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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r 10. 2023

치과에 가다

- 아들 내민 손을 놓치고서

<2021.12.5의 일기>를 옮겨 적어봅니다.




"엄마, 이거 함 봐봐?"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쏙 가리키는 이빨을 보니, 벌써 밑에서 하얗게 새로운 이가 올라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헉~ 하고 심장이 잠시 멈칫한다. 새로운 이가 올라오도록 내가 아이에게 너무 무관심을 했음에 미안하고, 늘 엄만 바쁘다는 인상을 줘서 이가 흔들리는 데도 제대로 말 못 하고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말하게 한 게 또 너무 미안해서다.


"평일 중에는 안 되겠고,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바로 치과 가보자~"

라고 말하면서도, 또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을 미뤄서 치과를 가자고 제안함이 새로운 이가 내일 당장이라도 왕창 올라올 것처럼 맘이 불안하고 편치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내 맘은 눈치 못 채고, 


"아~ 오랜만에 치과 갈려니 갑자기 떨려. 토요일에 간다니 다행이다."

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듯한 말을 해 줘서, 나를 배려함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고맙기까지 했다.


토요일 오전, 주말이라고 편히 늘 늦잠을 자는 어미라는 자, 즉 나는 평소와 달리 아침부터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서두르려고 오래간만에 일찍 일어났다. 평일 학교 가는 날은 늘 깨워야만 일어나는 아들 녀석은 주말에는 세상에서 휴식을 처음 가져보는 사람처럼 아침부터 TV와 게임을 온전히 즐기느라 내가 깨우지 않아도 벌써 스스로 일찍 일어나 있다. 오늘은 치과 가기로 약속한 날이니, 얼른 준비하라고 한마디 거들 고선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둘이 함께 걸으면, 늘 두툼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이 녀석.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같이 걷게 될 때면, 내 손을 잡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파트 정문 맞은편에 있는 치과에 가는 짧은 거리임에도 또 손을 내민다. 혼자서 찾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그곳에서 집으로 잘 찾아올 수 있는 길임에도 또 손을 내민다. 뭐가 그리 내 손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들이 내미는 손이 어미로서 나 또한 싫지는 않다. 특히,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엔 두툼하면서도 따뜻한 아들 손을 잡으면 장갑을 낀 듯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서 사실 더 기분이 좋기도 하다.


사실, 나잇살 먹은 내게도 치과 진료를 받는 것은 무서운 일인 것처럼, 아들도 여전히 치과 치료를 무서워한다. 소아 전용 치과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일반 치과로 바꿨을 때, 사뭇 다른 분위기에 아들은 많이 위축되고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면서 앞사람이 치료받는 기계 소리에 놀라 그만 병원 밖으로 도망가고 싶어 하던 어린 아들의 맘을 달래어주기 위해서 치료를 받을 때는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 후부터 계속 치료를 받을 때면 아들이 앉은 치과의자 발밑에 앉아서 약속대로 손을 꼭 잡아주곤 했었다. 특히, 섞은 이를 치료할 때는, 섞은 부분을 도려내는 그릴이 돌아가는 소리가 커지면, 얼굴을 가리고서 기계 소리와 자기 이에 닿는 기계의 느낌만을 오롯이 느끼는 아들이 더욱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두려운 자신의 맘을 안정시키는 것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처음부터 잡아주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오늘은 단순히 발치하러 간 것뿐이고, 이상하게도 늘 다니던 치과임에도 오늘은 의자 아래에 앉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내 손을 잡으려고 몇 번이나 손을 내미는 아들의 손을 봤지만, 솔직히 귀찮은 마음 반, 오늘은 별것 아니라 괜찮을 거라는 마음 반으로 그냥 못 본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예약 없이 갔음에도 예약 손님이 적어 많이 기다리지도 않았고, 발치라서 금방 끝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별 두려움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손을 안 잡아줘도 괜찮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빠르게 계산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빌딩을 나오는 순간, 이미 횡단보도는 파란불로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대로 건너가고 있었고, 신호등의 파란불은 이제는 건너면 안 된다고 번쩍번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그 신호에 달릴 수가 없어,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게 되자, 바로 피할 수 없는 아들의 불만 공세와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는데 왜 안 잡아준 거야?"


"아, 오늘은 엄마가 앉을자리가 없더라고... 별로, 네가 무서워할 만한 것도 안 하는 것 같았고...."


"그래도, 잡아줘야지. 치과 가는 일은 언제나 무서운데..."


더 이상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다시 손을 꼭 잡아 줄 뿐이었다.


그렇다. 내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이 아들에게도 역시나 별일이 아닌 것은 아닌데, 이 아둔한 어미는 아들의 맘을 또 다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늘 품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내 오만함의 귀찮음에서 오는 행위였을 터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손잡아 달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먼저, 자식들을 키운 친한 지인들은 말한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엥기고, 따라다니고 하는 것도 다 때다 있다고... 지금은 당장 귀찮게 여겨질지라도 지나고 나니 그 순간들이 아쉽고 지금은 그렇지 않음이 섭하더라고 말이다. 아직은 지나지 않은 그 순간에 있는 나는, 오늘 문득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 달라고 할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벌써, 가는 장소에 따라서 때로는 안 따라가겠다고 하는 곳도 점차 늘고 있는데 말이다. 오늘처럼 다시 귀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더욱 손을 꼬~옥 잡아 주는 어미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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