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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Jun 23. 2020

명품이 말해주는 인간의 가치

풍족한 영장류의 전투력 과시



# "명품이 갑옷처럼 느껴졌어요"


개그맨 조세호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명품을 열심히 사모았던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입지를 다지지 못했을 때

어느 순간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모르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줄 갑옷.


누군가 나를 무시할 때, 내 역량이 부족함을 느낄 때, '나는 당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존재감을 은근히 내뿜어줄 쉴드.


단순히 생각하면 이런 심리를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고,

어찌 생각하면 '돈이 내 가치를 대변해준다'는 물질만능주의적 자기최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 존재라는 것은, 내가 느끼고 인지하는 내 존재는,

유형의 신체도, 꼬불꼬불 겹쳐진 뇌도 아닌, 그 속의 '생각'인데,

왜 유형의 신체와 나아가 그 신체를 감싼 온갖 잡동사니를 통해 내 가치를 말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라는 사람이 그리 보잘것 없이 느껴져, '대변'해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게 슬플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 시대, 그 시절과 그 나이의 명품을 소비해왔다.

소위 '브랜드'라 불리는 것들.


나이키, 아디다스, 이스트팩, 잔스포츠, 노티카, 노스페이스, 폴로, 모토로라, 맥북, 아이폰... (수만가지...)

시대별로 유행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는 르까프 신는데 친구가 나이키 신으면 부럽고 갖고 싶었던 기억.

어떻게 그 브랜드 아이템을 갖게 되면 기분이 들뜨고 자꾸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기억.


학창시절의 그 브랜드들은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중저가 브랜드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엔 너무도 갖고 싶은, '신발'이나 '옷' 이상의 무엇, '명품'이었다.


또래 유대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학창 시절엔

친구들 모두가 갖고 있는 그 브랜드를 내가 소유하게 됨으로서, 마침내 그들의 '일원'이 된 듯한

동질감과 소속감까지 안겨주었다.



# 명품의 아이덴티티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입출국이 급감하면서 면세점 업계가 면세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자, 인기 품목들이 '순삭'되는 현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샤넬 핸드백 가격 인상을 앞두고 전염병 난리통에도 샤넬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욕을 먹기도 했다.

일본 닛산 자동차가 한국시장 판매 부진을 이유로 철수를 결정하며 보유하고 있던 재고를 할인 판매하자, 이 역시 순식간에 다 팔려나갔다. 구매 경쟁률이 4대 1이었다는 얘기도.


이런 현상이 뭔가 불편하고 욕이 먼저 나온다면 이유는 대략 이럴 것이다.


- 굴욕적이다. 해외 명품 업체와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부당한 가격 인상과 A/S 거부, 책임 회피 등을 당당하게 시전해왔는데도,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고객' 입장인데도 비굴하게 줄까지 서서 사야 하나.


- 한심하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가방 쪼가리 사는데 몇 십, 몇 백만 원을 쓰면서 데이트할 때는 커피 한 잔 안사겠지. 한심하다. 차에 타고 있으면 보이지도 않고 바퀴 4개 달린 거 스파크나 벤츠나 뭐 그리 다르다고 과시욕으로 몇 배는 더 비싼 자동차를 사면서 집 살 돈 없다며 '헬조선'을 탓하고 원룸 월세에 살겠지.


- 나는 줄 안서고 살 수 있다고 해도 살 돈도 없는데 세상 참 팔자 좋은 인간들이 저리도 많네. 할인해도 비싸던데 뭐 벌써 품절이야.


- 정작 그 정도 명품 소비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줄 서가며, 할인한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지 않을 거다. 분수를 알아라.


- 일본 불매운동이 선택적이라더니... 깎아준다니까 꼭 그렇게 거지마냥 자존심도 없이 쪼르르 달려가서 사야했냐.


- (조금 더 연령이 있는 층이라면) 요새 젊은 것들은 돈을 저래 흥청망청 죄다 써버리고 뒷일은 나몰라라, 정신들 못 차리고... 다 늙어서 어쩌려고 저래, 쯧쯔.


