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피리 부는 사나이>

숲으로, 숲으로

by 수수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한 과학자의 명함을 건넸다.

“이 사람이라면 아이가 말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요. 하지만 어마어마한 값을 요구할 거예요. 그 사람 소문이 자자

하거든요.”

엄마는 명함을 받아 가방에 챙기면서 말했다.

“우리 애와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집을 몽땅 내주고, 큰 빚

이 생기더라도 치료해 줄 거예요. 지금 바로 찾아가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과학자라는 선생님은 내 머리 속이 훤히 찍힌 사진을 오랜 시간

꼼꼼히 살펴보더니 마침내 엄마와 나를 마주하고 앉았다.

“치료비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어요.”

엄마가 서둘러 말했지만 과학자는 손을 내저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만 말하기 능력을 이식 받아야 할 것 같습니

다.”

“네?”

“누군가의 말하기 능력을 꺼내서 아이의 재능 부분에 이식수술

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간단하죠? 다만 아이의 재능을 포기해

야 합니다.”

과학자는 차분했지만 엄마는 허둥지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기 능력을 기증할 사람이 있을까요?”

기다렸던 것처럼 과학자가 대답했다.

“제가 하고 싶습니다. 저는 말하기에 지쳤으니까요.”

엄마는 안도하다가 다시 생각난 듯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의 재능은 뭐죠?”

과학자는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는 그제야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니?”

나는 역시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과학자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아빠는 밤늦도록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불 속에서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아빠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도 보통 애들처럼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야.”

“하지만 아이의 재능을 걸어야 해.”

“그러니까 그게 뭐지?”

“모르겠어. 아. 당신이 알려 준 기타 연주일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그 기타 소리

는 좀 슬펐다. 며칠 전부터 내가 기타를 치기 시작하자 아빠는 내

가 꽤 잘하는 편이라며 크게 웃었다.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았

다.

“하지만 그건 아픈 아이들에게 흔해 빠진 일이야. 보통 사람들처

럼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재능은 없어.”

아빠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래. 나도 아이가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게 내 소원이야.”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그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동물원에 갔던 그날. 어미에게 죽임을 당한 형제들 틈에

서 가까스로 구해졌다는 새끼여우를 만난 그날.

다음날 아침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났다. 엄마, 아빠는 내가

방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잠에 빠져있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

고 늦게 잠든 게 분명했다. 엄마의 가방에서 어제 만난 과학자의

명함을 찾아냈고 엄마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택시를

타고 과학자를 찾아갔다.

과학자는 혼자 온 나를 의아해했지만 수술대에 누워서 수술을 시

작하자는 내 간청을 기어이 알아차려 주었다. 나는 수술을 잘 견뎌

냈고 보통 아이들의 처음처럼 똑같이 입을 뗄 수 있었다.

“엄마.”

나는 곧바로 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엄마도 여느 엄마들과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기분인지를 자주 물었다.

주말에 동물원으로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

고 말한 간식과 도시락을 그대로 준비해 주었다. 게다가 아빠는 내

가 여전히 좋아하는 기타를 꼭 챙겨서 연주해 주었다. 난 그 시간

들이 정말 행복했다.

“나도 할래요.”

아빠에게 기타를 건네받아 지금의 기쁜 마음들을 기타로 치기 시

작했다. 내 연주가 무르익자 처음에는 동물원을 천천히 산책 중이

던 할머니, 할아버지 몇몇이 근처에 와서 내 연주에 귀를 기울였

다. 어느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의 곁에 둥글게 모여들었

다. 그리고 믿을 수 없었지만 동물들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안도하고 계속 기타를 쳤던 건 동물들이 아주 얌전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동물들을 찾아온 사육사들이 저마다의

동물들을 끌어내려 했지만 동물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통에 소란

스러워졌다. 결국 나는 연주를 멈췄고 동물들은 그제야 사육사의

손에 이끌려 각자의 우리로 돌아갔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네.”

할아버지 한 명이 와서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웅성거리며 고백했다.

“잠시나마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시간이었어요.”

내 연주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음악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는 일이 잦았다. 주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내 소박한 기타 연주를 들었고 다들 같은 말을 했다.

“아픔이 사라지는 놀라운 음악이었어.”

“재능은 뭐였을까?”

엄마는 과학자에게 물었던 것처럼 나에게 물었다.

“뭐든 될 수 있었겠죠.”

나는 과학자가 대답했던 대로 말하면서 과학자가 지었던 그 미소

를 떠올렸다.

“만나러 가 볼까?”

다시 과학자를 찾아간 곳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의 병원이 있

었다. 엄마와 내가 그 앞에 멀뚱히 서 있는데 멀리서 과학자가 다

가왔다.

“내 재능은 무엇이었죠?”

내가 용기를 내서 과학자에게 묻자 과학자는 병원을 가리켰다.

내 음악은 정말로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는 그

재능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달아나듯 집으로 온 엄마와 나는

내 연주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과학자의 병원을 소개하면서 병

을 낫게 해 줄 거라고 전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과학자의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고 더 이상 나를 찾는 음악회는 없었다.

“기타 연주 들려주고 싶어.”

내 연주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연주

회 자리를 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병

동센터나 요양원을 찾아다니며 나를 위한 독주회를 열었고 독주

회 끝에는 과학자의 병원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아픈

사람들은 내 음악을 좋아했지만 병동 센터장이나 요양원장들은

나를 다시 초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엄마는 전국으로 연주회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느라 늘 초조해 했다.

