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nte 안단테 : 걸음걸이, 걷는 정도의 속도
하이힐이 빠르게 땅과 스치고 스친다. 약 4분 30초 동안 하이힐 굽이 표면에 닿아 있는 시간은 길어야 5초쯤. 아홉 쌍의 다리들은 2초 안에는 자리를 바꾸고 또 바꾼다. 그 재빠르고 절도 있는 동작에 푹 빠져 넋을 잃은 건 인어 공주였다.
열다섯 생일을 맞은 인어 공주. 처음 물 밖으로 나온 그날, 바닷속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음악에 이끌려 배 근처를 서성였다. 공주가 거대한 배 안에서 대형 스크린을 마주했을 때 걸그룹 무대가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하나인 것처럼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추는 춤. 그리고 깜빡임 없이 계속 반짝이기만 하는 눈동자들. 밤하늘 별처럼 바닷속 진주처럼 빛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인어 공주는 팔을 조금 휘저어 보다가 표정도 따라 해 보려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버텨봤다. 눈이 따끔해진 공주는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가 여러 차례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나풀거리면서 물거품이 떠 올랐고 그 방울 속에는 방금 춤을 추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공주는 그들을 잡아 보려고 손을 뻗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인어 공주는 주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느러미 말고 다리요!”
그 길로 다리를 갖게 해 달라고 마녀를 찾아간 인어 공주는 마녀의 설득과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들어 소리쳤다.
“맞아. 목소리!”
마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집에 돌아와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한 지 꼬박 3일이 지났을 때 공주는 다시 바다 위로 올라갔다. 공주의 정원에 있던 붉은 꽃 한 송이만을 손에 들고서.
섬세하게 물든 하늘에는 샛별이 투명하게 빛났다. 공기는 온화하고 신선하며 바다는 잔잔했다. 인어 공주는 한적한 해변가에 자리를 잡았다. 두 다리 대신 지느러미를 땅 위에 올린 공주는 바다와 땅의 공기를 모두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양손으로 꼭 쥔 꽃 한 송이를 가슴 위에 올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걷듯이. 안단테, 안단테.”
인어 공주의 숨결에 꽃잎이 살짝 팔랑였다. 마치 공주를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공주는 조용히 꽃잎에 입을 맞췄고 바로 그때 꽃향기가 공주의 코끝을 스쳐갔다. 바다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향기 다정한 꽃,
초록초록 푸른 숲.
나뭇가지 사이 날개 달린 물고기.
뾰오뾰뾰뾰 물고기 노래
그 노래를 즐겁게 듣는 너.
그래, 그게 가장 마음에 들어.
인어 공주는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에 음을 실었다. 몇 무리들이 공주를 지나쳐 갔다.
바다풀과 같은 난.
한 번 잘리면 결코 자라지 않아.
하지만 넌 달라.
먼지가 되고도 남지.
공기를 뚫고 저 위 반짝이는 별,
미지의 아름다운 곳에서 영원히.
난 그저 바다 거품.
그래, 그게 가장 슬퍼.
영원. 영원한 널, 단 하루라도.”
인어 공주 또래로 보이는 여자 셋이 가던 길을 멈춰 서 공주의 노래를 들었다. 그걸 시작으로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박자를 맞춰 어깨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공주는 땅에 없던 소리, 청량한 바다의 소리로 땅 위 세상에 대해 노래했다.
사랑받으면, 우리.
모든 생각, 마음 하나가 된다면, 우리.
맞잡은 손으로 영원을 약속한다면, 우리.
내게 네가, 네게 내가 스며들면, 우리.
상상해 봐, 노래해 봐, 우리.”
저 멀리에서 손을 잡은 한 커플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공주 곁에 서서 가만히 노래를 들으면서 점점 더 다정히 서로를 감싸 안았다.
그 후로도 인어 공주는 매일 땅 위에 지느러미를 펼치고 노래했다.
“걷듯이. 안단테, 안단테.”
태양이 막 사라지고 구름은 여전히 황금과 장미처럼 빛나는 시간이었다.
남쪽으로 날아가자.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자.
뜨거운 공기를 어르고 달래자.
신선함, 치유의 밤을 주는
꽃향기를 실고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노래를 들었다. 인어 공주의 목소리는 그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공주가 들려주는 노랫말은 사람들이 듣기에도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누구도 공주의 지느러미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어 공주다.”
꼬마가 공주를 향해 달려왔고 공주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계속 노래했다.
“쉿. 조용.”
인어 공주가 슬며시 눈을 떴다. 공주의 눈에 꼬마와 꼬마의 엄마가 박수를 치는 모습이 들어왔다. 공주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어루만졌다. 그래서 인어 공주는 삼백 년을 노래하고도 죽지 않았다.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았기 때문이다. 공주는 여전히 바닷가에서 속삭이고 있다.
“걷듯이. 안단테, 안단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