학창시절의 브랜드 애호가 유대감과 동질감의 차원이었다면, 다 큰 어른들의 명품 애호는 어떤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까.


물론, 학창시절에도 조금 더 윗급의 브랜드를 가진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들 지오다노 면바지 입는데 노티카 면바지를 깔별로 갖고 있는 식)

그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집이 잘 사나 보다', '아빠가 돈을 잘 버나 보다'로 수렴되었고, 브랜드가 곧 '부모'의 능력을 보여주는 도구가 됐다.


부모님의 경제력에 기대는 학생이 아닌, 내가 일해 내가 돈을 버는 성인이 되었으니, 경제력이 곧 사회적 성공을 의미하는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경쟁력을 보여주기에 명품만한 도구는 없는 셈이다.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 WWW> 에피소드 중, 포털기업의 웹툰 역량 강화를 추진하던 배우 임수정이 여자 사원과 함께 웹툰 작가 영입을 위한 미팅에 가는 장면이 있다.


콧대 높은 웹툰 작가는 사원의 단촐한 옷차림을 아래 위로 훑어보며, 말을 섞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듯 투명인간 취급하며 임수정과의 대화를 고집한다.

대놓고 무시를 당한 사원은 본인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글썽이며 자책하지만, 예의 없는 웹툰 작가의 눈길을 읽은, 사회에서 굴러먹을대로 굴러먹은 연륜을 가진 임수정은 자신이 들고 있던 명품백을 탈탈 비워 사원에게 쥐어준다.


명품백 하나 없다고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내 옷이 내 일머리 수준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선배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그 껍데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명품에 목을 매는 사람들을 욕하고 한심하게 취급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돈'의 파워가 사람의 가치를 간단히 즈려밟기도 한다는 것을.




#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 명품의 전투력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 말할 수 있는 뉴욕, 그 중에서도 0.1%의 알짜 부자들이 모여산다는 '어퍼 이스트사이드(Upper Eastside)'의 생태계(?)를 문화연구가의 시선에서 풀어낸 책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웬즈데이 마틴 저 / 사회평론)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실제로 아이 교육 때문에 다운타운에서 어퍼이스트사이드로 이사를 가게 된 저자가 적응기를 써내려가는데, 읽을수록 '정말 피곤하게들 산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들한테는 돈이 없으면 정말 인간도 아니겠구나'라는 비참함을 거쳐, '이렇게 돈이 넘쳐나는 인생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밀려든다.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웬즈데이 마틴 저 / 조성민 그림


정말이지 못돼먹었지만, '뭐 이런 인간들이 있어'라고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우측통행을 준수하며 거리를 걷는 저자의 맞은편에, 완벽하게 단장한 50대 여성이 좌측통행을 고집하며 도도하게 걸어온다. 어리둥절한 저자는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점점 오른쪽으로 붙다가, 끝내 더는 피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만다.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을 두고 어느새 그녀는 내 앞으로, 불과 15센티미터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러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난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으며 일부러, 아주 무례하게, 자신의 명품 가방이 내 왼팔을 스치게 했다. 그러더니 돌연 피식 웃었다. 진짜로, 내 면전에 대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고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나를 스치면서 지나쳐 갔다." (p.125)


이 경험의 충격이 너무도 컸던 저자는 몇일에 걸쳐 어퍼이스트사이드 거리의 여성들을 관찰하고, 이 현상이 '기선제압'의 일종임을 눈치챈다. 


"전부는 아니어도 많은 경우 연상이 연하를 상대로 '기선을 휘어잡고' 위태로운 지점에 이를 때까지 진로를 바꾸지 않았으며, 대개 마지막 순간에 연하의 여성이 재빨리 비켜 가까스로 충돌을 면했다. 이렇게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고도, 두 여배우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각자의 길로 멀어졌다. 마치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없었던 셈 치기로 암암리에 공모한 것처럼."(p.128)
"여자들의 맞대결 장면을 충분히 지켜본 결과, 기선을 잡는 쪽의 메시지는 아주 명확했다. 단순히 '비켜'가 아니라, '앞에 뭐가 있어? 난 안 보이는데'였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핸드백과 큰 연관이 있어 보였다. 가방은 여자들의 갑옷이요, 무기요, 깃발이요, 그 이상이었다. 기선을 잡는 여자들은 어김없이 환상적인 가방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p.128)
"심장이 멎도록 아름답고 값비싸 보이는 가방으로 상대방을 쓸고 지나가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그것이 최후의 일격이었다."(p.129)


