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딸과 함께 가까운 절에 다녀왔다. 나는 무교다. 그런데도 부처님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마도 나는 수많은 전생 중 스님이었거나 불자였을지도.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로 두 번을 환승해야 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머플러와 장갑까지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지나간다. 이런 된장. 버스를 놓쳤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다음 버스 시간을 보니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두 정거장쯤이야 그냥 걸었을 것이다. 20분~2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자주 걷는 거리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는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뭔가 허전하다. 뭐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느낌은?
휴대폰!
아뿔싸.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 어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에 다시 갔다 와? 아님 그냥 갈까? 그때 딸의 솔깃한 제안. 가위바위보를 해서 딸이 이기면 휴대폰 없이 외출해 보자고 한다. 내가 이기면 집에 다녀오는 걸로. 딸이 이겼다. 결국 우리는 휴대폰 없이 하루를 보내보기로 했다. 딸과 나는 운동도 할 겸 두 정거장을 걷기로 했다.
사찰에 도착해 우리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딸과 나는 108배 절을 했다. 부처님을 바라보며 절을 하는데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2025년도 참 잘 견뎠다. 쉽지 않았지만, 딸과 나는 함께 여기까지 왔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자리였지만 내가 더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절을 마치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배부르니 또 걷고. 위로도 받고 운동도 하고 맛난 음식으로 배도 마음도 든든히 채운 2026년 첫날이다. 새해를 참 알차게 보냈다.
휴대폰이 없는데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홀가분했다. 오직 딸과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그런가? 종종 한 번씩 휴대폰을 두고 외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니면 휴대폰은 가지고 가되 잠시 꺼 두는 것도 좋을 듯.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추억이 될 수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없다는 것. 생각해 보면 아쉬워할 것도 없다.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으면 된다. 시간이 지나 잊힌다 해도 괜찮다. 우리가 느꼈던 좋은 감정.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