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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Sep 21. 2022

가장 슬픈 말이 되지 않도록

-  가장 슬픈 것은 그 때 그 말을 못한 것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中

내 평일 하루는 날마다 회식이다. 1차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2차, 3차를 거쳐야만 끝이 나고 마는... 회사생활 1차의 삶이 끝나면, 가정생활 2차가 기다리고, 그 2차가 끝나야, 개인 생활 3차가 가능해져서 하루가 마무리된다.


허리 삐끗 사건은 1차가 끝나고 2차가 끝날 무렵 일어났다. 내 몸을 아주 사랑하는 지라 마트 가면 가벼운 그 무엇이라도 꼭 바퀴 달린 카트에 담아서 조금이라도 몸에 부담을 안 주려는 타입인데, 쌀을 사고서 사달이 났다. 그래 봤자 10킬로짜리인 데 말이다.


누군가는 배달을 시키지 그러냐고 하지만, 내게 무거운 것은 배달하는 분께도 무거운 것이니 가급적이면 내가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열심히 카트를 이용하고, 힘쓰는 순간은 오로지 카트에 담는 순간, 차 트렁크에 는 순간, 차 트렁크에서 꺼내는 순간, 집에 도착해서 내리는 순간뿐이다. 이 모든 순간을 합치면 1분가량 될까? 1분이라는 시간은 24시간 중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 이 정도는 힘쓰고 산다. 것도 10킬로 정도쯤이야.... 수박 큰 거 한통은 그보다도 더 무거우니 말이다.(이런 이유로 우리 집 아그들의 최애 과일인 수박을 사기 꺼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음은 우리 집 아그들에게 비밀이다.)


요즘 마트에는 장보는 남자분들도 많다. 어제는 특히, 장성한 자녀를 거느린 한 가족이 장 보러 와서 아들이 카트를 밀고 있는 경우를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아들이 자기만 카트를 미는 것이 조금은 억울했는지, "나, 지금 남자라서 이거 밀고 있는 거야?"라고 항의하니, 누나인 듯한 여자가 "그럼, 남자가 밀어야지." 이런다. 그러니, 동생이 억울하다는 듯 씩씩거리는데, 어머니께서 "남자가 아니라, 힘센 사람이 미는 거야."라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다.


이렇듯 장보는 일에도 은근히 카트를 미는 것뿐만 아니라 종종 힘써야 할 일이 있다. 그럴 때면, 집안의 힘쓰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장보는 사람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여하튼, 우리 집도 그렇게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나보다 퇴근 시간이 늦은 남편을 기다려 장을 보기에는 평일 내 2차, 3차 생활만 늦출 뿐이고, 주말에 하자니 사람 북적이는 곳은 딱 질색인 우리 부부에게 너무 싫은 일이라 나 혼자 장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한으로 힘쓰면서 장보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어제도 여느 날처럼 무난하게 장을 보고 이제 짐만 트렁크에 싫으면 될 일이었다. 탄산수 300미리 30개들이 1박스, 쌀 10킬로가 좀 고난이도긴 하지만, 이 정도는 그래도 아직은 힘쓸 수 있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맘으로 고개를 숙여 쌀 포대기를 드는 데, 어랍쇼 허리가 삐끗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전기에 감전된 듯 잠깐 꿈틀거리다 바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머지 짐을 다 실었다. 뭔가 불편한 감이 있지만, 지금 바로 병원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저녁도 해서 먹여야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운동도 하기로 아이들과 약속되어 있었다. 잠깐 꿈틀거린 것 가지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맘으로 순간의 삐끗을 아프다 생각하면 엄살이 될 거 같기도 해서 무시하기로 맘을 먹는다.


하필이면, 아들 생일날이다. 더더욱 이 정도의 아픔은 모른 척해야 한다. 그렇게 가벼운 통증으로 여기고, 저녁을 먹고 아들 생일을 축하하면서  2차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난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3차의 시간도 거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재미들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는 것으로 3차의 시간을 열었다. 눈이 침침하고 허리가 아직도 뻐근하여 쉬이 피곤해진다. 마음으로는 책이 흥미로워 얼른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싶지만, 쉬이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평소보다 짧은 3차의 시간을 갖고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잠자리에 누웠음에도 허리가 편치 않으니, 잠자리가 편치 않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근한 오늘의 1차. 조금 심각하다. 걸음걸이만 봐도 사람들이 묻는다. "부장님, 어디 편찮으셔요?" "다리가 아프신가요?" "얼른, 조퇴를 하시고 쉬셔야 할 것 같아요." "병원 가셔야 되는 거 아녀요?" 걱정해주는 마음에 감사하여 자동응답기처럼 일일이 답변한다. "어제 허리를 삐끗한 것이 그만...." 단순한 "고맙다" 한마디도 덧붙이지 못하고서...




⁋ 공감: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  [두산백과 두피디아]


⁋ 동감: 어떤 견해나 의견에 같은 생각을 가짐. 또는 그 생각.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이제껏 허리 아픈 사람들을 보면서 "에고고,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렇게 아프셔서 어떡해요?" "이제는 좀 괜찮나요?"라고 말했던 지나간 인사들이 조금은 성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지려 한다. 아픔이 있으면 힘들 것이라는 것은 대충 공감하지만 진정한 아픔의 깊이는 알 수 없기에 동감은 할 수 없어서 예의상 인사치레가 되어버린 가벼운 말 같아서... 물론, 인사치레 같은 말이라도 관심 있기에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이 정도 말이라도 할 줄 알면 사회생활에서는 보통은 하는 거겠지?


