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작을 위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하고픈 것.
운전하면서 듣는 라디오 속에서 단아한 어투를 가진 진행자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우리는 걷다가 지치면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갑니다. 그러면, 마음이 힘들 땐 어떻게 쉬어가시나요? 마음의 의자는 있으신가요?"
마음의 의자.
그렇네요. 연말에 찾아온 내 우울감은 여러 상황이 겹치기도 했지만, 내 마음 쉬어갈 의자를 잃어버린 게 가장 큰 이유처럼 느껴졌어요. 라디오 진행자가 추천한 마음의 의자는 좋은 글귀였습니다. 내 눈이 닿는 곳 어디든 좋은 글귀를 써두고 본다면, 그때마다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지 않겠냐며 애청자들에게 추천 글귀를 지금 이 시간 함께 나눠보자고 제안했어요. 이 제안에 진심인 여러 애청자들은 함께 나눌 좋은 글귀들을 스스럼없이 공유하기 시작했지만, 볼 일을 보러 가던 중이었던 나는 딱 거기까지만 들었네요. 목적지에 도착했기에 아쉽게도 좋은 글귀를 수혈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2학기를 맞이했고, 학기가 시작되어 포스트코로나를 맞이한 우리들은 더 바빠지기도 하였지만, 모임을 주관하던 내가 코로나까지 걸려서 모임을 알리지 않으니, 배드민턴을 치자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어요. 설상가상으로 내 허리까지 삐끗했고, 2학기가 되면서 새로운 인사로 이전 멤버들이 달라진 탓도 있었죠. 그렇게, 2학기에는 배드민턴 모임이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어쩌다, 남아있던 멤버들과 마주치면, 배드민턴을 한번 쳐야 하는 데 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했구요.
배드민턴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업무적으로 쌓였던 불평과 관계의 껄끄러움, 스트레스는 셔틀 콕 스매싱 한 번으로 날려버렸었는 데 그럴 기회가 없어진 게 많이 아쉬웠답니다. 코트에서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는 셔틀 콕을 맞받아 다시 반대편으로 내리꽂으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는 데... 때로는 미처 내가 자리 잡지 못한 공간 속으로 날아온 공을 놓칠 때면, 그 끝을 애써 따라가며 받아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그 순간이 그렇게 비통할 수가 없었는 데... 내 역할을 다 못하여 우리 팀이 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같은 편 실력자의 응원도 받고, 때론, 내가 팀의 실력자가 되어 같은 팀원을 격려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기쁨과 절망도 함께 나누었는 데...
라디오에서 추천해 준 좋은 글귀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 브런치에서 만나게 될 화수분 같은 작가님들의 여러 글도 될 수 있을 것이며, 친한 지인들과의 수다스러운 커피 타임도 내게는 마음의 의자가 될 것입니다. 허리가 조금만 괜찮아진다면, 배드민턴 모임 재개도 마음의 의자가 되지 않을까 싶구요.
무엇보다도, 얼마 전, 배드민턴 대신에 시작한 걷기도 내 마음의 의자가 될 것 같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30년지기인 친구와의 수다입니다.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시간 한 시간 정도 같이 걷기로 했거든요. 어제는 저녁 8시에 만나서 걷기 시작한 일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 10시가 다 될 때까지 걸었네요. 딸에게서 왜 아직 안 들어오냐는 걱정스런 전화에 정신 차려 시간을 확인한 거죠.
내 30년 지기는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대학교 같은 과 동기이고, 결혼 후 같은 동네에 살게 되었습니다. 허물없는 사이여서, 속 시원한 대숲 역할을 톡톡히 하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같은 직종이면서도 학교가 다르다 보니 방학 외에는 커피 한잔의 여유도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함께 걷기로 하였습니다. 어쩌면, 함께 수다떨기로 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일정한 약속이 있으면, 그 핑계로 밤늦게까지 학교 남아서 하던 일도 잠시 손에서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친구가 좋아라 하네요. 물론, 저도 더할 나위 없이 좋구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대화하지 않아도 되니까. 작은 실수 하나로 오해가 생기는 사이는 아니니까. 나에게 베푼 친절 속에 무슨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불편함을 느낄 사이도 아니니까. 언제나 서로의 편이 되어서 응원해 주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며 서로의 판단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는 편하게 조언해 주고 격려해 줄 사이니까. 그냥 서로 편하게 가감 없이 현실을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느낌을 공유하면서, 현실 속에 찌들린 마음도 함께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이 쉬어가는 의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나에게 겁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에서든 현실에 부딪히는 문제 앞에서는 용기 있게 잘 대처할 단단한 마음 근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말에도 물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마음이 쉴 의자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홈트를 하든, PT를 받든 간에 이러한 육체의 단련에도 한 자세에서 다른 자세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몇 초간의 쉼이 필요하듯, 마음이라고 다를까 싶어서요.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마음의 의자를 단단히 준비해 놓으려 합니다. 언제든, 지친 마음이 잠깐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그 쉬는 순간이 잠깐이어도 이내 곧장 자세를 바꾸고 다시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도록...
날이 부쩍 따뜻해졌습니다. 겨울의 끝이 보이고, 봄이 오려하네요.
새롭게 시작될 봄을 위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의 의자를 준비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