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2019

야구가 아닌, 꿈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

by 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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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야구장을 찾은 한 남자가 있다.

이 경기에서 만년 꼴찌 구단 '드림즈'는 졸전을 선보인 끝에 처참히 패배한다.

돌아서는 남자, 백승수는 왠지 쓸쓸하게 보인다.

야구 경기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를 패배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슬프게 묻는,

우리 모두의 꿈에 대한 드라마다.


제목인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 구단이 팀 전력 보강을 위해 노력하는 시기를 말한다.

겨울에 난로(스토브)를 둘러싸고 앉은 야구팬들이

다음 시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 제목처럼 <스토브리그>는

차디찬 세상 속에서 우리의 가슴을 덥히는 열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눈부신 조명 아래서의 화려한 플레이는

우리의 인생에서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니까.

우리 모두는 그보다 훨씬 길고 긴 스토브리그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끝이 언제일지 모를 노력을 이어가야만 하는 인생의 스토브리그 말이다.


<스토브리그>가 기존의 스포츠물들과 궤를 달리하는 이유는

스포츠물의 외피 속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엔 근성론으로 점철된 지옥훈련이나,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이 만든 기적같은 승리,

적의로 시작해 우정으로 나아가는 라이벌이 없다.

왜냐하면 드림즈를 망가뜨리는 주범은

선수들의 재능 부족이나 강적이 아니라,

세상 어디든 만연하고 있는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훼방꾼들은 누구보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우리를 미혹하려 하고,

기회는 실력보단 파벌 속의 정치 다툼으로 얻어지며,

돈과 권력, 갈등과 관행은 매 순간 신념과 원칙을 뒤흔든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진 우리를, 백승수는 한마디 말로 일깨운다.

"당연한 걸 다행이라고 하는 세상입니까?"

결코 '다행'이 되어선 안되는,

'당연'해야 마땅한 것들을 '당연'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

맡은 자리에서의 윤리와 책임에 충실하며,

오직 실력에 따라 기회를 얻고,

관행보단 원칙을 따르며,

갈등 앞에서 신념을 지키는 것.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그 당연한 것들.


직무를 위해선 어떤 부당과도 정면승부를 벌이는 백승수지만,

싸움에는 영 재주가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명분만 생기면 폭력을 휘두르는 여타의 드라마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부패, 무능, 부조리와 맞서 싸우기에,

우리는 깨닫게 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폭력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폭력을 동원치 않고 싸우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용기라는 것을.


4화. 부정을 저지른 스카웃 팀장 고세혁은 드림즈를 떠나게 된다.

한때 드림즈의 선수였던 그는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섰었다.

데드볼 때문에 출루하고 득점까지 할 수 있었던 그는,

데드볼이 아니라 파울이라며 판정을 정정했다.

요행히 승리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것이다.

지금은 선수에게 뒷돈을 받아 챙기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운영팀장 이세영이 그때의 그가 멋있었다며 회고하자,

고세혁은 씁쓸하게 말한다.

"그땐 젊었으니까."

그러자 이세영은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꾹 누르며 말한다.


"아뇨. 정의로웠으니까..."


이세영의 그 말과 얼굴은 정말이지 보는 사람의 사람을 친다.

어쩌면 우리가 놓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정의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줄 정의.

혹은 승리를 승리답게 만들어줄 정의.

<스토브리그>는 정의를 위해 용기를 내라고 다독인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정의란 악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그건 룰을 지키는 것이다.

세상을 세상답게,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룰.


그래서 <스토브리그>는

이래야 마땅한 세상,

원래는 그랬던 이 세상이

지금은 왜 그렇지 않느냐고

야구를 빌어 매 순간 목놓아 부르짖는 드라마다.

야구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스포츠다.

<스토브리그>는 우리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만 같다.

원래는 그랬던, 하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그 세상으로.


이신화 작가는 탁월한 극작술로

주제와 서사 사이의 거리를 절묘하게 봉합하며

박진감 넘치게 극을 이끌어 나가고,

정동윤 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극의 동선과 감정선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려낸다.

이 콤비의 빈틈없는 협연이야말로

이름값보단 실력이 중요하다는 <스토브리그>의 주장에 대한 최고의 증빙이다.

남궁민은 특유의 정교한 연기로 단장 백승수를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우뚝 세우고,

오정세는 남궁민과 완전히 상반된 연기톤으로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씩씩한 표정과 단단한 저음으로 이 테스트스테론의 세계에 온기와 유머를 불어넣는 것은 박은빈.

프런트 직원과 선수를 연기한 수많은 배우들 역시도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완벽한 팀플레이.


<스토브리그>는 정말 드물게도,

드라마 자체만큼이나 그 이야기를 써낸 작가를 사랑하게 만든다.

탁월한 드라마는 별처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스토브리그> 같은 드라마는

아이디어와 극작술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품은 희망과,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작가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숱한 고통과 고민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매순간 되묻는 그 신념.

좋은 드라마는 깊이 있는 사람을 그려내는 것이지만,

위대한 드라마는 깊이 있는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다.


작가의 책상에서 씌여진 <스토브리그>가

우리의 안방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5년이다.

그 기나긴 어둠의 시간 동안

이신화 작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스토브리그>가 말하는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심금을 울린다면,

그건 당신이 꿈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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