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첫 출근길, 그건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어

by 김지은이

아르바이트 모집에 합격하고 첫출근 셔틀버스를 타러가던 날 아침

나는 소풍가는 학생처럼 들떠서는 아끼는 옷을 입고 자그마한 백팩을 메고 새벽길을 나섰다.

동네에서 벗어나 바로 나타나는 큰 사거리가 셔틀버스를 타는 곳이었고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줄의 맨 끝으로 가면서 나는 방실방실 웃는 얼굴이었는데 지친 표정의 사람들 틈 사이에서 안좋은 의미로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의뭉스러운 눈초리들을 개의치 않을 수 있을만큼 들떠 있었다.

왜냐면 나는 구인공고에 지원해 합격했고, 이제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 1년 정도 폐인처럼 생활했다.

남들처럼 대학을 안가니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런 내게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버스를 타고 낯선 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에서 가장 먼저 작업복을 지급 받아 입었다.

작업복은 누리끼리한 회색이었는데, 내가 아끼는 옷을 골라 입고 나온 보람이 없어졌다.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긴 테이블에 일렬로 마주보고 앉았다.

휴대폰 내부에 들어가는 여러가지 부품들의 불량을 테스트 하는게 주된 업무였다.

교육자가 업무교육을 설렁설렁 해주고 나면 곧바로 일에 투입되었는데 실제로 작업을 하다보면 불량인지 아닌지 애매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분위기상 그걸 일일이 물어보기엔 눈치가 보였고, 그저 내 감에 맡겨가며 불량과 정품을 갈랐다.


같은 건물에서 층을 나눠 사무실 직원, 공장 직원들이 사용했는데

한 번씩 공장으로 사무실 직원이 내려와 업무가 잘 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외국 거래처 사람을 데려와 통역을 해가며 견학시켜주기도 했다.

출근하는 날들이 쌓여갈수록 사무실과 공장 직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점점 선명하게 느껴졌다.

또한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무리가 갈리고, 그 무리간의 신경전도 생기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 중 자주 내려오는 팀장님이 있었다.

올 때마다 시원시원하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늘 웃는 얼굴이어서

나도 긴장을 좀 풀고 웃으며 인사를 드릴 수 있는 분이었다.

입사동기들이 직원과 알바로 경계가 나뉘고 난 뒤 직원만 참여 가능한 회식이 있었다.

배제된 알바생들과 신입 직원들이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 같은 업무를 하던 어느 날

그 잘 웃는 팀장님이 사비로 알바생들을 모아 회식을 주선해주셨다.

알바생a 였던 나도 기쁘게 따라가 먹고 마시고 노래방까지 자리가 이어졌다.

신나는 선곡에 다들 일어서서 몸을 흔들고 있는데 팀장님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넌 이제부터 내 거야.”


팀장님은 휴대폰 배경화면에 아기사진을 올려둔 유부남이었다.

한껏 취기가 올라있던 와중에 서서히 소름이 끼쳐왔다.

나는 역시나 내가 너무 헤프게 웃었는지를 곱씹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헤실헤실 웃고 다니던 내게 누군가 공격적인 표정으로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너는 인생에 고민이 없지? 월급 받으면 부모님 좀 드리고 다 니 용돈으로 쓰고 그러지?”


그 때처럼 역시나 내가 너무 웃었나보다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웃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고 (그걸로 칭찬을 들은 적이 있었고)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오바해서 웃음을 팔고 다녔나 자책했다.


회식자리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잘렸다.

어떤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구나 어렴풋이 짐작되었고,

한 번 그 대상이 된 다음에야 그만두기 전엔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사무실의 높은 직급의 남자분이 나를 싫어하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타 준 커피를 들이켜고

업무도중 내게 해고소식을 전해왔다.

매끈하게 불만을 표출할 줄 몰랐던 나는

쎄한 분위기 속에 짐을 챙겨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노려보며 그 곳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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