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냥줍
수수를 냥줍하고 이틀 뒤, 수수의 한배 남매인 3번 고등어, 보리를 냥줍하게 되었다.
1. 3번 고양이 '고등어'의 결석
수수를 냥줍하던 날, 3번 고등어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냥줍한 게 아닐까, 중성화라도 해주려고 데려간걸까 하는 희망회로를 돌렸다. 외모상 가장 작고 귀여운 녀석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가까웠다.
2. 미안한 마음
3번 고등어는 수수를 냥줍하기 전까지 계속 마음에 담아두었던 녀석이다. 여섯마리의 새끼가 세마리로 줄었고 그중 두마리의 치즈냥은 수컷, 이 고등어 녀석만 암컷. 당연히 녀석이 길생활을 계속하면 출산과 육아를 반복해야 할 것이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쉽게 곁을 주지 않지만 눈키스를 열심히 날려주던 사랑스러운 고등어 태비 캣 아가씨. 하지만 억지로 냥줍을 시도했다가 오순이와 삼남매에게 공포감만 심어 주어서는 안될 일. 그렇게 고민하던 중 수수를 냥줍하면서 이 녀석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매번 만남을 아쉬워하는 듯한 치즈녀석을 드디어 냥줍한다는 기쁨과 동시에, 길에 남겨두어야 하는 고등어녀석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밥자리에서 쭉 만나자.
2. 또 하루가 지나고.
수수를 냥줍한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일요일에도 고등어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냥줍한걸까? 혹시 중성화를 해주기 위해 데려간 게 아닐까? 귀 한 켠이 잘려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지만 모든 고양이를 구조할 수는 없으니까. 언니와 이런 대화만 수차례.
어미인 오순이가 밥자리에 결석할 때마다 혹시 누군가 학대한 것은 아닐까, 보호소에 입소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역 내 보호소의 사진들을 일일이 열람하곤 했지만 때마다 오순이는 건재하게 다시 나타났고 당연히 고등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3. 월요일 아침, 다시 만나다.
그런데 이틀 뒤, 3번 냥이를 발견했다. 바로 우리가 밥주러 들어가는 공터 옆에서. 이곳은 흙과 잡풀이 자라있는 곳인데, 다른 이들이 드나들때 신발이 더러워질까봐 깔아놓은 줄 알았던 비닐 밑에 이 녀석이 있었던 것이다. 머리는 거의 지푸라기에 뒤덮인 상태로. (이 곳에 녀석이 묻혀있다시피한 것을 알게 된 경위는 곱씹을수록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수수를 냥줍하고도 여전히, '냥줍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 이동가방을 들고 밥셔틀에 나섰기에 이 녀석을 데려오는 일이 수월했다. 그때까지 몰랐지만 이동가방의 소임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4. 괜찮지 않을까하는 한가한 생각.
이때까지만 해도 3번 냥이의 상태가 심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숨을 쉬는게 한 눈에 보였고, 우리가 녀석을 받아들었을 때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벌레만 조금 잡아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한가한 생각을 했다. 녀석을 이동가방에 넣고 다른 아이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벤츠에 앉아 기다리다 밥그릇을 수거해서 집으로 왔다.
대충이라도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화장실에서 물티슈로 녀석의 몸을 닦아주던 언니가 온몸이 벌레 투성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언니에게서 녀석을 받아들고 물이라도 먹일 생각으로 입을 벌렸는데, 맙소사. 구더기가 꿈틀거린다. 이때부터 거의 멘붕상태...
5. 병원을 갔지만 못갔습니다.
일반 동물 병원은 아직 진료를 시작하기 이른 시간. 오래가 다니던 병원은 24시간 병원이라 당연히 이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입원환자가 아닌 응급진료는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수없이 다시 택시를 잡아서 두번째 병원으로 향했다. 길이 막혀서 겨우 도착한 또 다른 병원, 길냥이라고 이야기하니 동물보호소에 연락하는게 어떻겠냔다. 보호소에 보낼 생각이 없다하니 다른 병원을 안내해주었다. 1시간 넘게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픈시간까지 기다리면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다. 결국 3번 냥이는 (수수의 여러이름 중 하나로 물망에 올랐던) '보리'라는 이름으로 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6. 이틀 전까지 건강했던 아이였는데.
보리의 문제는 벌레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더기였는데, 이 구더기가 장기에까지 침투했을 때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보리는 목, 다리, 발가락 등에 구더기가 뚫고 지나간 흔적이 남았고, 입에서도 구더기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장기에까지 침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우리가 보리를 데려왔을 때 만난 아저씨는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뼈나 다른 조직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전까지 마당에서 수수랑 잘 뛰고 잘 놀고, 잘 먹던 아이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론도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주일 간은 머리가 아프고 계속 화가 났다.
7. 더 나쁜 사례 찾아요.
보리를 냥줍하고 1주일간은 집착적으로 '승저증' 사례만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는 보리보다 위험한 사례, 더 심하게 감염되었지만 완치된 사례만 검색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벌레를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벌레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 경험. 엑소시스트의 현장을 목도한 것 같은. 사람은 죽으면 구더기밥이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8. 완벽하지 않지만, 새로운 시작
보리는 완벽하지 않은 약 2주간의 입원기간을 지나고 퇴원. 비위관(유동식 급여를 위한 콧줄)은 졸업하지 못하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혈액검사에서 '칼리시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와, 다른 아이들과는 격리생활을 해야한다.
9. 1MM 주사기로 아주 천천히 먹는 훈련
입으로 음식물 섭취를 하려고 하지 않아 비위관을 달았지만, 집에서는 최대한 입으로 먹는 훈련을 하기로 했다. 어짜피 비위관은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니 오래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막상 주사기를 이용해서 먹는 훈련을 시도해보니 생각보다 잘 받아먹었다. 퇴원 2주 후 비위관(콧줄)을 제거했다. 콧줄을 제거하고 보니 이 녀석, 홀가분해 하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움직임도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고, 눈물도 흘리지 않고 밥도 더 잘 받아먹는다.
10. 두 마리 냥줍할 용기는 없었는데, 그냥 두마리 모두 냥줍하라네요.
또 한편으로는 수수도, 보리도 우리집에 올 운명이었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수의 냥줍을 며칠 더 늦추고, 이런 식으로 보리를 발견했더라면 수수를 데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보리를 데려오고 수수를 포기했겠지. 두마리를 냥줍할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다.
수수를 데려오기로 결정한 날, 왠지 모르게 꼭 다음날 데려와야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만(!) 모르는 예정된 수순이 그랬던 모양이다. 수수를 냥줍하고 더이상 들고 나갈 필요가 없었던 이동가방을 들고 밥셔틀을 나선 것도. 그런 의미에서 수수와 보리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 수수는 보리가 있어서 좋고, 보리의 재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11. 만나서 인연입니다.
류시화 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나온 문장처럼, '수수와 보리' 남매, '우리' 자매는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이 있어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비록 우린 종이 같은 생물은 아니지만 잠깐 만나고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같은 종인 여느 사람들보다 더 진한 인연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순네 가족 모두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난 후에도 홀로 밥자리에 남아 눈키스를 해주던 예쁜 아가씨, 보리. 우리는 정말 무슨 인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