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 박사과정생, 30%의 길

작년 이맘때, 딴짓을 하고 있었다.

by 생태정원가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정신 차리고 좀 했을 텐데...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봄비가 내리는 오늘 작년 이맘때 작업했던 현장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봄비를 촉촉하게 머금은 식물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나보다. 사진과 함께 여기저기에 봄은 왔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시베리아다. 작년 이맘때 왜 논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했나 싶다가도, 소논문도 한편 쓰고, 그래서 한발자국 졸업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자리 같기도 하다.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논문을 쓰려고 아둥바둥 대다보니, 학과 내규에 적힌 글들이 이제서야 보인다. 학위논문과 그동안 해오던 박사세미나와 투고 논문과의 연계성도 있어야 한다. 또 연구 주제를 잡는 것만큼이나 놓치면 안 되는 행정 시스템이다. 논문을 쓰기 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영어 점수, 논문자격시험, 그리고 학술대회나 KCI의 투고한 논문의 점수 등등을 채워야 한다. 이것또 쉽지 않았었다. 이것을 비롯해서 수강신청을 놓치면 한 학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나가도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학기엔 심사조차 시작할 수 없다. 학교마다 내규는 다르다. 어떤 곳은 심사를 한 번만 하거나 서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연구계획서 심사를 먼저 통과해야 하고, 그다음 학위논문 심사가 지도교수님을 제외한 4명의 심사위원으로 3회에 걸쳐 진행된다. 아주 빡세다.


얼마 전 아는 교수님께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예로 들며 이야기해주셨다. 스티븐 호킹이 박사 학위를 따는 장면 — 3차 심사 때 "통과"라는 말 한마디와 악수 한 번으로 끝나는 그 장면이라고. 어쩌면 그게 박사과정의 본래 흐름인데, 우리는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다 마지막까지 고치면서 원고를 낸다고 한다. 되짚어 생각해도 스티븐 호킹과 비교한 것은 너무 잔인했다. 어찌되었던 그러한 과정들 때문인지, 애초에 학위라는 것이 갖는 의미 때문인지, 전체 박사과정생 중 30%만이 졸업하고, 나머지는 수료생으로 남는다고 한다.

박사과정을 시작했을 때 두리뭉실 시작한 나로써는 이제가 되서야 많은걸 알아차리고 있다.


지난 박사세미마 이후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진전이 없다.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10시간 가까이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도, 단 한 자도 못 쓴 채로 끝난다. 마음속의 디데이는 정해두었다. 그러면서도 저번 주 내내 지인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나를 질책하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어쩌면, 앉아있는 만큼은 아주 미묘하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논문에 대한 조언도 들었고, 지난주엔 GIS 관련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자료를 어떻게 찾고 정리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책에서 건진 것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논문은 생각보다 돈이 든다고 한다.


요즘은 머릿속이 온통 논문뿐이다. 내가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내야 한다는 압박은 여전하다. 교수님이 두렵다. 무섭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삽질하고 있는 것도 다 아시겠지? 어차피 해야할 삽질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 쫄 필요 없다. 입학도 했으니 졸업도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 아마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뭐 이것이 리얼한 박사과정생의 수준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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