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집 앞에서》

"불가리 발리, 그리고 캔버라의 별빛 아래에서"

by 라이브러리 파파

1월, 우리는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눈이 조용히 흩날리던 날이었다.
하객들의 따뜻한 박수, 어른들의 덕담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긴장한 아버지의 굳은 얼굴, 눈시울이 붉어졌던 장모님의 미소.
그날의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꽃이 피지 않는 겨울,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시작이었다.


며칠 후,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발리.
그중에서도 ‘불가리 발리 리조트’.
고소영과 장동건 부부가 다녀갔다던, 그 유명한 곳.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한 풀빌라.
유리창 너머 햇살이 흘러들고, 프라이빗 수영장 위로는 코발트빛 하늘이 출렁였다.
수평선에 붉은 노을이 스며들 무렵,

그녀는 노을을 담은 눈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말없이 웃었다.
그 순간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속에 새겨졌다.

“여기… 다시 오고 싶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은,
‘지금이 너무 좋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발리는 길지 않았다.


1월의 마지막 주, 나는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한 학기 남은 호주 캔버라의 수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인천공항, 출국장 유리창 너머로
그녀가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천천히… 또 천천히.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그 손을 오래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기내식으로 나온 닭고기와 마른 빵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불가리 발리에서의 며칠이,
그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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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그 꿈의 잔상 속에 앉아 있었다.

캔버라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밤,


불을 켜고 처음 마주한 건
어딘가 낯설어진 내 방이었다.
그녀는 없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져 있었다.


냉장고 안, 지난달 남겨두었던 우유 한 팩.
그리고 가방 구석에서 발견된, 그녀가 들고 있었던 바닐라 티백 한 통.
그건 그저 물건이 아니라
그녀의 온기였다.


돌아보면, 우리의 이야기는 늘 이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사귈 때도,
데이트를 어렵게 맞췄던 시간들도,
결혼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우린 정확히 다시 만날 날을 알고 있었다.
그날을 위해 서로가 준비하고 있었고,

그 준비가 사랑이었다.

호주의 하늘은 여전히 높았다.

밤이면 별이 무섭게 많았다.
혼자 걷는 산책로 그리고 캠퍼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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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와 영상통화를 하며
잠시나마 함께 있는 것처럼 웃었다.

“오늘 뭐 먹었어?”
“응, 그냥 라면 끓였지.”
“고춧가루는 넣었고?”
“그거, 너 아니면 누가 넣어주냐.”


그녀는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밤은 조금씩 깊어졌다.

6월이 되면 수업은 끝난다.


그때, 나는 진짜로 돌아간다.
우리가 준비해놓은 집으로.
우리가 함께 살게 될 공간으로.

그곳엔 그녀가 고른 커튼이 걸려 있을 것이다.
함께 마실 커피잔도 놓여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조용히, 천천히
마음 속에 적어 내려갔다.


오늘 밤 캔버라의 볓빛 아래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을 다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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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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