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시 그리고 빛, 빛으로
선생님과 계속 같이 있으면서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를
내 시간들에 끝없이 담고 싶었다.
다행히도 선생님의 책은 언제든 곁에 있고,
선생님의 조언대로 단것도 충분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와 문장들을 읽어냈고
나 또한 그 문장이 되고자 기도했다.
그러기 위해 이토록 들끓는 마음으로
시간을 어여삐 쌓는다는 것을 떠올리면
감사해야 마땅한데,
나는 감사를 진심이 될 때까지 미뤄 둔다.
나는 선생님이 손수 적어 주셨던 문장처럼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므로.
솔직하지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내 투명함이 조금 불완전하다고
읽히기를 바란다.
사랑스러운 것들은 대개
어딘가 바보 같고 미숙하고 모자라 보인다.
우리의 사랑이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을 떠올릴 때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으로 노랗게 물들어
끝내 별빛으로 아른거리는 고흐처럼
하나님을,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세상으로 연장해 보고자 했다.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을 읽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살아내고자 한다.
결국 내가 읽은 텍스트가
나 자신이 되고,
신약 이후의 텍스트로 남겨지기를.
포스트 지저스로 살고자 애썼을 때
설령 지저스의 시뮬라크르로만 남더라도
반복해서 시도할 만한
지치지 않는 기쁨이 있었음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즐거웠고
안도했다.
나의 엄살이 아니라
누군가의 애통과 비통을
쪼개어 내 안으로 가져오는 일을
재능이라 여길 만큼
나는 그 무게에 익숙했으니까.
역시 나는
나를 오해했고
그 무게는 나 이상이었지만.
게다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에
가장 미숙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어렵고 위태로운 일이어서
평생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또 하나의 다행은
삶의 진리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다는 것.
그래서 더 의심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단순함을
조심스럽고도 꽤 용감하게 시도했다.
반복해서 실패하는 것만 같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느낀
낯선 안정감과 벅찬 행복은
분명히 마음에 들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옳았다.
반복해서 실패처럼 느껴지더라도
반복해서 실패로 보이더라도
진리를 향하고 있다면
계속 실패해도 좋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비로소
진리를 상실할 것이다.
더 투명하게 사랑하고
많은 슬픔들에
마음 놓고 끌려다니자.
이제는 나를
엄살이라 깎아내리지 않겠다.
슬픔의 무게로 닳아가기를
가만히 허락하겠다.
스스로 반짝일 수 없는 나는
빛을 투영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투명하게 스러질 것이다.
그 투명함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런 나를 사랑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중력을 거스르는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빈다.
내가 사랑하는
동주와 시몬 베유와 고흐처럼
나 자신이 시가 되기 위해 애쓰겠다.
하나님의 시,
하나님의 문장으로
써지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기도하는 이 밤,
태초를 떠올린다.
말씀 곧 하나님,
생명 곧 빛,
빛으로.
AM02:25 23rd Jul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