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우리 집 보일러에서 누수가 발생해 아래층 주방에 물이 떨어진 것이었다.
아래층은 세대주가 바뀌는 시점이었고, 새로 들어올 집주인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조목조목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임에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을 회피하거나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지만, 주변을 돌아보아도 나 대신 이 상황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내가 팔로우하는 작가 <하영>님 언젠가 글로 말했다. 책임지는 태도는 삶의 관리자로서 아무에게도 권한을 넘겨주지 않는 줏대를 만든다고 말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치솟는 예산에 마음을 다잡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 도배만 해주면 될 수도 있다는 나의 바람은 곧 물거품이 되고 석고보드와 주방 붙박이장까지 교체하게 되며 수리예산은 빠르게 올라갔다. 백에서 이백, 이백에서 삼백.. 삼백에서 더?
이러한 안 좋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속은 쓰리지만 몇 가지 생각들로 이를 헤쳐나가 보고자 했다.
먼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아래층 누수는 피해상황에 따라 거실까지 번질 경우 최대 1,200만 원까지 견적이 나올 수 있으며 이를 보상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며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입혀 보상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가며, 내가 벌어진 일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런 상황에서 다행인 점들을 찾아나갔다. 누수 피해에도 금액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 수리업체 사장님들이 친절한 점, 휴가를 떠나기 전 누수 사실을 알게 되어 조치할 수 있었던 점, 아내에게 관련 보험이 들어있었던 점, 친구가 보일러 회사에 다니는 점 등 안 좋은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감사할 점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누수사고가 발생해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생각보다 일이 잘 처리되고 있는 사실들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수리업체들과 빠르게 컨택하고 수리 일정이 무리 없이 잡히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들과 달리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그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정리한 뒤 다시 <하영>님의 글을 한 번 더 읽어본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면 된다. 인생은 이러한 과정에서 한층 심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