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 할 감각

24th Jan. 2026

by 수수

지난 목요일에 첫 하이킹을 다녀왔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곧 점심을 먹을 생각이어서 그릭요구르트와 블랙커피밖에 먹은 게 없었다.

나름 산을 올라야 할 테니

식빵 한 장에 바나나 한 개와 피넛버터 한 스푼을 듬뿍 넣어

급히 허기를 채우고 출발했다.


그만큼 가볍게 갔다는 말이다.


시작은 좋았다.

마오리가 숲에서 길을 찾을 때 사용했다는

실버 펀 Silver fern이 반짝이면 반겨줬다.


마오리어로 폰가 ponga라고 하는 이 잎은

뉴질랜드에서만 사는 나무 고사리이다.


마오리 사냥꾼, 전사들이 자연의 나침반으로 사용했다 전해진다.

잎의 아랫면이 은빛인데 햇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달빛에 잘 보여서 잎을 뒤집어 놓고 방향을 표시했다고.


힘, 회복성, 영속성을 상징하는 실버 펀은

마오리에게는 강인함, 지속적 성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뉴질랜드 사람들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10여 개월 만에 처음 만난 실버 펀이었다.


하지만 끝없는 계단, 높은 계단, 경사진 계단.

이 계단을 오르면 끝일까,

아니 이 계단까지 일까.

하지만 그 끝은 쉽게 오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

누군가 이런 걸 인생에 비교했던 게 떠올라서

오늘의 첫 하이킹이 참 내 인생 닮았네 생각하며 몰래 웃었다.


과정도 즐거운 성취는 없을까.

내게 성취가 얼마나 중요했던가.

언제나 목적지를 향해 떠밀려 가야만 했던 시간들.

목적지가 주는 기쁨보다는 과정 속 고통을 피해,

지금을 평온히 즐기고 싶은 내 마음은 왜 뒷전이 될까.


흘러가는 냉소를 흔들어 떨쳤다.


나 뭘 잘못해서 이렇게 힘든 일을 맞이했나 반성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아이들 준비를 시키며 인내하지 못한 나를 다그쳤다.

마냥 개구쟁이, 장난꾸러기로 신나 있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울려 버린 나.

그래, 그 탓이야.


결국 한 시간쯤 오르고 돌아온 길로 내려왔다.


곧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기도 하니까.

숲의 습기와 땀과 빗방울에 엉망이 된 채 갈 순 없었다.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저녁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재우며 아이들 웃음소리가 옅어지는 걸 느끼며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에 당연히 근육통이 온몸을 깨웠다.

그게 생각보다는 개운한 고통이었던 것 같다.


다시 하이킹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꼭! 난이도가 높지 않은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제는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가 비를 홀딱 맞고 돌아왔다.

하하.

도통 알 수 없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는 생각을 했다.

예기치 못할 감각이랄까.


40년 가까운 삶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 할까.

그런 하루하루가 조용히 쌓인다.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 땅,

태양이 가장 빨리 뜨는 이곳.


여기는 Aoteaora, 뉴질랜드다.


Ngā mih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