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譫妄)

진은영(2012), 『훔쳐가는 노래』, 창비

by 수자타
XL.jpg


색도 명확하지 않고 분위기도 모호하다. 문장은 가독성이 떨어지고 단어는 녹아내린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래서 슬픈 뉘앙스가 있다. 사랑을 하는데 어쩐지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 지금은 혼자인 듯. 불타오르는 장면은 없고 뜨거운 입김은 있다. 비밀이 좀 많아서 사실 잘 모르겠다.


세탁소라던가, 욕하는 할머니라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판도라라던가. 이 시집 속에는 착한 마녀와 청소부가 작당을 벌인다. 그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언어로 난해한 문장을 속삭이면서. 엿듣고 싶은데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알아들을 사람도 없는데 조심조심 눈치 보며 속삭이는 모양새가 퍽 귀엽다. 가엾지는 않고 요상하긴 하다. 세탁소에서 요리사를 찾는 구인 광고처럼.


마음에 남는다. 투명한 콧물이 코끝에 덜렁대듯 계속 남는다. 보이진 않는데 미끄덩거리고 차갑진 않은데 어딘가 서늘한 무엇이. 초월한 듯 아닌 듯 자세히 보아야 애처로운 손짓에 금세 마음이 일렁인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계속 입안에 넣고 굴려 본다. 그러나 아무리 침으로 녹여도 녹지 않고 이로 깨물어도 씹히질 않는다. 삼키려 해도 넘어가지 않으니 계속 입안을 누빌 뿐. 본래 시란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몸이 이상 증세를 보이고야 마는 게 시란 존재인 것인지. 아직도 알 도리가 없다.


어쩌면 훔쳐가는 것이라, 그리고 훔쳐보는 것이라 그럴까. 노래는 입으로 부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던가. 부르려고 훔쳐가는데, 아차, 이런, 목소리를 놓고 왔구나. 읽으려고 훔쳐보는데, 아차, 이런, 눈알을 두고 왔네. 그래도 노래는 남고 이야기는 거기에 있다. 놓고 온 목소리와 두고 온 눈알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지도 없이 밖을 헤맨다. 그 그림자를 쫓는 게 『훔쳐가는 노래』를 읽는 기분(이라고 하면 이것도 너무 외계어 같은가.).


잘 도착했는지는 모르겠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목소리와 눈알이 훔쳐가는 노래와 훔쳐보는 이야기를 그리워한다는 게 전부일 테니까. 결국 한정된 지면 속에서 건져낼 것은 무의미한 날갯짓의 자취들일 뿐. 삶을 이루는 것도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다. 명확하다고 말하는 순간 명확함은 휘발되기 마련이듯.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차 저작물처럼.


과거는 힘이 없지만 끈질기다. 어머니가 기워 입히던 아버지의 낡은 팬티처럼 처량한데 질기다(「그런 날에는」). 그래서 지금을 흔들고 내일을 저당 잡는다. 그것이 오늘에 정복되기 위해선 하찮은 몸짓이 필요하다. 가령 시를 쓴다거나 노래를 한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헤어진 연인과 헤어지기 위해선 눈물과 발광과 쪽팔림이 필연적이듯, 그 모든 지질함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설득해야 하듯, 과거라는 곤경을 딛고 오늘 서기 위해서는 부질없는 행위들이 요청되는 법. 때로 이것은 무용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아닌 전 연인에게 어설픈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그래도 감수해야 한다. 내일을 지금 여기서 해방하기 위해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춘다. 눈에 들어온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다 느끼지만 언어로 새겨지진 않는다. 이렇게 그냥 매일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방도가 떠오르질 않아 눈을 질끈 감아 본다. 감은 눈 속에서 있지 않은 풍경들이 섬망처럼 지나가니, 가만히 지켜보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있을까.


시인들의 몸짓은 대개 이렇다. 붙잡아지지 않으면서 머물고 삼켜지지 않으면서 뱉을 수도 없다.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으니, 눈을 감고 더듬어 보는 수밖에 없지. 쉬이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거듭 뒤적이고 읽히지 않는 문장을 필사하며 이상한 방식으로 감동한다. 그게 가끔 참을 수 없는 순간을 견디게 하니, 다시 또 읽고 다른 시인을 찾고 어렵사리 번 돈으로 시집을 산다. 언젠가 나의 언어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 문장들을 누군가 훔쳐가 주길 기도하면서. 눈을 뜨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읊조린다. 중얼중얼. 너만 알아들을 외계어로.

매거진의 이전글유희(遊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