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사라고 불리는 이유
어느날 갑자기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정말 그런걸까?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10년간 같이 살았던 어머니는 어릴적 고양이에게 물려 혼난 적이 있으시다고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적극 반대하셨다.
딸 아이 혼자라서 외로울까봐 어릴적부터 강아지를 키웠다. 동생도 되고 친구도 되라고…
그래서 우리집에는 항상 요크나 시츄 가족이 한마리 씩은 있었다.
요크인 ‘아지’가 교통사고로 우리 가족을 떠났을 때 우리 가족 모두 사흘간 울며 아지를 그리워 했다.
아지는 강릉 집 근처 해송 나무 아래 잠들어 있다.
강릉에 갈때면 항상 그곳을 들러 아지에게 인사를 하곤 한다.
‘우리는 아직도 널 기억해’
집안에서 키울 수 있는 강아지 여야 해서 작은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는다.
제주에 와서야 비로소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제주동물보호센터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얼마나 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버려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족으로 맞고 쉽게 버리고 또 샵에서 물건 사듯이 사고 버리고…. 제주는 유기동물 및 안락사율이 제일 많은 곳이다. 심지어 휴가로 데려왔다가 버리고 가기도 한다.
돌아다니는 개를 관광객들이 신고하고 포획팀이 동물보호센터에 데리고가서 2주간의 공고기간을 거친 후 입양이 되지 않으면 바로 안락사로 이어지는 현실…. 어미개와 새끼 강아지들도 예외가 아니다.
육지에 있을 때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고 몰라서 아지와 우람이도 샵에서 데리고 왔다. 가족을 돈으로 물건 사듯이 고르고 사온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야 얼마나 무지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
우람이가 우리 가족이 된지 7년 정도 된 어느 추운 겨울 밤, 딸아이가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면서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를 낭줍해 왔다.
들어 오려는데 자꾸만 새끼 고양이가 졸졸 따라와서 추워보여 하룻밤만이라도 재워주고 싶다고….
나와 할머니는 질색을 하며 우선 집안으로 들어온 생명이어서 하룻밤만…. 다음날 내보내자고 했다.
우람이도 있는데 고양이라니….
특히 할머니는 고양이는 영물이라며 집안에서 키워선 절대 안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작고 이쁜 생명이 나에게 온 날~~
우리 애기와의 묘연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바깥날씨가 너무 추워 어린 생명을 다시 바깥에 내어 놓기가 망설여졌다. 춘천에 와서 관심이 전혀 없어서 인지 고양이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애기냥이 엄마가 찾고 있을텐데 하며 몇일을 찾아 보았지만 고양이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즈음 애기는 2개월 넘어서 엄마에게서 독립이란걸 했었던거 같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 이렇게 생각하면 좀 맘이 편하려나 ㅎㅎ
다행이 우람이는 예민하지 않아 애기를 그냥 있는둥 없는둥 관심이 없었다.
이 깨알 발랄한 캣초딩 애기는 이곳이 원래 제 세상인 것처럼 뛰어 다니고 쇼파나 침대, 책장 위에서 세상편하게 지냈다 ㅎㅎㅎ 우람이도 괴롭히면서…
우리는 애기에게 간택을 당한 것이었다 ㅎㅎㅎ
직장을 그만두면서
춘천에서 제주로 차를 가지고 우람이와 애기와 함께 오게 되었다. 딸아이는 독일 유학중이었고..
내가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함께할 가족이 항상 옆에 든든하게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우람이는 제주에 와서 같이 바닷가도 거닐고 수영도 하고 발가락 수술도 하고 나이들어 치매도 걸리고 17살이 되어 내품에서 우주식당으로 편하게 갔다. 한지로 깨끗하게 염을 하고 뜨개 동백꽃과 노자돈 간식거리를 함께 넣어 집 근처 나무 아래에 쉬게 하였다. 토끼풀 꽃으로 장식을 하고 담에도 만나 모자의 인연을 맺자고 …..
제주에 와서 한동안 매일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동물보호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제주동물보호센터에 가서 개들이 있는 방의 떵을 치우고 물청소도 하고 고양이방 사료와 물도 갈아주고 화장실도 치우는 일을 했다.
힘은 들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다.
회원들과 시내에서 동물보호 캠페인도 하고 물건을 만들어 팔아 열약한 사설보호소 돕는데 기부하기도 했다.
회원들의 순수한 마음이 너무 좋았고 뿌듯함은 덤으로 얻게 되었다.
그러던중 절물휴양림에서 구조된 임신냥이 낳은 새끼냥이들의 입양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중 2마리(사랑이와 노랑이)를 입양전제 임시보호를 하게 되었다.
3개월 정도 된 너무나 이쁜 냥이들 ㅎㅎ
작은 방에 따로 격리하여 방석도 만들어주고 작은 캣타워도 마련해 주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적응할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 아이들을 데려온 동물보호단체 임시보호 하시던 분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남은 두 형제들이 갈곳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입양 갈때 까지만 두 남매 냥이를 같이 임시보호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 왔다.
같은 형제 네 마리라니……헐~
아이들이 작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는 집사의 험난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집사라는 말을 교회 집사님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ㅎㅎ.
고양이 세상의 집사는 고양이를 주인으로 모시고 밥과 사료, 편안한 환경 뿐만 아니라 매일 화장실을 치우고 놀아 드리기까지 해야하는 그야말로 할일이 많은 역할이다. 또한 뿜뿜이는 털 공격을 감수하며 돈까지 아끼지 않고 모셔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주인은 고양이고 사람은 집사인 것이다.
그런데 데려왔던 아이들이 눈도 아프고 귀도 아프고 곰팡이성 피부염까지 있어 우리집 애기가 옮아 머리에 동전 크기의 털빠짐이 시작되었다.
ㅠㅠㅠㅠㅠ
이런 일은 처음이라 동물단체 지인분에게 물어 물어 동물병원을 일주일에 몇번씩(숫자가 많다보니 ㅠㅠ) 데려가고 약 먹이고 소독하고 약 발라주고 빗질을 거의 한달동안 하여 겨우 모두 건강해졌다.
아마도 면역력이 약한 아기냥들이 열역한 환경에서 여러마리 같이 있다보니 생긴 일인거 같다.
참으로 험난한 집사의 길…
입양 전제 였던 아이는 노랑이, 사랑이
다음날 들어온 아이는 고등어, 미소 라고 불렀는데 고등어와 미소는 두달 뒤 서귀포로 입양 전제 임시보호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2주 되던 날.. 다시 돌아 오고야 말았다.
미소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2주간 계속 울고 새로 산 집도 다 뜯어 버리고 숨어서 안나오고 ㅠㅠ
우리집에서는 잘 적응해 주었는데 또 다른 환경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고등어는 잘 적응 했는데도 불구하고 동물단체에서 두마리 다 데려와 버렸다.
몇달 후 결국 고등어는 다른 집으로 입양가게 되었고 미소는 한 식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아이를 또 다른 곳에 보낸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