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얼렁뚱땅 만들었던 여권은 홍콩 여행을 한 번 갔다오는 것으로 만료가 되었다. 여권 갱신을 위해 처음으로 다같이 사진관에 들러 반명함판 사진을 찍고 기대에 없던 가족사진까지 찍었다. 며칠 후 근처 구청에서 아빠와 만나 여권을 신청했다. 옅은 미소를 띠고 신청서를 정성스럽게 작성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다음 해에 떠나게 될 스위스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다음 여행은 시간의 여백을 받아들이고, 오로지 '쉼'을 위해 떠나기로 다짐한다. 무엇보다 홍콩여행과는 다르게 아버지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조건 편하고 풍족한 여행을 계획하기로 한다. 여행지 물망에 오른 호주와 스위스 중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는 유럽을 경험하고 싶어하셨고, 그렇게 다음 여행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돌아보면 마음 먹은 그 날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 당시의 우리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하찮은 이유들로 일년 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비행기 티켓 비용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적금을 들었고, 언니는 그 외 여행경비(여행가이드, 숙박, 현지에서 사용할 현금)를 마련했다.
바쁘게 일상을 꾸려가던 가족들이 마침내 시간을 내어 스위스로 향하던 날. <소풍 날 아침, 신이 난 아이처럼> 얼굴이 환해진 아버지는 연신 스며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시간강박이 있는 우리 가족은 하루 전날 출발해서 호텔에서 투숙을 하고 오전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항공사 기장과 스튜어디스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었는데 가격에 비해 넓고 깔끔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공항 의자에 앉아 아침 졸음과 피곤함을 달래고 있는 우리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마냥 좋으셨는지 공항 면세점을 한바퀴 구경하고 오겠다며 곳곳을 둘러보고 오셨다. 그리고 대학 동창을 만났다며 신기해 하셨다.
스위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철저히 이방인이 된 것을 온 몸으로 실감했다. 홍콩에서는 언어와 기후에서 오는 이질감이 존재하는 한편, 생김새가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이 오히려 편안함을 주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외모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나니 다소 긴장감이 도는 묘한 설렘이 있었다. 덩치 큰 외국인들 사이에서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의 우리들. 그러나 여행객들의 모습에 익숙한 그들은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긴 시선을 남기지 않는다. 독일어에 로망이 있는 나는 여기저기에서 영어보다 더 자주 들을 수 있는 독일어에 귀를 쫑긋 세운다. 한국에 돌아가면 매번 시작만 반복했던 독일어를 독파해보리라 다짐한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느긋함과 여유로움, 몇 백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온 아름다운 건물들, 깨끗한 도로와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자들. 에메랄드 빛 호수와 청명하다는 표현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를 거닐자니 긴 시간 이고 지고 살았던 삶의 고민들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취리히, 루체른, 융프라우, 인터라켄 등의 관광지를 중심으로 샤프하우젠 같은 주변 소도시들 속에서 낭만적인 식사와 와인을 즐기기도 하고, 간단한 스시로 요기를 하기도 하고, 우연히 방문하게 된 치즈 상점과 초콜릿 상점에 들러 치즈와 초콜릿을 경험했다. 한국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값비싼 한식당에도 들렀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한식은 어떠한가를 직접 체험한 것으로 만족!)
어떤 일이든 강박적이고, 조급하게 치고 나가야 하는 내 일상과는 상반된 방식으로 느리게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여행 중 스위스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한국에서 왔다는 아버지의 대답에 삼성 로고가 박힌 자신의 핸드폰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강아지와 함께였던 한 가족은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있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북한에 대한 사회적 이슈로 잘 알고 있다고 답하며 약간의 정치적 의견을 더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지구촌에 존재하는 하나의 점처럼 대한민국을 인식하는 또다른 이들로부터 내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스위스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곳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이방인 곳이 되는 경험. 아주 작고 소소한 경험들이었지만 현지에서 만나는 외국인들과의 짧은 만남 또한 우리에게는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스위스에서의 아버지는 홍콩에서와는 다르게 현지에 오랜 시간 정착해 온 재외교포같은 모습이다. 아버지는 이번 여행을 위해 여행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셨는데 막상 현지에서는 크게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한 여행영어는 간데없고 기차 옆좌석에 앉은 대만 가이드와의 대화가 정치이야기로 흐르는 통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지만 다행히도 아버지와 같은 의견을 가진 분이라 대화는 무리없이 흘러갔다.
