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그에게
내 연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가장 처음 생각난 것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오랜 취미이자 앞으로 평생할 활동 중에 하나인 여행은 내가 연인과 가장 함께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윤상과의 첫 여행은 서울이었다. 처음 손을 잡고 걸었던 홍대와 어색한 눈빛으로 서로를 알아가던 남산은 만날 걷던 길이었고 항상 가던 장소였지만 새로웠다. 한 걸음 한걸음 발 걸음이 향기로웠고 마음에 보송보송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달에 한번은 함께 여행하자 약속했다. 여행 전용 통장을 만들었고 매월 첫날 돈을 입금할 때 마다 우리 둘은 여행의 설렘으로 대화를 가득 채웠다. 같이 갈 곳이 많아서 항상 어디를 가야할지가 고민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 그를 만난 것에 항상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여행하고 싶은 수 많은 이유들 중에 사소하고 중요한 그의 장점들이 있다.
1. 윤상은 운전을 잘 한다.
나는 운전을 조심스럽게 할 줄 안다. 아직 운전에 능숙하거나 운전을 편하게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운전을 하면 순간의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운전을 하는 중에도 그렇지만 실상 운전을 하기 전에 받는 압박들의 강도가 높다. 항상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버릇이 있던 터라 운전이 익숙해지려면 몇 만키로는 더 차를 몰아봐야할 것이다(한달에 두어번 삼십분씩 하는 운전량으로 그게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튼 윤상은 운전을 잘 한다. 다섯번째 데이트 쯤 그의 차를 처음 탔다. 윤상은 자동차 부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원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부드럽게 슥슥 운전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운전이 무섭지 않으니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다고 나에게 말했고 우린 처음 양양으로 장거리 여행을 갔었다. 구불구불 강원도 산길을 무사히 운전했고 차를 가져간 덕에 트렁크의 텐트도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엄마아빠가 여행을 많이 다녔던 가장 큰 핵심은 엄마의 운전실력이었다. 근 30년 무사고인 엄마는 아빠나 나에게 절대 운전대를 주지 않는다. 하루 다섯시간이 넘는 운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철의 여인이라 당일치기로 통영도 다녀오는 무시무시한 여행력을 우리 엄마아빠는 지니고 있다.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운전을 잘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영역을 훨씬 넓혀주는 것은 반짝이는 사실이다.
2. 윤상은 계획 짜는 것을 치밀하게 잘 한다
나는 여행 계획을 굉장기 설기게 짠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기 보단 귀찮아서 뒤로 미루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근래엔 가던 여행지만 가다보니 10프로의 준비도 없이 가는 경우도 많고, 금방 금방 까먹다보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생각해 놓고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윤상은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맛있는 것들을 공유하면 그것을 잘 적어두었다가 전체적으로 일정에 슬그머니 녹여낸다. 장소에 거슬리지 않게, 먹는 식재료가 겹치지 않게, 둘의 취향의 교집합을 찾아 시간표를 쓴다.
3. 윤상은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은 계획을 짰을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나름의 위기 대처능력과 스트레스 대처능력이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오는 마음의 조잡함을 견디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윤상은 평소 본인 일에 대한 계획이 틀어지는 것엔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여행 중에 달라지는 계획엔 유연했다. 여느 바닷가에서 풍경을 보는 것보다 길가 정자에 누워 두어시간 뒹굴거리는 것이 더 나은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지가 더 낫고 어떤 선택지가 덜 좋은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의 즐거움과 그 시간의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