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피로 쓴 탈출구

by 홀로서기

"오빠...!"


F의 비명과 함께 시커먼 그림자가 호준의 머리 위로 쇄도했다. 호준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F를 벽 쪽으로 밀치며 진압봉을 대각선으로 쳐올렸다.


카앙-!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손목이 찌릿하게 저려왔지만, 호준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놈의 힘이 진압봉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틈은 있었다. 호준은 상대가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찰나, 몸을 낮추며 놈의 오금(무릎 뒤)을 군홧발로 걷어찼다.


"크헉!"


자세가 무너진 놈의 턱주가리에 호준의 진압봉이 정확히 꽂혔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사내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뛰어! 뒤돌아보지 마!"


호준이 F의 손목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좁은 복도, 앞뒤로 조여오는 사냥개들. 정면승부는 자살행위였다. 호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아까 내려올 때 봐두었던 '화물용 승강기 통로'. 그곳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헉, 헉... 오빠, 나 더는 못 뛰겠어..."

"조금만 참아. 다 왔어. 저기까지만 가면 돼!"


F는 공포와 탈진으로 다리가 풀려 계속 휘청거렸다. 호준은 아예 F를 자신의 옆구리에 끼다시피 부축하며 달렸다. 등 뒤에서 "거기 서!"라는 고함과 함께 쇠파이프가 날아와 벽을 때렸다.


쿵!


호준은 닫혀가는 화물 승강기 문틈 사이로 몸을 날렸다. F와 함께 바닥을 구르는 동시에, 놈들의 손이 닫히는 철창 틈으로 들어오려다 끼어 비명을 질렀다.


콰앙!


호준은 진압봉으로 놈들의 손가락을 내리쳤고, 승강기 문이 완전히 닫혔다. 녹슨 쇠사슬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덜컹거리며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F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호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손으로 F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울지 마. 아직 끝난 거 아니야."


하지만 호준의 눈은 쉴 새 없이 승강기 틈새 밖을 살피고 있었다. 이상했다. 지하 2층의 그 삼엄하던 병력이, 승강기가 올라가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올라가라고 길을 터주는 것처럼.


띵-


1층 로비 뒤편, 쓰레기 하적장.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호준은 F를 등 뒤로 숨기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호준아! F!"


E였다. 그녀는 울먹이며 달려와 F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세상에... 너 얼굴이 이게 뭐야...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야..."

"언니... 흐어엉..."


F는 E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고, E 역시 눈물을 흘리며 F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 뒤로 A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점잖은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G(호준), 자네 정말 대단하군. 그 지옥에서 애를 데리고 나오다니."

"......약속 장소에는 이상 없었습니까?"


호준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A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가 허술하더군. 운이 좋았어. 자, 감동적인 재회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이동하지. 새벽 3시가 얼마 안 남았네."


A가 앞장서고, E가 F를 부축하며 뒤를 따랐다. 호준은 대열의 가장 뒤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걸음을 옮겼다.

쓰레기 하적장을 지나, 미리 뚫어놓은 개구멍이 있는 담벼락으로 향하는 길. 밤바람이 차가웠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호준의 등골은 아까부터 계속 서늘했다.


'너무 조용해.'


지하 2층에서는 사살 명령까지 내렸던 원장이다. 그런데 정작 탈출 경로인 1층이 이렇게 조용하다고? 경비가 허술한 게 아니라, 병력을 다 어디론가 뺐다는 느낌.


"오빠, 왜 그래? 빨리 와."


앞서가던 F가 뒤처진 호준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호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갈게."


호준은 애써 불안감을 눌러 담았다. 지금 이 말을 꺼내면 F와 E가 무너질 것이다. A 형님도 당황할 테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걸 거야. 지하에서 너무 긴장해서 그래.'


그때였다. 선두에 서 있던 A가 담벼락 앞 수풀을 헤치며 손짓했다.


"여기네. 자네가 뚫어놓은 구멍이 그대로 있어."


A가 가리킨 곳. 호준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파놓은, 자유를 향한 유일한 통로가 보였다. E와 F의 얼굴에 희망이 번졌다.

하지만 호준의 눈은 구멍이 아니라, A의 발밑을 향했다. 달빛에 비친 A의 그림자. 그리고 그 옆 수풀 속에 숨겨진, 미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

호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건 훈련원 담벼락에 설치된 '동작 감지 센서'의 불빛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저 위치엔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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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형님... 잠깐만요."


호준이 다급하게 입을 뗐다. 하지만 이미 A는 구멍 앞의 나무 판자를 치우고 있었다.


삐익-!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요한 새벽 공기를 찢어발겼다. 동시에, 사방의 서치라이트가 일제히 네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환영합니다, 탈출을 꿈꾸는 쥐새끼 여러분.]


눈부신 빛 너머로, 원장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화 예고]

제16화. 붉은 숲

"뛰어! 구멍으로 나가!"

쏟아지는 서치라이트와 빗발치는 총탄. G는 얼어붙은 A와 F를 밀치며 사지로 몸을 던진다.

가까스로 담장을 넘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안식처가 아닌 '붉은 숲'. 그리고 도주 과정에서 G는 뼈저린 위화감을 느낀다.

'왜 D(교수) 형님만 없는 거지?'

어둠 속에서 조여오는 포위망,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진짜 배신자의 윤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