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왜 갑자기 연기를 배우고 싶었을까?
저녁 11시쯤 되었던 퇴근길,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갑자기 이명이 왔다.
긴 업무 시간 때문은 아니었고(스스로 그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완벽히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 같았다.
맥락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파편적인 일을 빠르게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텨낸지 3-4개월 정도 된 시점이었고
바쁜 업무에 끼니를 계속 거르면서 일하다 보니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지나가는 동료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지 못했고, 함께 사는 동반자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버거웠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 시기에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 준 것은 노래였는데, 특히 최유리 님의 ‘방황하는 젊음’을 많이 들었다. (이 와중에 ‘젊음’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고, 한결같은 가사로 토닥여주는 노래가 좋았다.
그날도 에어팟을 꽂고 최유리 님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간간히 함께 서있는 타인을 의식할 새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줄줄 흘렀다는 표현이 딱 맞았고, 외롭다.. 외롭다..라는 세 글자만 머릿속을 뱅뱅 돌며 온전히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지금 이 기분은 영상으로 남겨놔야 하지 않을까?
연기를 배우자.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엥? 지금 이 상황에? 나 지금 엄청 힘든데?
1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생각 흐름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어렵다.
연기가 나에게 실수로 온 걸까?
음..좀 더 깊숙하게 그때의 마음을 들여다보자면, 현실과 다른 내가 하나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자유롭고, 용기 있고, 있는 그대로 만끽하는 충만한 삶을 사는 ‘나와 다른 나’
그렇게 24년 여름날, 32살의 나는 (갑자기) 연기 학원을 등록했다.
주말에도 매주 일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시간을 만들어 토요일 기초반을 등록했다.
마음이 정체되고 고여있는 시기였는데, 학원을 등록하는 것 만으로 활기가 생겼다.
이 작은 시도가 앞으로 어떤 다른 삶을 가져올까?
조금은 기대하면서.
P.S. 뜬금없이 연기를 배우겠다는 나를 잠시 당황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기꺼이 해보라고 응원해 준 동반자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