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인기 많은 학생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선생님들께 인기 많은 아이. 수업시간 태도가 바르고 모범적이며 성품도 착한 아이. 이 경우, 요즘 세태에서는 그의 바른 행동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재미없게 느껴져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닥 인기가 없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 예체능이 뛰어나서 교내 체육대회나 학교 축제에서 한 가닥 하는 모습을 보여줄 매력 있는 친구. 공부 잘하고 못 하고는 상관없이 친구들을 늘 유쾌하고 재밌게 해 줄 수 있는 쾌활 발랄한 아이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때로는 이런 아이들이 친구들 간의 재미를 위해서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교칙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선생님들께는 인기가 없을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인기 많은 아이. 공부를 잘하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공부면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면서, 학교 생활도 친구들과 재밌게 즐길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들은 흔히 공부도 잘하면서 사고가 긍정적이며 늘 밝고 유쾌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인기 있는 타입이지만, 이 시절에 흔치 않은 학생이다.
이런 흔치 않은 세 번째 타입의 학생이 우리 반에 있다. 무려, 인기로 실장 자리를 꿰차더니, 울반 학생들이 인정한 모범학생 표창까지 받은 녀석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학년 어떤 누구도 그 아이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성적 또한 절대적으로 우수하다. 지난 학기에도 올 A로 전교 1등이었고, 이번 2학기 중간고사에도 올백을 받았다. 특별히 학원을 많이 다녀 선행학습이 많이 된 것도 아니고, 아침자습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휴식 시간에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노는, 공부만 하는 녀석은 절대 아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지만 절대 책 많이 읽는 티, 공부 많이 하는 티는 내지 않고, 친구들이 부탁을 하면 전혀 귀찮아하지도 않고 잘 들어주면서도 자기 할 일은 책임감 있게 잘 해내고, 여느 아이들처럼 즐겁고 재밌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그냥 아이들의 눈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녀석이다. 물론, 시험을 쳐봤으니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 알고 있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조금 달라 보이는 것은 학교 생활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시간 수업 준비를 위하여 많은 교과의 교과 도우미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외 각종 대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학생들이 그냥 지나치는 여러 안내문을 이 아이는 꼭 읽어보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면 참여를 하는 방향으로 방향성을 잡는 그야말로 용기 있게 도전하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아이이다. 심지어, 담임인 나는 학부모 상담주간에 이 녀석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어찌 키우면 이리되는지 오히려 내가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로 입에서 칭찬 마를 날 없는 아이이다.
이 아이의 어머님은 나에게 오은영 박사님과 같은 존재 :) 얼마 전, 대외 행사 관련 공문이 또 하나 왔다. 많은 행사 중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 반 실장이 분명 관심을 가질만한 행사인지라 종례시간 아이들에게 이 공문을 안내했지만, 역시나 다들 관심 없었다. 담임에게 하교 인사한 후 본인 휴대폰을 찾아서 하교하기 바쁜 아이들 사이에서 혹여나 해서 실장에게 관심 없냐고 개인적으로 물어봤더니, 역시나 관심 있는 눈치였다.
이 행사는 바로 골든벨 퀴즈대회였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도전! 골든벨"은 아니고, 내가 사는 고장의 지역 바로 알기 행사로 초등학생 고학년과 중학생 대상 두 개 부문으로 나눠서 행해지는 시, 도 단위의 퀴즈 대회였다. 이 대회는 관심만으로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장의 추천까지도 필요한 대회여서, 공문과 함께 대회에 필요한 자료도 챙겨주면서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러고는, 교내외의 여러 행사 속에서 까마득히 퀴즈대회를 잊어 가고 있었다.
퀴즈대회 결과를 들은 것은 점심식사 후 나른한 오후 한때였다. 대회를 치르고 온 주말 다음 날에도, 이 아이는 아무런 일 없었는 듯 평소처럼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는 데, 순식간에 학교 전체가 떠들썩하도록 소문이 나게 되었다. 이 아이가 골든벨에서 대상을 받아 인터뷰 내용이 지역 유명 일간지에 기사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이름을 날리니 기분이 좋으셨던 교감 선생님께서 신문 내용을 캡처해서 교사용 연락 메신저에 이 내용을 알리셨다. 학교에서 나의 아이인 우리 반 실장이 대상을 받았다니, 덩달아 나도 상당이 뿌듯했다. 그 기분을 만끽하고자 교감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신저의 첨부파일을 열어서 신문 인터뷰를 읽어보았다.