반면, 공항이나 거리에 즐비한 독일어 표지판을 척척 읽어내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으면 "저기 써 있네." 하는 무심한 반응이다. 고교시절 독일어를 맛만 본 우리들은 다시한번 어디에 써있는지 헤매느라 정신이 없다. 긴 시간 꺼내어 쓸 일 없던 독일어로 적힌 표지판에서 한글 읽듯 무심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아버지. 세월은 흘렀지만 노장의 실력은 평상시 당신처럼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노년을 발견하고 마음이 아팠던 홍콩에서와는 달리 스위스에서는 젊은 날의 아빠를 다시 만난 듯 기쁘고 반가웠다. 어쩌면 스위스 여행이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지도.
스위스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위스행 비행기 안>에서였다. 아버지가 마음에 꼭 들어하던 기내식 스테이크에 대한 기억.
우리는 점심 기내식으로 각각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나는 스테이크, 아버지는 다른 가벼운 식사를 주문한 후, 각자의 음식을 반씩 나누어 먹었는데 아버지는 스테이크 굽기에 아주 만족스러워하시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모두 스테이크를 주문하자고 아이처럼 계속 다짐을 받는다. 결국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모두 스테이크를 주문해야 했다. 쓱쓱 칼질하는 아버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어찌나 뿌듯하던지. 미식가인 아버지 말씀으로는 출발할 때 먹었던 나의 스테이크가 더 잘 구워졌다고 하셨지만 비행기 안에서 내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여행을 오기까지 모았던 노력과 경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기내에서 음료로 요청한 나의 구아바 주스에 호기심을 보이던 아버지 모습도 생생하다. 오렌지 주스를 요청한 아버지는 처음 보는 구아바 주스의 색깔을 보고 호기심에 눈을 반짝인다.
"그건 무슨 맛이야?"
"구아바 주스라는데. 나도 몰라서 그냥 주문했는데 바꿔서 마실까?"
그렇게 살짝 맛만 보고 구아바 주스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신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는 당신의 오렌지 주스와 맞바꾼 구아바 주스에 몹시 흡족해 하며 싱글벙글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스위스의 어떤 멋진 풍경보다도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다. 스위스의 한 장면이라기보다는 <스위스 여행으로 인해> 더해진 가족들과의 추억들.
신경숙 작가의 '엄마는 부탁해'라는 책에서 막내딸인 주인공은 엄마에게 값비싼 모피 코트를 선물한다. 부담스러워하는 엄마에게 딸은 말한다. "엄마, 입으세요. 엄마는 입으실 자격이 있어요."
나는 이 문장에서 '엄마'를 '나의 아버지'로 치환한다. 소설 속 막내딸의 마음은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나의 마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가 준비한 스위스 여행 그 이상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다. 더한 것이라도 아깝지 않았을 만큼 가족을 위한 인생을 살아 온, 나의 소중한 사람.
언니는 융푸라우에서 먹게될 신라면을 대신해 아버지를 위한 맵지 않은 스낵면을 준비하고, 아버지가 저녁에 사용할 안마기를 캐리어에 실어갈 정도로 유난스럽게 이고지고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1년에 한번씩은 해외여행을 해보자는 다짐이 무색하게 스위스 여행은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호텔 로비에 무심히 펼쳐져 있던 방명록을 잠시 바라보던 아버지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답지 않게 펜을 들고 방문일자와 이름, 국적을 정성스럽게 적어넣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앞으로 많이 남아있기를 마음 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내가 70살 될 때까지 아빠도 오래 살아서 우리 부양해야지?" 하면 껄껄 웃으며 "그럼 너무 좋지" 하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기회마저 없었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 스위스 여행을 추억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얄팍한 위로를 주섬주섬 긁어 모은다.
스위스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사치를 부린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한페이지의 기록으로 기억된다. 어느 풍경보다 더 멋진 곳이어서도 아니고, 음식이 더 훌륭한 곳이어서도 아니다. 스위스에서 보냈던 모든 사소한 순간이 우리에게 처음이었으며, 우리 가족이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원가족과 당신이 꾸린 가족의 보호막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위한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선물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보상에 불과하지만, 남겨진 우리는 '그나마라도'라는 말로 애써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