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았던 신고식이 끝나고,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악몽에 시달리던 훈련생들에게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형태의 고문, '강제 노동'이었다.
"단순 반복 작업은 잡념을 없애는 데 효과적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십시오."
오전 9시. 작업장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훈련생들에게 주어진 일무는 전자 부품을 조립하는 것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부품에 나사를 끼우고 납땜하는 일. A부터 G까지, 7명은 좁은 책상에 닭장처럼 붙어 앉아 기계처럼 손을 놀렸다.
"아악!"
어린 F가 비명을 질렀다. 졸다가 인두기에 손가락을 데인 것이다. 살 타는 냄새가 확 풍겼다.
"작업 중지. F 훈련생, 경고 1회."
조교는 상처를 봐주기는커녕 몽둥이로 책상을 내리쳤다. F는 울음을 삼키며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으로 다시 나사를 집어 들었다. 이곳에서 노동은 의무였고, 아픔은 사치였다.
G(호준)는 묵묵히 납땜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작업대가 아닌, 작업장 구석의 '환풍구'를 향해 있었다.
'냄새가 달라.'
작업장 전체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지만, 저 구석 환풍구 근처에서만 미세하게 흙냄새와 풀냄새가 섞인 찬 바람이 느껴졌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점심시간, 딱 10분. 조교들이 교대하는 시간.'
G는 타이밍을 노렸다. 점심 식사 후, 모두가 식기를 반납하러 간 어수선한 틈을 타 G는 짐짓 배가 아픈 척하며 작업장 구석으로 향했다. CCTV가 회전하며 사각지대를 만드는 찰나의 순간. G는 재빨리 환풍구 덮개를 손으로 잡아당겨 보았다. 덜컹. 나사가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덮개 틈으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것은 이 지옥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희망'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G는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았다. E(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식판을 든 채 G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쉿."
G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E를 구석으로 끌어당겼다.
"저기 보여요? 나사가 풀려있어요. 저기로 나가면 바로 건물 뒤편 야산이에요. 밤에 몰래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E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위험해요. 걸리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여기서 말라 죽으나, 나가다 죽으나 똑같잖아요. E 당신도 알잖아요. 저들이 우리를 순순히 내보내 줄 리 없다는 거."
G의 절박한 눈빛에 E가 마른침을 삼켰다. 잠시 후,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조교들 순찰 패턴을 봐둘게요. 당신은 저 덮개를 열 도구를 찾아봐요."
두 사람은 짧은 눈빛을 교환하고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식기 반납구 너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하나의 눈이 있다는 것을.
D(전직 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식판을 닦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곁눈질로 계속 G와 E를 쫓고 있었다. 두 사람이 구석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는 모습, 환풍구를 가리키는 손짓, 결의에 찬 표정. 무슨 대화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탈출 모의.'
원장이 말했던 바로 그 '정보'였다. D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하면 저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될까? 독방에 갇힐까? 아니면 어제처럼 가스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할까?
"아줌마, 왜 그러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F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D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둔 쪽지가 손끝에 닿았다. 원장이 몰래 건네준 직통 보고용 쪽지였다.
'취업 우선권.'
'안락한 노후.'
'명예 회복.'
악마의 단어들이 D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나이에 다시 거리로 나앉을 수는 없었다. F나 G는 젊으니까 다시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D는 입술을 깨물며, 화장실에 가는 척 조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쪽지를 슬며시 조교의 손에 쥐여주었다. 쪽지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G와 E. 작업장 환풍구. 오늘 밤.]
그날 밤. 숙소에 누운 G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모두가 잠들면 E가 신호를 줄 것이다. 그때 숟가락을 갈아 만든 간이 드라이버로 환풍구를 뜯어내면 된다.
드르륵. 갑자기 숙소 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다. 한밤중의 기습 점호인가? G는 자는 척하며 실눈을 떴다. 그런데 들어온 것은 점호 당직이 아닌, 작업복을 입은 시설 보수팀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작업장 쪽으로 향했다. 위잉- 위잉- 곧이어 요란한 용접기 소리와 드릴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무슨 일이지?"
잠에서 깬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G는 불길한 예감에 식은땀이 흘렀다. 30분 뒤, 소음이 멈추고 조교가 숙소로 들어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취침 중 잡담 금지! 작업장 시설 보수가 완료되었다. 내일부터 작업장 환풍구 근처 접근을 엄금한다. 접근 시 탈옥 간주하고 즉시 사살한다. 이상."
쿵.
G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환풍구. 보수 완료. 접근 금지.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명백히 누군가 알고 미리 손을 쓴 것이다.
G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 낮, 그 계획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E. G가 고개를 돌려 여자 숙소 쪽을 노려보았다. 벽 너머에 있을 E를 의심하는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반대편 여자 숙소. 이불을 뒤집어쓴 D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그녀의 베개 밑에는 배신의 대가로 받은 달콤한 초콜릿 바 하나와, [모범 훈련생 포인트 +10] 이라고 적힌 카드가 숨겨져 있었다.
그날 밤, 훈련원에는 차가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누군가는 희망을 잃었고, 누군가는 양심을 팔았다. 그리고 G는 깨달았다. 탈출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콘크리트 담장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동료'라는 사실을.
[다음 화 예고] 서로를 향한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G는 E를 의심하고, E는 억울해한다. 그 사이, D는 원장의 신임을 얻어 '반장'으로 임명되는데... 과연 G는 진짜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작가후기
네 오늘도 한편 올라갑니다.
다음주부터 현생에 찌들 예정이라
빠지는 날이 있을지도 몰라서요...ㅎㅎ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