하루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에 초대를 받았다. 봄

햇살을 가리는 천막지붕 아래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나

는 기타와 함께 챙겨 온 여러 가지 악기들을 다양하게 연주하며 혼

자만의 음악회로 산골 마을을 가득 채웠다. 센터장이나 원장의 눈

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그 곳에서는 엄마도 내 연주를 마음껏 즐

기는 것 같아 기뻤다. 나 역시 음악회에 흠뻑 취하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천막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큰

비로 쏟아졌다.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으악.”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난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

질 쳤다. 천막 주변으로 동물들이 몰려와 있었다.

다리를 잃었거나 꼬리가 잘린 길 고양이와 눈이 충혈 되고 삐쩍

마른 작은 들개 무리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리에 쥐덫을 매달고 온 너구리며 뾰

족한 덫이 허리에 깊숙하게 꽂힌 노루처럼 순한 야생동물들부터

긴 뿔을 가진 멧돼지와 큰 몸짓의 살쾡이 같이 한 눈에도 위험해

보이는 짐승들도 여럿이었다. 밤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까치와

참새들도 있었는데 털이 군데군데 빠져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거

나 실타래가 묶여 꺾인 다리를 가진 새들이었다. 어느 동물 하나

아프지 않은 동물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다들 침착하세요.”

깊고 낮은 목소리의 아저씨는 큰 총을 등 뒤에 메고 있었다. 그

때 멧돼지 한 마리가 발목이 잘린 다리 하나를 절뚝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나를 향해 오려는 것 같았다.

“가만히들 계세요.”

멧돼지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사람들은 멧돼지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면서 길을 열어 주었다.

<빠앙>

큰 총소리와 함께 나머지 동물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엄마는 나를 품에 안았다. 나는 기타를 든 채로 엄마의 품에 안겼

다.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에 다시 그날이 떠올랐다. 위험한 어미에

게서 구출된 새끼여우를 보고 왔던 그날. 나는 그날 많이 아팠다.

엄마는 내 양손에 알약 한 움큼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엄마도 똑

같이 약병을 털어 내더니 동시에 꿀꺽 삼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울

먹였다. 아빠가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가 부둥켜안

고 울던 그날을 떠올리면서 연주했다.

날뛰던 동물들도, 도망치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내 기

타 소리가 빗소리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타를 치면서 천천

히 멧돼지에게 다가갔다. 겁을 먹은 어른들은 점점 멀어졌지만 동

물들은 내 곁으로 모였다. 멧돼지의 숨이 잦아들었고 결국 멈춰버

렸을 때까지도 나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기타를 연주하

면서 동물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향했다.

멧돼지가 죽는 모습을 지켜 본 동물들은 숲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게 공격적이었다. 엄마조차 숲 속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만 산길의 시작에서 만났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들

을 챙겨서 내 양손 가득 쥐어 주던 엄마는 매일매일 울었다.

“난 정말 괜찮아요. 이제 그만 울어요. 엄마.”

잘 지내고 있다는 내 말들은 엄마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데 소용

이 없었다. 나는 숲 속에서 매일같이 연주회를 열었다. 다른 악기

들도 하나 둘 늘었고 피아노까지 들여놨다. 그건 모두 코끼리 덕분

이었다. 엄마가 산길에 내려놓고 간 것을 숲 속으로 끌고 들어와

주었으니까. 멀리서도 동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코끼리는 내가

피아노를 낑낑거리며 밀고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려 주었던

것이다.

“고마워.”

나는 손을 높이 뻗어 코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물원 벽에

반복해서 부딪친 이마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 곳에서 내 음악

소리에 이끌려 한걸음에 숲을 찾아온 것이다. 몸짓에 비해 턱없이

작은 우리 안을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던 표범도 숲을 향해 달려왔

다.

“이제 그만 돌고 뛰어다녀 봐.”

내가 아무리 말해도 제자리를 돌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

다. 산 채로 털이 뜯기던 너구리는 살가죽을 너덜거리며 숲 속으로

들어왔고, 지뢰를 밟아 앞발을 통째로 잃은 곰도 숲을 찾아왔다.

“괜찮아. 이제 곧 아픔이 사라질 거야.”

나는 숲에 모여든 모든 동물들을 위해 연주회를 열었다. 하지만

하루 저녁에도 몇 마리씩은 제 각각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버

렸다. 며칠 함께하지 못하고 죽는 동물들도 있었고 오랫동안 정이

들고 나서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작별을 겪으면

서도 언제나 마지막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잘

가’라고 해야 할지 ‘잘 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떠나보내고 나면 땅에 묻어 주었다. 그 자리에 나무를

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픈 동물들은 끊임없이 숲으로 들어왔고 숲의 나무도 점점 무성

해졌다. 나도 숲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병든 과학자가 숲을

찾아왔다.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지만 스스로를 낫게 할 수 없었던

과학자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많던 재산도 전부 써 버려

비참한 모습이었다. 내 재능을 빼앗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였다. 말을 할 수 없는 과학자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요.”

나는 과학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연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과학자가 숲의 나무가 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 내 또래의

아이 한 명을 숲 속에서 만났다.

“이젠 수술이라며 지긋지긋해.”

“그래. 잘 왔어.”

매거진의 이전글꿈 팔이 소녀 feat.<성냥팔이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