 어제의 대화를 복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준비한 대로 하라고 하는데 B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B는 스스로가 합격을 할 수 있는 자질이 보이지 않아 A가 도움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B도 A의 반응만을 두고 A의 진심을 착각하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상대방의 말을 흘려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이 말은 많이들 들어 봤겠지만 사실 좀 약한 표현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냥 흘려 들어” 가 맞겠다. 우리 생각보다 우리는 착각을 쉽게 한다. 객관성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에 대입을 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A와 B는 심지어 서로 했던 말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에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인지를 못하고, 잘못된 인지를 바탕으로 착각까지 하고 있으니 재밌기만 하다. 다만 B가 본인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다소 불필요한 것이다. 


“B야, 그냥 흘려 들어. A는 오늘 아침부터 곤욕을 치르고 와서 지금 정신이 없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본인은 안다고 착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모르는 것이겠니. 본인을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데, 찝찝한 바지 때문에 대화에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있는 깍쟁이에 가까워. 아 A의 말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야. 다만 A가 지금 어수선한 상황에 놓여 있으니, A의 말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는 마.”


그럼 B는,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다시 B의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간단하다. 흘려들으면 된다. 그렇지만 본인이 정작 들어야 할 말들, 때로는 마음이 어렵더라도 피드백으로 수용해야 할 말들도 흘려듣게 되면 발전이 없지 않은가. 이 부분은 B 스스로 잘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듣고 있는 이 말이 본인의 감정과는 별개로 도움이 되는 말인지에 대한 여부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B는 어제 A와의 대화에서 본인이 오해를 했다기에는 A의 반응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본인이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그런 감정의 변화까지 다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결국 그 누구도 객관적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본인이 객관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면, 부단한 노력 끝에도 결국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오히려 미숙해 보이는 판단이 성숙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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