"장래희망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배움에는 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퀴즈 골든벨을 준비하고 현장에 나와 문제를 푸는 시간들이 다 뜻깊었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라고 시작해서, "내가 사는 우리 지역을 알아가면서 나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라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아~~
갑자기 가슴이 후끈해지고 눈가에 습기가 찼다.
너는 벌써 배움에 대한 접근법이 남다르구나. 배움의 자세가 남다르구나. 배움이란 것에 중2라는 그 나이대의 일반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자세를 이미 갖고 있었구나. 이래서 너는 1등을 할 수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너는 언제 어디서나 1등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무리 공평한 과정을 거쳐서 경쟁을 하여도 너를 감당할 수 있는 경쟁자는 지금 이 대회뿐만 아니라 다른 대회에서도 없으리라...
이 대회의 주제는 지역 바로 알기였으니, 이 아이는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우리 고장에 관한 여러 역사와 특징에 관한 것을 공부했을 것이다. 실제 학교에서 공부 좀 잘한다는 학생들, 소위 전교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들만큼 공부를 잘한다 하는 학생들은 국영수 과목과 관련되지 않은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일단, 동급생들보다 더 많은 공부량으로 늘 바쁘다. 그래서, 학원에서 주어진 숙제나 시험에 나오는 것 외에는 공부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설령 이 아이처럼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은 퀴즈를 풀기 위한 하나의 지식으로만 공부를 했을 것이고, 이 아이처럼 이 대회를 준비하고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아이는 지역 사회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이 것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꿈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 중에 있는 의미 있는 배움이라 생각하며 공부했을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이 과정을 자신의 삶과 연관 지어, 짧다면 짧은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 보는 계기로 삼기조차 했다.
요즘, 수업시간 풍경을 곱씹어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흔한 풍경 중 하나가 학교 수업은 잘 듣지 않고 동급생들보다 수준 높은 문제집을 풀며 개인 공부하기 바쁜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공부란 게 고작 학원 숙제일 뿐인 공부. 공부 좀 한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이지만 문제집 안에서만 공부가 이루어져서 열심히 한다는 공부가 문제집 밖을 넘어서지 못한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 있다. 오로지 지식 하나 익히는 것이 배움이라 생각한다. 지식은 많은 데, 실제 생활에서 그 많은 지식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는 얻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에 실패할 경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는 얻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독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수업 외의 선생님들 말 한마디조차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듣는 이 아이.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전하여 새로운 경험을 쌓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아이. 이 아이는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직. 간접 경험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도전과 용기, 지혜도 쌓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고, 모든 도전이 배움이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태도와 마음의 자세마저 배워나간다. 물론, 이 아이라고 해서 모든 대회에서 1등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겨우 입상하기도 했고, 입상 못하기도 했겠지만, 그 또한 배움이 되어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 그런 실패와 좌절과 실망의 순간에는 어떻게 마음을 다독거려야 할지 이 아이는 배워왔을 것이다. 마음의 근력조차 키우는 단단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시작된 이 아이의 배움은 단순 지식만 쌓은 아이들보다 분명 배움의 깊이가 더해지고 폭이 넓어졌을 테다. 모든 과정을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와 일정 부분만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하나의 과정을 겪으면서 배우게 되는 배움의 양부터 다를 것이고, 배움이란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배움에 임하는 자세부터 다를 것이며, 모든 배움에 가치를 두는 아이와 특정 배움에만 가치를 두는 아이와는 분명 배움의 깊이와 넓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아이가 어찌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깊이와 넓이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상이 배움이 되고, 모든 과정이 배움이 되는 아이. 그런 배움의 과정이 또한 꿈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인 아이. 이 아이는 본인이 원치 않아도 자연스레 1등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시울 젖게 하는 15살짜리 아이의 인터뷰로 배움의 자세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