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벽처럼 돌아올 때, 나는 더욱 침묵해진다
“괜찮지 않다고 말했는데,
괜찮다고 받아들여졌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이 전혀 닿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이제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건넨다.
그러나 어떤 대화는
벽을 마주한 듯 되돌아온다.
“그 정도는 누구나 그래.”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거야.”
“네가 예민해서 그래.”
이 짧은 문장들이
감정을 뚝 끊어놓는다.
그리고 그 뚝 끊긴 말은
마음 안에 뾰족하게 남는다.
감정은 무겁지 않다.
그 자체로는 말랑하고 유연하다.
그러나 그 감정을 설명해야 할 때부터 무거워진다.
말이 길어지고,
상대의 표정이 닫히고,
나는 나의 감정을 ‘해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서히 지친다.
소통되지 않는 감정은
내 안에서 조용히 응고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
말했다가 상처 입었던 말들이
내 안에서 쌓이고 굳고, 결국 침묵이 된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말했다.
“사람은 ‘나-너’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너’가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나’는 존재감을 잃는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말이 닿지 않아 더 외로운 마음이다.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말이 ‘부정당했을 때의 고립감’이
당신을 더 깊이 침묵하게 만든다.
하지만
감정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글은
감정을 꺼낼 기운조차 없을 때,
그저 옆에 놓여 있듯 읽히길 바란다.
당신의 말이 통하지 않았던 날,
이 글이
“나는 듣고 있어요”라고
조용히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한 줄 처방전
“말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의 감정이 틀린 건 아니다.
감정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다음 화 예고
7화 – 혼자인 게 익숙해질 때,
고요함이 고립처럼 느껴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