결국 작가는 '인류학자'로서 관찰 대상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그들의 생태계에서 생존하고픈 갈망으로 에르메스 버킨백(천 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임에도 소량 생산이라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는... 기존 에르메스 고객이 아니면 대기명단에 이름조차 안올려주기도 한다는...)을 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나서고 만다.


나는 두번째 직장에서 버는 돈의 70%를 소비하고 산 것 같다.

중견 언론에서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을 하며 월급은 흡족할 만큼 올랐지만, 모이는 돈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저자가 다운타운에서 어퍼 이스트사이드로 이사를 가며 복장과 생활양식 때문에 '문화충격'을 받았듯, 나는 이직을 하며 그 과정을 거쳐야했다.


굳이 성격을 따지자면 '남성형' 직장이었던 첫 직장과 달리(밤낮 없는 술자리, 한두잔 홀짝이는 게 아닌 1차, 2차, 3차, 때로는 4차까지 이어지는 먹고죽자식 술자리가 이어졌고, 취재를 위해 만나고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의 80%는 남성이었다) 두번째 직장은 암컷들의 기싸움이 만연한 '여성형' 직장이었다. 


PD, 방송기술 직군의 80%는 남성이기에 전체적인 성비로 따지면 여성의 비율이 일반 기업보다 높기는 했으나, 과반을 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성들마저도 내가 접해온 일반 직장 남성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든 건물의 직장인들이 쏟아져나오는 점심시간에조차 그 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겉모습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옷차림이었고, 그 자유로움의 완성은 대개 명품 아이템이었다.


이직 과정에서 면접을 보러 그 회사에 처음 찾아갔던 날, 숨막히는 이질감에 몸둘 바 몰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면접이니 만큼 무릎 길이에 똑 떨어지는, 진회색과 검은색이 드레이프된 원피스에 자켓을 걸치고, 토오픈 힐을 신고 갔던 나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소용돌이에 빠졌다.


형광색 운동화, 명품 로고가 프린트된 반팔 티셔츠, 스냅백, 각종 브랜드의 클러치, 노란 머리, 핑크 머리...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모두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쟨 뭐야 갑갑하게. 여기 사람 아니구만'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겨울철에는 무려 하얀색 모피 롱코트를 치렁치렁 걸치고 회사를 활보하는 여성(직원)을 보기도 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모으는 데 재미를 붙였던 나였기에(박봉에도 1억원 이상 모았다), 이직 초창기에는 남자친구한테 "여기 애들은 옷 사는데 돈을 다 쓰는 거 같아"라고 한심하듯 욕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부서와 미팅을 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꾸 듣게 되고, 심지어 후줄근한 옷을 입고다니는 사람들을 비웃는 것을 수시로 들으면서, 나도 끝내 동화되어 버렸다.


단아하거나 심플한, '백화점 여성복브랜드' 느낌에 가까웠던 첫 직장용 옷들은 그곳에 맞지 않았고(아무리 수 십 만원을 한다 해도 국산 브랜드는 설 곳이 없었다), 비웃음의 대상이 내가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결국 그렇게, 나도, 각종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도드라진 옷과 소품들을 하나씩 사기 시작하면서, 버는 만큼 썼다.(쓰다보니 돈에 무뎌지고, 그러다보니 옷이나 신발 외에도 모든 품목들의 지출이 줄줄이 따라 늘어났다)


"월급도 많이 받을텐데 옷이나 사지, 맨날 보풀 핀 옷 입고 돈은 다 어디다 쓰나"

"저런 옷은 어디 시장에서 쌓아놓고 떨이를 해도 찾기도 힘들겠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돈을 절약하는 게 비웃음의 대상이 될 일인 걸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뿐인데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찮은 취급을 받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인 걸까.