문제는 늘 남들에게는 보통은 하지만 가까운 가족, 특히나 엄마에게는 보통도 못 한다는 것이다. 공감은 하면서도 공감을 표현하는 데는 아주 인색한 모지리 인간이 된다. 그러니, 동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중 돌이켜보면 이쁘지도 않게 모질게 뱉어버린 말들로 무한히 미안해할 걸 알면서도... 아님, 마지막 가는 길 관속의 하얗게 단장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문득 떠올라 눈물로 지워버리려 애쓸 말들임을 알면서 말이다. 어쩌면, 오는 데는 순서가 있으나 가는 데는 순서가 없어서, 그 순서가 뒤 바뀌어 눈물로 사죄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는 말들인데....


엄마랑 모처럼 함께 나서는 소풍길, 여행길, 혹은 동네 인근 식당에서 밥한끼하러 나선 외식 길. 50미터도 채 못 가서 엄마는 이내 곧 멈추신다. 척추협착증이 있으신 80넘은 노모는 두 손을 허리에 두고 뒷짐을 진 채로 간단한 허리 펴기로 하늘을 보시며, "아이고, 허리가 둘러 빠지는 것 같다.", "어~휴, 허리가 내려앉는 것 같아." 혹은 조금만 더 먼길을 걷게 되면 "히~야,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라고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을 늘 하셨다." 이럴 때면 딸로서 뭔가 따뜻한 한마디라도 건넬 만도 한데, 늘 그랬으니까 다정한 말 한마디 던지지 못하고 옆에서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더 심하게는, 허리 아프다고 휴대폰조차 소지하지 않으려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알츠하이머 초기인 엄마가 혼자 외출하는 것은 상당히 걱정스러운 일인데, 휴대폰 없이 외출하여 연락이 되지 않는 순간에는 혹여 무슨 일 생긴 건 아닌가 상상되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럴 때면, 무사히 돌아온 엄마에게 참 이기적이라고, 휴대폰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냐고 모진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허리 아픔에 대한 고통은 공감은 하지만 동감은 못하기에 휴대폰 무게 때문에 휴대폰 소지를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감을 못하니 휴대폰 무게보다도 내 불안감의 무게가 더 커서 그에 대한 화풀이를 엄마에게 퍼붓는 꼴이었다. 불평 같은 원망을 비 오고 난 뒤 폭포수 떨어지듯 거세고 빠르게 쉼 없이 쏟아냈다. 다행히, 지금은 합의점을 찾아서 스마트워치를 하고 다니시지만...




아침부터 아픈 허리를 동여매고 어기적거리며 내 할 일이 거의 다 마무리된 1차가 끝날 무렵 30분 일찍 조퇴를 해서 병원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의아해했다. 아픈 허리는 단순히 어제의 1회성 사건으로 찾아온 통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3번, 4번, 5번의 디스크 모양이 안 좋다고 했다. 특히, 5번은 심각하다고 했다. 평소에도 아팠을 텐데 몰랐냐며 놀라는 눈치다. 난 정말 처음 아파보는 데 말이다. 이번의 통증이 아니었으면 또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허리디스크.


여하튼, 처음이지만 허리디스크의 통증은 강렬했다. 아침 샤워시간부터 고욕이었다. 서서 샤워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머리를 앞으로 숙이려니 허리 통증 때문에 쉽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려 식탁 앞에 앉으려는 순간에도 움찔, 일어서는 순간에도 움찔, 고개를 돌려 몸을 돌리려는 순간도 움찔,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에도 움찔... 여차여차해서 겨우 운전하여 직장에 도착했건만,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무실 있는 3층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려니, 난간부터 붙들게 되고...


평소 파워워킹으로 힘차 보인단 소리 듣던 내 걸음걸이는 영락없이 엄마의 걸음걸이가 되어버렸다. 아니, 엄마의 걸음걸이보다도 더 느렸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걸음걸이는 영 힘없이 어기적 어기적 10미터를 걸어가는 데 30초는 더 걸리는 같았다. 엄마가 했던 말의 표현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허리 위 상반신과 허리 아래 하반신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 허리 밑 하반신이 상반신에서 분리되어 빠질 것 같은데, 고장 난 관절 인형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고무줄로 겨우 엮어놓은 듯 빠질 듯 밑으로 축 처지다가 탄성으로 겨우 제자리를 찾아돌아오는 느낌... "아이고, 허리가 내려앉는 것 같아. 이러다, 허리가 둘러빠지겠어."


이해할 의지가 없어도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들여졌다.

엄마의 말이.


동.감.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아팠을 엄마를 아직도 덜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은 내게 휴대폰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감을 넘어 동감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을까? 아직도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많은 못난 모지리 딸. 80 넘은 연세에 당뇨라는 고질병과 아픈 허리로 주춤거리는 걸음새로 사회 어디에서 만나든 배려할 만한 대상임에도 엄마라는 편하고 만만한 존재에게는 왜 이렇게 배려와 따뜻한 공감의 말 한마디조차 어려운 건지... 이렇게 또 경험을 하고서야 엄마에게 했던 말들을 되새기며 후회를 한다. 내가 직접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앞으로 또 얼마나 후회하게 될 일을 마주치게 되려나? 요즘 들어 부쩍 엄마는 나에게 "고맙다"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 말이 꼭 "나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처량하게 들린다. 따뜻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이제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도 공감이 아닌 동감의 말을 건넬 때인 듯하다. 엄마에게 더 미안해지려 하기 전에... 서로 다른 세상에서 하지 못한 말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중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슬픔이 되지 않도록...가장 슬픈 말이 되지 않도록...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한 거야.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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