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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Oct 28. 2022

글이 주는 위로

- 직장에서 쌓은 스트레스를 브런치 글 하나로 위로받은 날

점심시간.

뭐 먹을까 메뉴 고민 없이 영양사가 짜 준 식단으로, 조리사님들이 정성스레 해 주신 밥과 반찬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남이 해 준 밥은 다 맛있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 나의 행복 달달한 점심시간이 언젠가부터 불편 씁쓸한 시간으로 어그러지고 있었다.


점심 먹고 있을 때도 불쑥 나타나서 밥을 먹고 있는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해 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집 아이는 아니고 산고의 고통없이 낳은 아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아이라 불리는 아이. 아직도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니, 마스크를 벗고 점심을 먹을 때는 가급적 대화를 줄이도록 지도하는 데, 마스크도 벗고서 불쑥 나타나 까아만 얼굴을 들이밀며 말 걸어오면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 불편하다. 음미하던 음식의 맛은 무미무취가 된다.


그래도,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만이 이생에 선생으로 태어난다고 했던 어느 선배의 말을 기억하며, 전생에 지은 내 죄가 많아서 점심시간마저 편히 밥 먹을 수 없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이해를 하며 슬며시 내 맘을 달랜다. 그래. 그 아이에게는 어찌 보면 지금 내게 말하는 그 일이 엄청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아니, 내 얼굴 한번 더 보고, 내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어야 왠지 안심이 되는 그런 어떤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또 한 번 나를 진정시킨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는 다. 점심을 먹은 후 꼭 나를 찾아온다. 점심을 먹은 후라서, 양치도 하고 싶고, 커피도 한잔 하면서 잠깐 쉬고 싶은 데 말이다. 조금은 느릿하게 이후의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필요한 데 말이다.


나에게는 근무 중 쉬어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데, 언젠가부터 아이의 시답잖은 요구를 들어주는 시간으로 변질 되었다. 요구라기보다 응석과 생떼에 가까운 그것. 그것을 받아줘야 할 때면, 나도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브런치의 어떤 글이라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고,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도 그 아이처럼 응석 부리고 떼를 쓰고 싶어 진다.


아이의 응석의 강도가 세질수록, 나의 갈증도 높아진다. 나의 갈증도 풀어줘야겠다. 내가 나이만 많지, 내 맘도 아직 어리다고 말하고 싶다. 신체는 나이 먹어도 마음은 나이 먹지 않아서 여전히 나도 어린데, 너희가 어린 것을 핑계 삼아 떼를 쓰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인 척 너희 말을 들어주고 적절한 말을 해 줄 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은데, 차마 말하지 못하고 하고 싶던 그 말은 목에 걸려서 다시 허파 밑으로 쑤욱 숨어버린다. 그리고선, 날숨으로 바뀌어 어떤 말도 아닌 한숨이 되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이해의 말을 하기 위해 내 속의 단어들을 하나씩 뱉어내면 아이의 말은 하나도 소화되지 않아서 내 속에는 더 이상 이해의 말들이 채워지지 않는 데, 아이를 위한답시고 내가 가진 이해의 말들을 하나씩 쏟아내니 내가 가진 이해의 말들은 이내 곧 바닥을 드러낸다.


아~ 글 고프다.

내 속의 이해의 마음 그릇이 빈 그릇이 되어 소리친다.

공감의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으면, 얼른 그릇부터 채워라고 빈 그릇이 소리친다.

빈그릇으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 빈그릇의 주인일지라도 봐주지 않는다고 겁박한다.


글이 고프다. 글을 읽어야 한다. 글을 채워 넣어야 한다. 빈 그릇을 채워야 한다. 빈그릇의 달그락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잠재워야 한다. 빈그릇의 반란을 진정시켜야 한다. 빈그릇의 가벼운 소리를 그냥 듣고만 있으면 안 된다.


점심시간이 끝나서야 아이는 반으로 돌아가고, 나도 당장 수업하러 간다. 빈그릇의 상태를 유지한 채로 일을 해야만 한다. 글고픔에 조금씩 예민해지며, 숨이 가빠지고, 얼른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굶주림을 참고 있지만 내 일은 그 굶주림과 상관없이 온전하게 끝나길 바란다. 글고픔에 굶주린 짐승이 되지 않길 바라며, 일을 마무리한다.

 

퇴근 시간 서둘러 하는 응급처치는 브런치...


얼른 휴대폰이라도 켜라. 제일 처음 보이는 어떤 글이라도 읽어라.

오늘은 <인연 속에... 살아가는 세월>이라는 글이 맨 처음 보였다.

이리 보면 장점이고, 저리 보면 단점이 되는 모든 행동으로 싫고 좋고, 가깝고 멀게 되는 게 인간관계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달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면 좋을 텐데 이래서 싫고 저래서 나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산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 좋게 좋게 넘어가면 되는데 쉽지 않다.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바람 부는 대로 흩어져 어디론가 간다. 서로 만나고 헤어지면 기약 없이 갈길을 가는 낙엽을 본다. 언젠가는 또 만날지도 모르기에 엃히고 설킨 인연 따라 오늘을 산다. 계절이 오고 가듯 인간관계도 오고 간다.
                             - 인연 속에... 살아가는 세월, Chong Sook Lee작가님의 브런치 글에서 발췌 -

숨이 쉬어진다. 빈 그릇에 따당 따당 이해의 말들이 채워진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 좋게 좋게 넘어가면 되는 데 쉽지 않다.

세상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 언젠가는 또 만날지도 모르기에 엃히고 설킨 인연 따라 오늘을 산다.

이 아이를 또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아이를, 그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응석과 생떼를 성숙한 생각으로 바꾸어줘서 고마웠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철이 든 어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다시 못 만난다 하더라도 우린 오늘 만났고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이렇게 만나기로 약속된 인연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낸다.


오늘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글이면 된 거지.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바람 부는 대로 흩어져 어디론가 간다.

바람 불어 낙엽은 흔들리고 떨어져 어디론가 가버려도, 글로 채워진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떨어져 어디론가 가버리진 않으니까.

그릇으로 바람에 흔들린 속절없이 가볍던 마음이 묵직한 이해의 마음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어느 누구에게 풀지 못한 마음을 글이 어루만져 준다.

글이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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