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청소기와 헤어지기로 했다.

- 헤어질 결심 1

by 해야블라썸

이제껏 글쓰기 어렵다며 징징거리며 쓴 글들은 다 거짓말 같았다. 정말 글쓰기 힘들 때는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시점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더니 달갑지 않은 우울이 찾아왔다.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한번 찾아온 손님은 눈치 없이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스트레스. 내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 일이 내 생각과는 사뭇 달라서 꽤나 못마땅한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의 스트레스. 정해진 순서와 형식이 있지만, 한 단계 한 단계를 순서대로 밟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 마주하게 되는 스트레스. 스트레스받는 만큼 몸에도 이상 신호가 와서 여태 아파 본 적 없는 종류의 아픔을 느끼게 된 것에 대한 스트레스.


이래저래 모든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마음의 통제권을 놓치게 되었다. 마음의 통제권을 놓치니, 감정에도 구멍이 생겨 모든 일에 짜증만 났다. 그 짜증은 스트레스가 되어 몸까지 악화되고 결국 스트레스가 기분이 되어 우울감이 밀려왔다.


통제가 되지 않은 모든 상황은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 같았다. 인생이란 건, 노력하면 노력하는 대로, 최선을 다하면 최선을 다한 대로 결실을 맺는 정의롭고 공정한 과정의 집합체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내가 잘해도, 착하게 굴어도, 진심을 다해도, 공의롭지 못하게 억울한 일은 생기기 마련인 게 인생인데 말이다. 그 억울함을 참고 있으려니 말 못 하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아 보여서 우울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 우울감이란 것은 제법 묵직한 법이어서 몸은 가눌 수 없도록 자꾸만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차라리, 우울의 감정이란 게 눈물로 흘러 씻겨질 수 있는 거라면 펑펑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켜고 꼼짝없이 누웠다. 잔잔하게 눈물샘 자극할 만한 16부작 드라마를 1박 2일 벼락치기 공부하듯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열심히 시청만 했다. 시청하다 스르르 눈이 감기면 그냥 잤다. 자다 깨면, 아무것도 안 하고 꼼짝 않고 누워서 드라마만 봤다. 16부작 드라마 하나로는 부족한 듯하여, 하나를 떼고서 또 다른 하나를 더 뗐다. 그래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다른 것을 찾았다.


마침,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모두 독감에 걸려서 나 혼자 격리되어 화장실 딸린 방에 누워있으니 조심스러운지 아무도 말 걸어오는 가족도 없다. 배터리의 쓸모가 다 된 로봇청소기만 집구석 한 바퀴를 제대로 다 돌지 못하고 멈춰서 나를 부른다. 불쌍한 그 녀석을 충전단자에 꽂으니 그제서야 나에게 몇 마디 말을 하고선 재충전 들어갔다. 묘하게도 그 청소기를 바라보자니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는 데, 한 해를 마무리할 힘이 없어 가만히 누워있는 나. 차라리 쉽게 재충전되는 로봇청소기 신세가 더 나은 건 아닐까? 쉽게 방전되어 뻗어버리는 청소기가 나 같아 보여 미우면서도, 묘하게 질투가 났다.


지금 난 왜 이렇게 지쳐있는 거지? 무엇에 마음을 다 쓴 거지? 글로 정리라도 해 볼까? 근데,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손가락이 꿈쩍도 않는다. 2022년에는 브런치 작가가 된 만큼, 우울감이 나를 급습하기 전에는 한해의 자서전을 써볼까, 참회록을 써볼까 행복한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새해는 부족하나마 글쓰기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방학도 할 테니, 읽고 싶은 책들을 서점 장바구니에도 담아두고, 생각나는 대로 수첩에도 적어놓았다.


근데, 마음이란 게 방전되니 그 모든 일이 귀찮아졌다. 매일 들여다보던 브런치마저도 저 멀리 던져버리다시피 했다. 내 글을 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설령, 쓰더라도 하나의 글이 되지 못하고 호작질로 남아 서랍에 처박혔다. 내 글은 못 써도 쓰여진 다른 글들은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 데 그것조차 되지도 않았다. 이웃 작가님들과 소원해지기 싫어서, 그 끈을 놓기 싫어서 겨우겨우 피드를 통해 들어가 보지만, 읽히지가 않았다. 겨우 읽었다 해도, 맘이 시원찮으니 글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심스러워서 댓글을 달기도 버거웠다.

글을 쓰지 않으니 이런 메세지가...ㅠㅠ


대체, 그동안 댓글은 어떻게 쓴 걸까? 머리에 총 맞은 것처럼, 머리는 마비되었다. 머리가 마비되니 몸도 마비되고 덩달아 마음도 꼼짝 않는다. 불행히도, 이번 겨울 방학식은 방학중 학교 공사로 2월 수업일수가 겨울방학식 이전으로 모두 당겨졌다. 즉, 새해가 되어서도 며칠 더 등교해야 방학을 한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마비된 마음을 가지고 꾸역꾸역 학교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울함에도 책임감은 있어서, 머리와 마음은 안 움직이나 몸은 기억하고 있어서 학교일은 여차저차 간신히 마무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새해는 밝았고 여느 학생들보다 더욱 진심으로 방학을 기다려 방학을 맞았다.


Happy New Year!

새해라고 여기저기 카톡 단체방은 카톡! 카톡! 울리며, 여러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새해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 무리 속에서 나 스스로는 철저하게 고독했다. 좀처럼 밝게 인사를 할 수 없어서... 한번 좀먹은 마음은 군중의 명랑함 속에서도 쉽게 밝게 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군중의 명랑함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방학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둔 상황 일주일째. 자식들이 그래도 나의 비타민이다. 방학한 자녀들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창피해서라도, 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 내 우울한 마음이여 이제는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작별해야 한다. 우울한 마음과 헤어져야 한다.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남들이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헤어질 결심을 한다.


애꿎게도, 나를 닮은 우울한 청소기와 먼저 헤어져야겠다. 배터리 수명이 다된 로봇 청소기. 집구석 한 바퀴도 다 못 돌고 방전되어 충전단자를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거실 중앙에 멈춰 서기를 여러 번. 내가 꼬옥 안아서 충전단자까지 모셔와야지만 다음을 위해 충전할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혼자서는 스스로 충전할 힘조차 내지 못하고 멈춰버린 청소기. 우울감에 쩔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나 같아 보여 그렇게 밉상스러울 수가 없다. 더군다나, 청소가 제대로 안 되니 집구석이 꼬질꼬질해 보여 더 밉상이다. 움직이기 싫은 나를 자꾸만 움직이게 하니까 더 밉살스럽다.


이제, 우리 헤어지자. 너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마저도 이 상태에서 못 빠져나올 듯 느껴져서 더 우울해진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수고했다.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내게는 감사였다. 너에게 감사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너를 더 미워하기 전에, 너를 더 원망하기 전에 너를 보내려 한다. 내 마음의 우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