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팔이 소녀 feat.<성냥팔이 소녀>

꿈속을 헤매는 꿈속

by 수수

지독히도 뜨거운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 온 몸이 다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이런 폭염에도 서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은 소녀의 엄마가 인플루언서로서 살아온 삶을 책으로 선보이는 날이었다.

소녀는 엄마 곁에 나란히 앉아 독자들을 마주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상황이 힘겨웠다. 식은땀을 흘리는 소녀를 엄마는 단지 긴장했을 뿐이라고 다독이며 계속 자리를 지키게 했다. 가엾은 소녀!


셀러브리티 엄마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아니 아직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소녀는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받았다. 전부 축복이라고만 생각했다. 소녀 가족은 불행하지 않았지만 보이는 것과 알려진 것보다는 덜 행복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유명세와 그 인기로 풍족해진 삶을 그만두는 건 쉽지 않았다.

출간 기념행사를 앞두고 소녀도 나름의 준비를 했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사용하는 SNS에 자신의 계정을 개설해 엄마 계정을 살펴보았다.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터치할수록 손이 떨리고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리면서 답답해졌다. 소녀는 밤새도록 스크린 불빛에 그을리다 잠들었고 당연히 악몽에 시달렸다.


소녀는 발가벗은 채 서점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소녀를 구경했다. 결국 소녀는 도망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체 상태로 서점 안을 활보하고 다니다가 꿈에서 뛰쳐나왔다.


소녀는 자신의 꿈을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행사 준비로 바쁜 엄마와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갖는 것은 엄마의 오랜 염원이었다. 소녀는 SNS에 꿈을 기록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출간 행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소녀는 집에 돌아왔고 방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소녀가 잠든 침대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서명을 부탁했다. 소녀가 허리를 세우며 일어나자 침대 밑으로 책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소녀는 엄마의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침대 위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무너진 책들 위에 그대로 이불을 덮고 계속 잠을 청했고 이내 등이 배기는 걸 느꼈다.


소녀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여전히 몸에 책 모서리의 감각이 서려있었다. 소녀는 곧장 손을 등 뒤로 뻗어 더듬거렸다. 책은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책도 역시 없었다. 소녀는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쌓인 엄마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엄마 책 표지를 촬영해 SNS에 올리고 방금 꾼 꿈을 기록했다. 게시글을 업로드한 후 엄마 책을 뒤적였다. 소녀는 정갈하고 세련된 그 책에서 엄마를 읽지 못했다.

“있잖아. 저 별 말이야. 저 별빛이 우주에서 우리에게 오는 동안 별은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몰라.”

숲 속 글램핑장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녀는 이미 죽은 별의 빛을 생각했다. 그날 밤 소녀는 꿈속에서 꿈을 꾸었다.


침대에 누운 소녀의 시야에 불 켜진 형광등이 들어왔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는데 한쪽에 엄마의 책이 천장까지 높이 쌓여있는 걸 발견했다. 자칫 잘못하면 책들이 소녀 쪽으로 우르르 쏟아질 것 같이 아슬아슬했다.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책 기둥이 살짝 흔들렸고 소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쌓인 책 같은 건 없었다. 엄마를 불러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자신이 여전히 꿈속에 있다는 걸 알았다. 깨어나고 싶어 발가락 끝을 애써 움직여봤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다시 가만히 잠드는 일밖에 없었다.



[따님의 꿈을 사고 싶습니다]

소녀의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소녀가 SNS에 기록한 게시물 하나, 하나에 가격을 책정해 알려주었다.

[이런 걸 어디에 쓰시려고 구매하시나요?]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될 겁니다]

상대는 소녀가 앞으로 꾸게 될 모든 꿈들도 전부 소유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엄마는 그를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돌아왔다. 크게 달라진 건 소녀가 잠들 때 조금 번거로워졌다는 것뿐이었다. 소녀는 독특한 모니터에 연결된 선 여러 가닥들을 머리에 붙이고 자야만 했다.


꿈속에서 엄마 뱃속으로 돌아갔다. 소녀가 태어나던 날 자신이 엄마를 얼마나 괴롭게 하며 세상에 나왔는지 똑똑히 알면서도 소녀는 태어나야만 했다. 온몸을 죄어오는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스마트폰 셔터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이건 혹시 총소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총알이 몸을 통과했고 뜨거운 열기까지 느껴졌다. 몸에 통증은 없었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죄이듯 아파왔다. 이렇게 죽는 거라면 생각들도 끊어져야 할 텐데 계속 생각이 이어지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이 꿈은 연속사진을 찍으며 셔터음을 내는 스마트폰과 방아쇠가 당겨진 총이 오버랩되는 편집의 영상이 되었다. 동의 없이 이뤄지는 촬영에 대한 공익광고였다.

소녀는 자주 데자뷔를 경험했다. 특히 스마트폰 SNS 게시글들과 스트리밍 어플들의 동영상과 광고, 그리고 이슈가 되는 인터넷 뉴스들을 볼 때마다 오는 기시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소녀는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럴수록 더 빨리 피로를 느낀 소녀는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많은 꿈을 꾸는 만큼 더 많은 돈을 벌어 들일 수는 있었다.


숲 속이었다. 엄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꿈이라는 걸 자각했다.
“있잖아, 저 별 말이야.”
소녀는 엄마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아니야. 죽지 않았어. 빛이 보이잖아. 우리 눈에서 반짝이잖아.”
엄마는 소녀를 끌어당겨 꼭 안았다. 이 꿈만큼은 팔고 싶지 않았다. 꿈속에서 깨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인플루언서 ㅇㅇㅇ씨 딸, 엄마 책 출간 행사 참여 후 의식 불명]

소녀의 엄마는 SNS에 남겨진 소녀의 꿈을 오랫동안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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