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첫 성수 데이트를 했다. 우리는 4월 초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모베러웍스의 역작 '무비랜드' 개관이 있던 2월 말, 나는 1분 1초를 전투적으로 사용하며 시간을 보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3개월 만에 결혼준비를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어찌저찌 하긴했다) 각설하고. 나의 개인적인 취향, 습관, 휴식 등 기타 모든 것을 뒤로 한채... 한 사람의 우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내가 그 우주에 동요되겠다, 고 결단하는 게 결혼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비랜드' 방문은 나의 버킷리스트를 오래 차지하고 있었고, 최근 힘든 일들이 여럿 겹치면서 약간의 탈주가 필요했다. 평일, 주말 정신없이 4월과 5월을 보내고 6월이 되어서야 한숨 돌리게 된 터. 마침 남편의 친구의 결혼식을 빌미로, 이후 바로 무비랜드행을 계획하고 티켓을 예매했다.
무비랜드는 일반 영화관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세우고, 디자이너들에 의한, 디자인을 위한 회사 모베러웍스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예술영화, 고전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곳이다. 남편이 이곳에 방문하자 마자 했던 첫마디. "어른들의 놀이터같다." 컨셉을 정확히 맞췄다고 바로 칭찬해줬더니 남편의 어깨가 으쓱올라간다.
우리가 보게 된 영화는 내가 계속 무비랜드 예매 페이지에서 눈팅만 했던 <백 투 더 퓨처>도, <대취협>도, <화양연화>도 아닌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2000년에 개봉했고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연출했다.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시작한 영화는, 시종일관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말을 건다. 추수가 끝나고 남은 감자를 줍는 사람들, 갯벌에서 양식장 옆으로 나온 굴을 줍거나 폐품을 주워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 버려진 포도밭에서 포도를 줍고 시장이 파하고 나오는 멀쩡한 채소, 빵 등을 주워 식사를 해결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3차 산업 혁명 이후, 전세계에 지어진 공장들을 통해 수많은 공산품이 생산되고 그 어느때보다 소비지향주의를 사는 시대. 누군가가 버리고 간, 혹은 주인없는 양식을 주워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존재한다. 무언가를 ‘사는’ 행위가 너무나 익숙한 나는, ’줍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얻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사고, 쓰고, 버리고의 반복인 소비적인 삶이 과연 알맞은 삶의 방식인가?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인가? 주워서 사는 사람들은 열등하고 천대할만한가?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1시간 반이 약간 안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지금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큰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생물학 석사를 전공했을 만큼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파한 후 나오는 비교적 신선한 빵과 야채를 주워 먹으며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의 이야기었다. 아녜스 감독은 이 사람을 며칠 간 주목해서 관찰하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질문을 한다. 알고보니 그는, 파리에서 2시간이나 걸리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줍고 또 먹는 행위를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기차를 타고 시장으로 온다고 했다. 낮에는 생물학 보조교사 일을 하고, 밤에는 이주민 쉼터에서 무료로 그곳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소비없이 그저 줍는 일만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행위를 신성하게 여기며, 다른 이를 도우며 사는 따뜻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이땅에서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남보다 더 나은 것을 가져야 하고, 각종 할인과 특가, 1+1 세일에 둘러 쌓여 더 많이 소비하고, 쟁여두고, 소문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줍는다는 것은, 인간이 그 어떤 것도 신에게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수확해가는 것이 아닐까. 가장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고 자유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