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탈출을 꿈꾸는 쥐새끼 여러분.]
원장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밤공기를 찢어발겼다. 동시에 담벼락 위 감시탑에서 서치라이트 수십 개가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눈앞이 하얗게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빛.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파열음.
타탕-! 타타탕!
담벼락 위로 불꽃이 튀고 콘크리트 파편이 빗발쳤다. 위협 사격이었다.
"뛰어! 구멍으로 나가!"
G(호준)가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F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담벼락 밑, G가 피와 땀으로 파놓은 유일한 생명줄인 개구멍.
"아악!"
F가 비명을 지르며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E가 그 뒤를 따랐다. 문제는 A였다. 점잖은 사업가였던 그는 총소리에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나... 나는 못 가... 자네들끼리 가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일어나요, 형님!"
G는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 몸을 낮춘 채, A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다시피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가요! 여기서 죽고 싶어요?!"
G의 고함에 정신이 든 A가 허우적거리며 구멍을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G가 몸을 던져 구멍을 빠져나가는 순간, 놈들이 쏜 총알이 G의 발뒤꿈치 바로 옆 땅바닥에 박혔다.
[숲의 입구]
담벼락 밖. 차가운 새벽 공기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자유를 만끽할 틈은 없었다.
"숲으로! 무조건 숲 안쪽으로 달려요!"
G가 앞장서며 소리쳤다. 네 사람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때 뒤쪽 철문이 열리는 굉음과 함께 맹견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랜턴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며 그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추면 죽음뿐이었다.
30분쯤 정신없이 달렸을까.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의 깊은 곳. 놈들의 추격 소리가 조금 멀어지자, 네 사람은 거대한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G... 우리... 성공한 건가?"
A가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 F와 E는 바닥에 주저앉아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G는 대답 대신 거친 호흡을 고르며 A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까 담벼락 밑. A의 발치에서 울렸던 센서. 분명 어제까진 없었던 것이었다.
'우연일까? 하필 A 형님이 서 있던 자리에?'
그때, A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거... D 교수님이 끌려가기 전에 나한테 몰래 쥐여준 건데..."
"그게 뭡니까?"
E가 놀라서 묻자, A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쳐 보였다.
"탈출 루트라네. D 교수님이 의무실에 잡혀가기 전에 조교들 지도를 훔쳐봤다고... 숲을 지나서 이쪽으로 가면
민가가 나온다고 하더군. 혹시라도 흩어지게 되면 거기서 만나자고 했어."
민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G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D의 갑작스러운 발광과 퇴장. A의 발밑에 설치되어 있던 센서. 그리고 지금 이 타이밍에 나온 '민가'로 가는 지도.
'아니야. 이건 우연이 아니야.'
G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원작에서도 그들은 '민가'를 찾아 이동하다가 도로변에서 매복에 걸려 전원 사살당했다. D가 A를 통해 전달한 저 지도. 저것은 희망의 지도가 아니라, 원장이 파놓은 '죽음의 길'로 안내하는 초대장이었다.
"G 오빠... 우리 그리로 가야 해? D 아줌마가 거기서 기다린대?"
F가 희망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D를 믿고 있었다. A 역시 재촉했다.
"그렇지, G? D 교수님이 우릴 배신할 리 없잖나. 어서 그쪽으로 가세. 놈들이 쫓아오고 있어."
A의 눈빛. 공포에 질린 듯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G는 A의 손에서 지도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달빛에 비친 지도는 숲을 가로질러 도로변으로 나가는 길을 친절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형님."
"어, 어? 왜 그러는가?"
"이 지도는... 가짜입니다."
G가 천천히 종이를 구겨버렸다. A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D 교수님이 목숨 걸고 빼낸 정보인데!"
"이대로 가면 민가가 아니라, 놈들의 '도살장'이 나올 겁니다."
"무슨..."
"D는 안 옵니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랑 같이 갈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G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배신자는 D였다. 그리고 눈앞의 A 역시, 의도했든 아니든 놈들의 계획대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럼... 우린 어디로 가야 해?"
E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G는 어둠이 깔린 숲의 반대편, 지도가 가리키지 않는 '길 없는 곳'을 바라보았다. 험준한 산세가 이어지는 절벽 쪽이었다.
"D가 오라고 한 곳의 정반대로 갑니다."
역습의 시간이었다. 놈들은 우리가 지도대로 움직일 거라 믿고 매복해 있을 것이다. 그 허점을 찔러야 한다.
G는 피 묻은 진압봉을 고쳐 쥐며 A를 똑바로 응시했다.
"따라오세요. 살고 싶으면.“
[다음 화 예고]
제17화. 설계된 배신
"여기가... 끝이야?"
가시덤불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 G는 A의 유도를 피해 경로를 바꿨지만, 그곳에는 이미 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장의 옆,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D 교수.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설계된 함정이었다. 절벽 끝에 몰린 G,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마지막 카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