그런 생각들로 혀를 차면서도, 내 자신의 가치가 낮아지는 게 싫어 동화되고 말았다.


덜컥 퇴사를 해버린 지금, 돈을 더 모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도 남는다.

하지만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생태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곳의 '룰'을 익혀야만 했던 작가처럼, 나도 그곳에서 나의 존재감을 방어하고, 전투력을 보여주기 위한 불가피한 지출이었다고 생각한다. 



# 눈 앞의 경쟁에 목매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돈을 '물 쓰듯' 써버렸음에도, 기형적인 소비에는 도무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샤넬 백을 들고 있는 여성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저 가방 값에 맞는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까.


나는 샤넬 백을 산 적이 없다.

비싸기도 하고, 정작 들 일이 몇 번 없을 것 같고(결혼식에 가장 잘 어울리겠지만 내가 갈 결혼식 대부분이 지인-지인으로 통해있는 걸 감안하면 어차피 매번 같은 가방을 들고 나가는 것 아닌가), 가죽은 또 연해서 상처도 많이 날 것 같고, 무엇보다 나는 물건을 정말이지 험하게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두도 비싼 브랜드를 사 본 적이 없다. 한 철 신으면 헌 게 되는 구두는 비싸게 사기가 정말 너무나 아깝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사뿐하게 내려 잘 깔린 건물 바닥만 또각또각 걷지 않는 이상, 구두는 아무리 곱게 신는다 해도 꼬질해진다.


가끔 언니가 명품을 선물해주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했었다.

"나 출퇴근 버스타고 다니는데 그거 들고 있는 게 더 우습겠다"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속 어퍼 이스트사이드 여성들처럼, 수 천 만원의 버킨 백을 깔별로 구비해도 소득이 지출보다 확연하게 높은 수준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출퇴근 하면서, 그렇게 다닌 직장 월급이 소득의 전부이면서, 아직 부모님 집에 살고 있고 그 부모님은 평범한 한국의 가장이며 물려줄 자산이 없는데도, 

그런데도, 샤넬을 사고 에르메스를 사야하는가 말이다.


오래된 아파트도 3~4억이 훌쩍 넘는(오히려 재건축 기대로 더 비싸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통장 잔고 1억원 쌓였고 계속 직장 다닐 거라고 해서, 4~5천만원 하는 수입차를 사서 뽐을 내야하는가 말이다.


지금 당장 잘나보이고 싶어서, 남들 다 있는 OO 가방 나는 없는 게 짜증나서, 친구들 만날 때 기죽기 싫어서, 집은 원룸 월세에 살아도 누가 볼 일 없지만 좋은 차는 남들이 나를 높게 봐줄 테니까.


'한 번 사는 인생, 지금을 즐겨라'도 좋지만, 미래를 유보한 채 현재의 경쟁, 부러움을 사는 것에만 목을 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부러움의 시선이 나에게 줄 행복이 과연 얼만큼의 크기일까.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뿐'이다.

다만 나는 SNS와 TV에 차고 넘치는 '자랑 배틀'과 '부러움 쟁탈전',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행해지는 사람들, 또 그로 인해 수준에 벅찬 소비를 자꾸 하게 되는 사람들...


불행의 굴레에 스스로를 밀어넣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나의 전투력'과 '나의 존재감'을 위한 소비라면 남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잡아야하는 것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야 행복해진다는 것은,

값비싼 물질을 통해서야 내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딘가, 슬프지 않은가.




<추신> 두번째 직장에서 소득의 70%를 소비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금융상품 투자를 해 현재 자산은 4억원이 조금 안 됩니다(퇴직금 포함이라는 게 함정...)집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입니다. 이제는 소득이 없어져 모은 돈을 깎아먹고,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서 도망가니 언제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저는 명품을 갖고싶지 않습니다. 가끔 비싼 차를 탄 젊은 사람을 보면 '나는 그거 몇 대 살 돈 있어도 안 산다~'라고 생각하며 돌아서고, 인스타그램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저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게 가지고 싶어질 게 분명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나보다 무엇이든 잘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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