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ngmoon Dec 01. 2019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_명사(名詞)

명사처럼 살아간다는 것



명사처럼 살아간다는 것:
명사는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닮았다



태양 없는 삶이 있을까?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명사 없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명사는 대부분의 문장에서 시작의 문을 연다. 그들은 굵은 글씨로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간혹 문장 중간에 있어도 그들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그들은 좋아하든 싫어하든 명사는 문장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 명사를 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명사답게 살고 있을까?

명사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살고 있을까.


나는 내 인생에서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명사는 문장에서 태양처럼 유일무이한 존재다.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는 오직 명사로, 명사는 문장의 주인공을 차지한다. 명사는 문장의 주인공으로서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주연이다. 하지만 만약 문장에서 명사가 없다면? 명사가 없다고 문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어떤 삶 속에서 주인공이 없다고 삶이 아닌 것인가.


'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라고 말하지만 가끔 인생에서 정말 내가 주인공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소외당하는 기분, 혹은 나만 그대로인 채 시간이 흘러가는 기분이 들 때, 내 삶의 이방인이 나인 것처럼 낯선 기분이 든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정말 나일까? 아니면 주인공 없는 인생에서 나의 존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삶인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스무 해가 좀 지난 어떤 날에 나는 학교를 잠시 중단하고 일을 해야 했다. 주중,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그중 한 대학교 근처 중심가 매장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화장품 박스를 이리저리 나르고 진열대에 화장품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에 동갑내기 학생들이 매장으로 들어와 귀여운 웃음소리와 함께 화장품을 이것저것 바르고 매장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한 동안 그곳을 바라봤다. 문 쪽으로 들이치는 눈부신 햇살, 바깥에 보이는 풍경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겹쳐져 순간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뿜어져 오는 햇살은 지나치게 강렬했고, 그 눈부심이 나의 눈마저 찡그리게 만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상상했던 스무 살 주인공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스무 살 남짓 어린 나이의 철없는 투정이었을지도 모르고, 문 밖의 사람들을 비교해가며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열등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빛나는 내 청춘이 한없이 희생만 당한다고 생각하며 내 삶 속에 나는 없다는 원망만 꾹꾹 눌러 담기만 했다. 그런 모습이 바로 나였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다른 모습들을 외면했고, 그냥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의미를 문 밖의 세상에서만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개천을 따라 쭉 펼쳐진 길을 한 없이 걸었다. 건너편 하늘 위로 해가 점점 지고 있었고 기분 좋은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던 그 날은 아득함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기를 앞으로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막막했다. 혼자였다. 아니, 참 혼자라고 많이 느꼈다. 가족들도 각자의 일로 바빴다. 서로를 세심하게 챙겨줄 수 없는 그런 시기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아픔들이 가득하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나의 위로로 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정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이후로 다시 괜찮은 날들이 찾아오고, 다시 괜찮지 않은 날들이 그렇게 반복되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은 너무 쉽게 '별 거 아닌 일'이 되었다. 충분히 빛났던 그 시기에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삶의 주인공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쌓였던 시간만큼 어느새 나는 더 단단해져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 인생의 주인공은 없어. 그렇다고 내가 조연이라는 건 아니야.

내 인생은 이미 내 것이기에 내가 무언가가 꼭 되어야 할 필요가 없을 뿐이야.

내 인생이라는 문장의 명사는 바로 나라는 사실,

즉 내 삶의 이야기가 되는 대상과 목적은 결국 내가 되는 것인데,

나라는 사람이 곧 삶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잊어버린 채

스스로를 탓하고 원망만 했었던 것 같아'




삶의 명사는 바로 당신입니다,
 'The Noun of life is You'



삶은 내 의지대로 여전히 멈춰주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나와 상관없이 흘러갈지라도, 문장의 주어인 명사를 다른 품사가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삶의 나의 존재는 어느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다. 내가 정해놓은 내 삶의 방식 속에 '꼭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맞다'라는 강박관념들이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를 희생시켜 온 건 아닐까. 온전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도 참 쉽지 않은데 말이다.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삶의 '명사'이다. 여전히 내 삶에는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있다. 내게 붙어 있는 살보다 쓸데없이 달라붙은 힘을 빼고 살아야지.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의식하자.


내 삶 속의 명사가 나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