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고양이로 다시 시작하는 날
1. 어미 고양이와의 첫만남
5월, 우연히 삼색고양이를 만났다. 폐가가 위치한 마당을 유유히 지나가며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 녀석. 가슴을 보니 새끼를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보였다. "나 새끼 한 마리만 줘!" 언니가 장난삼아 던진 말에 웃으며 지나쳤다. 우연히 길잃은 아깽이를 만나면 냥줍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만났던 어미고양이와의 첫만남.
2. 재회, 오순이로 불리다.
6월, 5월에 만났던 삼색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그 고양이 아닌가? 왠지 모르게 같은 녀석이라고 확신했는데, 녀석이 잠깐 자세를 바꾸려 일어나자 젖을 물고 있던 새끼들도 따라 움직였다. 그 이후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녀석은 우리를 기다렸고, 밥셔틀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미고양이에게 오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3. 폭우가 쏟아져도 배는 고프다.
새끼들은 많고 주변에 먹이가 많지 않은 탓인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오순이는 밥자리에 나와있었다. 사람에 대해 경계가 심해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멀리서 우리를 알아보고 뚱땅거리며 달려나오곤 했다. 우리도 길고양이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 동네 분위기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길을 걷는 척하면서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밥을 놓아주었다. 그럴 때면 오순이는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줄 알고 냥냥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뛰쫓아온다.
4. 새끼들의 숫자는 줄고.
지난 넉달 동안 새끼고양이들의 숫자는 반으로 줄었고, 무럭무럭 성장한 다른 새끼들은 오순이의 밥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그릇이었던 밥그릇이 둘에서 셋, 곧 넷으로 늘었다. 새끼들 먹성이 점점 좋아졌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놓아주고 언니와 나는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밥그릇을 수거한다. 새끼들이 어미의 밥을 함께 먹기 시작하기 전까지 오순이가 밥자리에 결석한 것은 딱 하루였다.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5. 오순이의 잦은 결석, 새끼들은 만근.
폭우에도 비를 뚫고 나오던 오순양이 딱 한번 밥자리에 나오지 않아 걱정한 다음 날 오순이는 건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새끼들이 성장하자 비가 오는 날에는 밥자리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더이상 젖을 먹이지 않아도 되니 여유가 생긴 듯했다. 대신 새끼 냥이들 셋은 같은 자리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6. 독립의 시기
새끼들의 독립시기는 지났지만 오순이가 독립을 시켰는지 확연히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늘 같은 밥자리에 나와 있었으니까. 아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다른 호수로 독립시킨 그런 느낌이었달까. 동네 식당에 가서 친정식구만나는 그런 경우인건가.
7. 또 한번의 출산
그 사이 오순이는 또 한번의 출산을 했다. 그 새끼들은 어디에 낳았는지 모르겠다. 오순이 뒷배가 불렀다가 며칠 밥자리에 나타나지 않더니, 뒤늦게 뚱땅거리며 남은 밥을 먹으러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불어오른게 보였다. 밥자리에도 불규칙적으로 찾아온다. 이 구역에 길고양이들이 너무 늘어나면 안 될텐데.. 중성화라도 시켜줘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도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오순이를 잡을 방법이 없어서 반포기상태. 터치는 할 수 없지만 정이 든 고양이. 이사를 가게 되면 오순이는 챙겨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뜬금없는 새끼냥이의 냥줍을 결심했다.
8. 데면데면했던 새끼고양이
태어난지 넉달이 넘었고,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지만 언니와 내가 마음을 쏟았던 것은 어미었던 오순이었다. 혹시 다른 곳에서 만나면 알아볼 수 있게 사진을 찍어두었다. 길생활을 하면서 새끼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크지 못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밥한끼 얻어먹겠다고, 그마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새끼들에게 양보하는 녀석. 당연히 우리는 새끼냥이들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길냥이들이 손타서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멀리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 먼저 다가오는 녀석이 있으면 냥줍하자 마음은 먹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새끼냥이들은 우리에겐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9. 치즈냥이의 눈키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2번 치즈고양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시작은 언제였는지. 밥그릇을 놓아주러 들어가니 바짓가랑이에 신나게 냥냥펀치를 날리는 녀석, 손가락을 내미니 조심스럽게 앞발로 펀치를 날려보는 녀석. 그리고 이빨로 깨물깨물 해본다. 오순이가 교육을 잘 시켰는지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러다가도 금세 도망가곤 했는데 늘 우리가 인사하고 헤어질 때 수시로 눈키스를 해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인도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멀리에서도 보인다. 이리뛰고 저리뛰며 우리를 반겨주는 것인지, 밥먹을 생각에 신이 난 것인지. (밥셔틀을 하는 우리를 반겨주는 것이겠지.)
10. 1번 치즈, 2번 작은 치즈, 3번 고등어였던 날들
1번 치즈고양이는 덩치가 가장 크다. 2번 치즈는 부산하고 엉뚱하다. 3번 고등어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셋 중에 가장 작다. 처음엔 1번과 2번이 자주 어울렸지만 1번의 덩치가 월등히 커지자 2번과 3번이 자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항상 어미인 오순이와 함께 밥자리에 나와 있던 녀석은 진정한 독립을 한 것인지 밥자리에 나오는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2번이 늦고, 어떤 날은 3번이 늦고, 1번이 결석하는 등, 각자의 서식지에서 밥자리로 출근하는 듯했다.
11. 냥줍, 수수를 줍다.
모두가 제 시간에 나와 밥그릇을 하나씩 차고 먹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 뒤늦게 밥자리에 도착한 2번 작은 치즈녀석이 헐레벌떡 뚱땅거리면서 폐가의 지붕 위에서 털썩하고 뛰어내린다. 고요한 새벽에 우당탕탕 수준의 소음. 보통 고양이들은 소리없이 사뿐이 뛰어내리지 않나. 이 녀석은 그렇게 밥이 고팠나보다. 마음이 쓰이면서도 집에 데려다 놓으면 얼마나 날라다닐까 걱정이 될 법한 녀석이었는데, 우리는 그 녀석을 냥줍하기로 결심했다. 9월 26일 냥줍 결정하고, 9월 27일 냥줍에 성공. 역시나 산만한 녀석이 밥그릇을 먼저 차지하겠다고 내 앞을 지나가는 사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녀석을 잽싸게 잡아서 이동가방에 넣었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뒤로 미루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성격상 어찌나 긴장했던지 정신이 없었다. 언니 말로는 급하게 주운 치즈녀석은 이동가방에 착~ 붙어 이쁘게 앉아 있었다고. ^^;
냥줍을 결정하고 하루동안 여러가지 이름이 물망에 올랐다. 살구, 보리, 치즈, 체다 등등. 이 이름 저 이름 바꾸기를 여러차례, 냥줍하는 날 언니가 '수수'라는 이름을 생각해 내었다. 녀석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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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때 먹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하루 한끼를 위해 새벽마다 뚱땅거리며 달려나와야 할 필요도, 지붕 위를 급하게 뛰어내려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비 내리는 날, 잔디밭에 숨어있을 필요도 없지. 자동차가 넘나드는 인도 위에서 밥셔틀을 기다리는 새벽도 이젠 안녕~
(녀석을 냥줍한지 한달이 넘은 이 시점, 가끔 그때의 날들이 영화 속 풍경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둘걸. 어미냥 한 마리와 세 마리의 새끼냥이들 밥 한그릇씩 뚝딱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