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 박사과정생, 육아와 논문 사이에서 버티는 중

by 생태정원가

내가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내 기둥이 송두리째 뽑혀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느낌이라, 정신을 온전히 붙잡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로 정리해 두려고 한다.


이 글이 내 연구의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도, 만일 이렇게까지 했는데 학위논문을 마무리 하지 못한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을꺼란 걱정도 든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삽질하고 있는 많은 박사과정생들과, 또 학업과 육아와 일까지 병행하는 여성들과(굳이 선을 긋자면~) 한발씩 나아가길 바라면서.


2월 28일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생들이 모여서 '박사세미나'를 진행했다.

교수님은 올해 1학기와 2학기 두 학기만을 남겨두셨고, 내년 2월 정년이시다.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는 사람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간혹 쓸 예정이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오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2학기 밖에 남지않았지만 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어림잡아도 10명이 넘는다. 한학기에 4명 가량 박사학위를 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이 학위는 서울대 박사학위 아닌가...


올해 2월 중순, 설날 연휴였다. 주말까지 합치면 5일이었다. 주로 시댁을 가거나, 가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늘 해오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과감하게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만 서울에 남기로 했다. 정말 과감한 결정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너무 쿨하게 응해주었다. 결혼을 하고 경제적인 도움이 1도 안 되는 어떤 행위를 할 때, 배우자의 이런 반응은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2월 28일 교수님과의 단체 면담을 위해, 4일 내내 사무실에 나왔다.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책장에 인테리어처럼 꽂혀 있던 책들이 뽑혀서 사무실로 옮겨왔다. 온갖 책을 읽고 논문 구조를 짜고 AI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4일 동안 나는 '식생경관'이라는 말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이론적 고찰을 다르는 2장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했다. 식생경관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3장을 기계적으로 채워나가는 건, "나"라는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AI조차도 조언을 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이론을 늘리면 나중에 정리가 안된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면담 전날까지 나는 2장을 완성하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D-day까지 누워서 그 프레임을 곱씹고 또 꼽씹다가 마지막에야 겨우 시작한다. 이번에도 그랫따. 마지막 날까지 3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그 와중에 유투브 채널에서 논문에 대한 강의를 발견했고, 한국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식생경관'의 학문적 틀이 유럽에서 최근 완성되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뭔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뭔가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교수님을 만났고, 내가 2월 한달동안 써낸 50페이지의 원고는, 그 자리에서 폐기되었다. 교수님은 읽어보시지도 않았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며 이렇게 앉아있다.

'나는 논문을 못 쓰는건가?'

'교수님 박사 리스트에 나는 없는건가?'

'나는 박사 자격이 없나바.'

며칠동안 이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다. 여전히 그 굴레를 완전히 벗어난건 아니다. 도대체 왜 이 과정을 시작했던 것인지, 2020년 코로나 그 시기에, 몸도 성하지 않았던 나는 왜 호기롭게 박사학위를 위한 과정에 들어온건지-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러나 저러나 물어서 무엇하나, 지금은 2026년 인것을.


다시 한숨 내려놓고 보면, 어쩌면 지금의 이 과정 자체가 참으로 순조로운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3년 안에 후다닥 이 과정을 끝내는 대단한 사람들도 있다. 연구란 무엇인지,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라는 걸 깨닫는데 지금의 시간이 들었다. 오래전 유교수님이, "박사는 하지말아라. 생각도 하지말아라." 라고 하셨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과정을 끝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길에 다시 한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지만,

핵심은 이제 부터다.


나는 2월 3일, 목차와 함께 교수님께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사례연구 대상지로 삼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28일에 가서는 완전 박살이 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내 진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수님께 "2장과 3장을 정리중에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사실 3장을 다 제대로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세미나 준비에서 또 미흡했던 건, 대상지에 대한 1차 현장조사 내용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목도 바꿔서 갔다. [식생경관 구조 분석을 통한 국가하천 생태공원의 형성 기작과 생태적 특성: 한강 샛강 생태공원을 중심으로]를 [도심하천 생태공원의 식생경관 특성: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대상으로]로 바꿔서 갔는데, 교수님은 이 제목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하신 것 같다. 교수님의 정확한 의중은 알 수가 없다. 교수님은 내 두꺼운(?) 원고는 펼쳐보지도 않으셨다. 이렇게 글을 쓰는건 소용이 없다라고 하시면서 말로 해봐 라고 하셨지만, 교수님이 원고를 치우라고 한 순간부터 너무 떨려서,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날의 결론은 딱 하나였다. "그래도 여의도샛강생태공원으로 하는걸로 만족하자."

대상지! 그것만 정해진 날이었다. 한달 동안 써낸 50페이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답답하다!!!!!!" "그래서요, 뭐라고요?" "좀 더 길게 말씀해주세요!!!" 하지만, 마음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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