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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Dec 19. 2022

괜찮냐고 물었고, 괜찮다고 울었다.

- 왕언니의 명언

오늘은 유독 찬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따뜻한 방구석을 지키기에 딱 알맞은 날씨였다. 12월의 일요일이다 보니, 크리스천인 나에게는 초등학생 일일계획표처럼 하루가 빼곡하게 일정이 잡혀있었다. 성가대 연습, 오전 예배, 전도회 모임, 요한 모임, 오후 예배, 성가대 연습....


교회 친한 후배이면서, 나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동생이 일주일 전에 오늘은 오후 성가대 연습을 참석 못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오늘이 자신의 작품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캘리그래피를 시작한 그녀는 2급, 1급 강사 자격증을 따더니 이제는 전시회 작품마저 내는 실력으로 올라섰다. 작년에 첫 전시회가 있었는 데, 코로나로 인해 전시는 하지만, 자신도 가보지 못한다며 많이 아쉬워했다. 절대로 오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았는 데 마음이 많이 찝찝했다. 사업이 잘 되어 늘 바쁜 후배가 겨우 생기를 얻을 만한 취미생활을 갖게 되고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 마음을 알기에, 전시회에 갈 수 없음에 더 마음이 무겁고 미안했다.


올해 다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반응은 "당연히 가봐야지."였다. 그런데, 후배는 또 핑계를 되며, 바쁜데 오지 말라고 했다. 이미 오늘 하루의 내 일정을 빤히 다 알고 있어서 나를 배려한 말이었을 테다. 그래서, 나는 더 가야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하나님에게서 배운 사랑을, 사랑하는 후배에게 베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후 예배 빠짐을 하나님도 질투하시지는 않으시리라.  


그렇게, 후배와 친한 언니, 친한 동생들 몇몇을 내 차에 꽉 채워 점심 먹을 겨를도 없이 전시회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이기에 뒷좌석 상전 자리에 모신 후배는 자리를 잡고 엉따의 기운이 올라오자 그제야 이 전시회를 열면서 가족에게 쌓인 섭섭한 마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자신의 취미생활이지만, 그래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을 가족이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거였다. 심지어, 대회에 출품하여 입상까지 한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지만, 두 아들과 신랑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고 한다. 전시회는 방문해 줄 엄두도 안 내는 눈치라며 전시회장을 가는 내내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도 무심하여 타인에게는 함부로 말도 못 꺼내고, 올해도 조용히 지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괜찮아?"라고 묻고 싶었고, 그렇게 물으면 "괜찮지."라고 답하면서도 속으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안 괜찮을 때는 괜찮냐는 질문 하나에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쏟아지는 법이니까.


전시회장에 도착해보니, 조금은 한산했지만 좋은 글귀를 아름답게 다양하게 꾸며놓을 글들을 보니 오랜만에 맘이 흐뭇했다. 여러 좋은 글귀를 찬찬히 읽고 있자니, 우리 중 왕언니가 말한다.


"다음에는 '괜찮냐고 물었고, 괜찮다고 울었다'라는 글도 하나 써 줘."


후배의 캘리 작품과 오늘의 명언을 남긴 전시회장의 왕언니 모습


물론,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한 건 아니다. 후배에게 캘리로 써달라고 한 것이다.


언니의 아들이 고 2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호주에 가게 되었다. 1년만 다녀온다고 하여,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고 보냈는 데, 아들은 호주가 맘에 드는 눈치였다. 결국, 같이 간 친구들이 돌아올 즈음에 언니의 아들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나 여기서 1년만 더 공부하면 안 될까?"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유학생활. 결국 '1년만 더'라고 했던 유학은 대학 3년을 마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생이별로 5년을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아들이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이제는 언니가 웃을 수 있으려나 했다. 그러나, 왠 걸? 한국에는 군 복무 의무제라는 게 있으니, 아들은 그렇게 바로 또 군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러니, 언니의 눈물은 마를 수가 없었다.


아들이 군에 가서 한 첫 연락 첫마디가 괜찮아?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변이 괜찮다.였다. 아들은 엄마가 걱정되어 물었을 테고, 언니는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괜찮다고 답했지만 결국 전화를 끊은 후에 오열하고 말았다고 한다. 엄마이기에 어른인 척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냥 어른 아닌 아이처럼 펑펑 울고 싶었던 그 맘을 그 아들은 알기나 했을까?


오늘 후배도 그랬을 것이다. 가족의 외면에 섭섭함이 켜켜이 쌓였을 그 마음. 그 마음에 평소 친한 선배이던 나마저 가지 않고서 "정말 못 가도 괜찮아?"라고 물으면 "응, 괜찮아."라고 답했겠지만 마음은 이미 울고 있지 않았을까? 내 미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담긴 '괜찮아'라는 물음은 애써 어른인 척 흉내 내는 "괜찮아"라는 답변으로 돌아올 차례였다. 하지만, 내 마음이 도저히 미안한 의미의 '괜찮아'와 후배의 어른스러운 '괜찮아'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꼭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방문을 하는 게 정의구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작 작품 3개라고 말하는 후배지만, 그 작품을 내기 위해 얼마나 붓을 길들이며 같은 글씨를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을지 그 노력을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바쁜 사업으로 팔다리며, 허리의 병을 달고 사는 그녀가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또 얼마나 그 아픈 팔다리와 허리를 견디며 연습했을 지도 잘 안다. 잘 되는 사업으로 웬만한 돈과 웬만한 소비로는 이제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무감각해진 그녀가 그 글을 쓸 때만 오롯이 그녀 자신이 되어 기쁨과 희열을 느낄 수 있음도 잘 안다.


그런 그녀이기에 나는 다른 의미의 '괜찮아'를 돌려주려 한다. 안 괜찮을 때 사용하는 괜찮아?라는 질문말고,  모든 상황이 평정되고 괜찮아진 다음에 확인해보는 물음으로의 괜찮아를. 그동안의 노고와 노력에 대한 위로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음후배가 깨달아 안심되는 마음과 평온해진 마음의 '괜찮아'를 돌려받고 싶다.


괜찮냐고 물었고, 괜찮다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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