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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Oct 12. 2022

나는 못났다.

- 오지게 질투하다.

글을 쓰면서, 조금은 내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길 바랬다. 아랫사람에게 선배로서 언니로서 조금 더 베풀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어찌 지내고 있냐고 먼저 궁금한 안부를 물어줄 수 있는 사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따뜻한 커피 한잔을 준비해 격려해 줄 줄 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어도 나의 오해일 것이라고 치부하며 그의 형편을 먼저 생각해 줄줄 아는 사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눈물 흘리며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 화가 찬 모습을 보면 가만히 그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아픈 모습을 보면 밥이라도 먹었는지 챙겨줄 줄 아는 사람. 좋은 일이 있으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진심으로 축하해 줄 줄 아는 사람. 글을 쓰면 이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예전보다 조금은 더 긍정적이고, 더 따뜻함을 나눌 줄 아는 성숙한 그런 사람.


아마 아직은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오늘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신랑이 문득 "나도 블로그 해서 돈을 벌어볼까?"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블로그 글 하나 쓴다고 하루아침에 바로 인플루언서 되는 줄 알아?" 신랑은 진짜 내 말처럼 순간 망상을 했는지 덩달아 피식 웃었다.


"블로그에 여태 공부한 주식 글을 써 볼까 싶다가도 공무원은 투잡 하면 안 되니까..."

신랑이 말끝을 흐렸다.


"뭐 어때? A도 책 두권 낸 거 보니 하나는 직무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에세이던데? 꼭 직무 관련 아니어도 되는 거 아냐?"


"아! A가 낸 책이 세권이야."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갑자기 급발진해 들어온 신랑의 말에, 띵~! 머리가 갑자기 하얘졌다. A가 그새 책을 한 권 더 냈다니... 검색해보니 진짜 한 권 더 출간했다. 이름 위의 프로필 사진에는 나를 이겨서 기쁘다는 듯 밝게 활짝 웃고 있었다. 물론, A는 애시당초 나를 비교 대상으로도 경쟁 대상으로도 생각지 않았고, 이렇게나 내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A는 우리 가족이다. 한 때는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했기에, 그 우울증을 이기고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써낸 작가가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축하해 줄 일이다. 자신과의 힘든 싸움을 이렇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은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존경까지 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크게 손뼉 쳐주며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만한 일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책 홍보도 책임져 줄 만한 일이기도 하다.


첫 책을 출간하고 연락을 받았을 때, "고생했다", "수고했다", "잘했다"는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직종에 근무하고 있는 나보다 경력도 적고 육아휴직 쓴 시간을 빼면 더 적으면서, 수능시험에 해당되는 교과목 전공자도 아니고 교육학 박사도 아닌데 교육 관련 책을 냈다는 것이 조금은 사기 같다고 생각되었다. 교육을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가소로움이 뼈끝부터 차 올랐다. 


아직 키우고 있는 아이가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도 않았는 데, 수년간 키운 그런 교육 방식이 어떤 결과를 보여준 것도 아닌데 과연 수능시험을 치를 때까지 훌륭하다고 말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교육이란 것을 꼭 성적으로만 어떻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블로그에 쓴 A의 글들이 인기를 얻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교육 방식을 따라 하는 독자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글을 출판하자고 제의한 출판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사기 같았고, 모든 게 다 거짓말 같아서 애써 A가 훌륭한 게 아니라, 이상하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다.


또 다른 한 권의 책,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족의 일로 내가 고생할 때, A는 아무런 부담 없이 즐겁게 자기 시간을 가지고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끝까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책의 반은 나 때문에 잘 쓰일 수 있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A였다면 나도 쓸 수 있었겠다는 착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책을 한 권 더 출판했다고 하니, 이제는 완전히 배가 아팠다. 오지게 질투 났다. 늦게 소식을 알게 되어 축하가 늦어졌다고 미안해하며 전화 한 통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늘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세 번째 책은 공동저자가 있는 거니 A 혼자서 쓴 글이 아니라서 한 권의 책으로 인정해 주기 싫다며 속으로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못난이가 되어 버렸다.     


중간 인형이 꼭 오늘의 내 모습 같다.


친구였다면, 친한 후배였다면, 지인이었다면 축하해 주었을 일을 왜 나는 망설이는 가? 왜 하지 않는 가? 그놈의 자존심이 무엇이라고... 사실, 자존심도 필요 없는 일인데, 나 혼자서 비교하고, 나 혼자서 열등감을 느끼고, 나 혼자서 상처받아, 내 맘 속의 진정한 어른은 어디로 가버리고, 어린아이만 남아있는 걸까? 이 어린아이는 어찌 달래어 보낼 수 있을까? 무얼 쥐어주면 보낼 수 있을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어떻게 타일러 보낼 수 있을까?  


문득, 거울을 보려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못나 보일까 두렵다.

아니, 안 봐도 알겠다.

정말 못났다.


사실, A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도록 자극을 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우울함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고, 책 세 권을 출간한 작가로 승화되었다. 이제는 우울함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책 읽고 쓰는 즐거움에 빠져서 한 번도 우울해 본 적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런 A 때문에 내가 우울해지고, 화가 나는 건 우울의 역습을 당한 기분이다.


A를 통해 책 읽고 쓰기의 중요성을 목도했고, 더군다나 브런치라는 멋진 멍석도 깔았으며, 그 멍석 위에서 아직도 어린이로 살고 있는 내가 어른이 되도록 응원해주고 조언해주는 작가님들까지 계시니, 오늘의 못난 모습에도 조금은 희망이 있겠지? 책을 편다. 책으로 내 속의 아이를 달래려고...


오늘의 나는 못났지만, 내일의 나는 이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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