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설계된 배신

by 홀로서기

[탁. 탁. 탁.]


절벽 아래쪽 어둠 속에서 거대한 서치라이트가 켜졌다. 눈을 뜰 수 없는 강렬한 빛이 네 사람을 집어삼켰다. 그 빛 뒤편에서, 원장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G 훈련생. 역시 자네는 똑똑해. 그 뻔한 '민가' 루트를 버리고 이 험한 절벽을 택하다니. 내 예상을 벗어난 건 자네가 처음이야.]


빛이 조금씩 사그라지자, 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옆, 캠핑용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중년 여성. D(교수)였다.


"......교수님?"


E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미쳐서 끌려갔던 D는 너무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죄수복 대신 고급 등산복을 입고, 헝클어졌던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오랜만이네, 다들. 숲길은 험하지 않았어?"


D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광기 대신 살아남은 자의 오만함만이 가득했다.

"D... 당신, 멀쩡했던 거야? 우릴 속인 거야?"


E가 배신감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하지만 G(호준)의 시선은 D가 아닌, 바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A(사업가)를 향하고 있었다. G는 A를 바라보며 낮게, 아주 차갑게 물었다.


"형님."

"......"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지도를 찢어버리고 길 없는 숲을 뚫고 왔는데... 저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G의 질문에 A의 어깨가 움찔했다. G는 피 묻은 진압봉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했어. 담벼락 밑의 센서, 형님 발밑에 있었죠. 그리고 그 가짜 지도, 형님이 의무실에서 훔쳐 왔다고 했고."

"G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A가 억울하다는 듯 뒷걸음질 쳤다. 그때, 원장 옆에 있던 D가 손짓했다.


"그만하고 이리 와요,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연기하느라 힘들었죠?"


그 한마디. A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겁에 질려 있던 유약한 중소기업 사장의 얼굴은 사라지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냉정한 장사꾼의 얼굴이 드러났다.


"......거참, 젊은 친구가 눈치가 너무 빨라."


A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G와 E에게서 등을 돌려 원장 쪽으로 걸어갔다.


"아저씨...?"


F가 믿을 수 없다는 듯 A의 뒷모습을 불렀다. A는 멈칫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나도 살아야지. 부도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는데, 이깟 의리가 무슨 소용이야?"

"이... 개자식들아!"


E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려 했지만, 숲속에 매복해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완벽한 배신이었다. D는 원장과 거래를 했고, A는 그 거래를 실행하기 위한 '내부 스파이'였던 것이다. G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경로를 바꿔도, A가 주머니 속 발신기로 실시간 위치를 보고했기에 그들은 독 안의 쥐일 수밖에 없었다.

원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보십시오. 이것이 자본주의의 축소판입니다. 정보와 거래, 그리고 배신. 살아남은 자가 정의 아니겠습니까?]

원장은 지팡이로 G를 가리켰다.


"자, G 훈련생. 이제 자네 차례야. 내 밑으로 기어 들어와라. 자네의 그 영리함을 높이 사서, D와 A처럼 특별 채용해 주지. 하지만 거절하면..."


원장의 시선이 E와 F를 향했다.


"저 쓰레기들과 함께 여기서 폐기 처분이다."


E와 F는 공포에 질려 서로를 끌어안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벽 끝. 하지만 G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 묻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거래? 합격? 웃기고 있네."


G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당신들이 하나 간과한 게 있어."

"......?"

"나는 늑대지만, 물리면 안 놓는 미친개라는 거."


G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투박한 무전기처럼 생긴 검은 기계장치. 그 위에는 빨간색 덮개가 씌워진 버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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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 알아?"


G의 외침에 원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하 2층 연구실. 거기 전력 제어반을 박살 낼 때, 내가 다이너마이트를 좀 설치해 뒀거든. 이 버튼 하나면 연구실에 있는 당신의 그 소중한 '데이터'들과 시설들이 몽땅 날아갈 거야."

"......!"


원장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D와 A의 얼굴도 사색이 되었다.


"거짓말하지 마! 폭약이 어디 있다고!"


A가 소리쳤지만, G는 엄지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작업장에서 훔친 화약과 뇌관이야. 못 믿겠으면 쏴 봐. 내 심장이 멈추는 순간, 내 손가락 힘이 풀리면서 버튼이 눌릴 테니까."


G는 원장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원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놈들에게 훈련생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지만, 그 지하의 '데이터'는 돈이자 생명줄이었다.


"길 좀 비키시지? 내 동료들 데리고 나가게. 안 그러면, 다 같이 죽는 거야."


벼랑 끝에서 꺼내 든 G의 마지막 패. 진짜 도박은 지금부터였다.



[다음 화 예고]

제18화. 진실의 버튼

"쏘려면 쏴. 내 심장이 멈추면, 니들 돈줄도 다 날아갈 테니까."


절벽 끝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도박. 원장은 G의 눈빛에서 '진짜'를 읽어내려 애쓰고, 배신자 D와 A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리기 시작한다.

과연 G가 쥔 기폭 장치는 진짜일까, 아니면 대담한 거짓말일까? 운명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드디어 훈련원의 밤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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