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발표하거나 적어내야 할 때 나도 꽤 다양한 것들을 말하곤 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계속해서 틀리던 특정 부분의 박자를 잘 쳐냈을 때,
그래서 옆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진심으로 감탄해 줬을 때 이후로 한동안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만화 대여점에서 순정만화들을 빌려보는 재미에 빠졌을 땐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해리포터를 접하고 오로지 글뿐이면서 꽤나 두툼한 책에 오롯이 빠져드는 경험을 처음 해보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든 어른이 되기만 하면, 미성년을 벗어나기만 하면 뿅 그 모습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너무나 달콤한 착각이었다.
정말 어른이 되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 거쳐야 할 고민의 관문들을 전혀 몰랐고
그 문 앞으로 나를 이끌어 줄 혹은 손가락으로 얼핏 가리키기라도 해 줄 어느 누구도 곁에 있지 않았다.
아 언젠가 색칠놀이를 할 때 본 그림이 생각난다.
그림 속 여자아이는 여러 개의 이정표 앞에서 어느 길이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색칠을 하다 말고 거기에 중얼거려놨다.
‘내 인생엔 이정표조차 없는 것 같아.. 헷갈려도 좋으니 누가 이런 것 좀 세워줬으면 좋겠다..’
어디에선가 성인이 됐으면 어렸을 때의 과정은 어땠건 그저 자기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과거를 곱씹는 건 그만해야 한다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좀 삐딱하게 들으면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거냐는 훈계같다.
아 나는 그 때 상처를 제법 많이 받았었다.
어릴 때의 내 달콤한 착각대로 성인이 되자마자 ‘뿅’ 하는 마법이 벌어졌다면 별 타격이 없었을텐데
너무나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내 생각에 어릴 때의 경험은 나의 평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너무나 괴롭고 또 억울하고 그러다가 의연해져보려고 노력하고 그런 과정의 반복 속에 있다.
그러다보니 나는 계속 되돌아보고 때때로 내 상태가 괜찮을 때는 그 때의 나를 다독여주기도 하면서
이렇게 계속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말 모든 걸 아직도 환경 핑계나 대는 못난 내 탓을 해버리면 나는 정말 못 살 것 같기 때문에,
내가 살기 위한 발버둥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스물이 넘어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든 내게 일을 맡겨주기만 한다면 그래서 내가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면
그것 외에는 내가 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처음 구직 사이트를 둘러볼 때의 막막함이란. 내가 대체 그 사이트는 어떻게 찾아갔더라?
그래서 내가 가장 처음 했던 일은 휴대폰 공장에서의 아르바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