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바로 꽃자리

-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by 해야블라썸

사랑하는 후배가 직접 써 준 캘리 작품을 하나 선물 받았어요. 항상 만날 때마다 원하는 글귀 있냐고, 말하면 하나 써주겠다고 했는데, 바쁜 거 아니까 미안해서 늘 말을 못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뜻밖의 이유로 후배의 정성이 들어간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구도 후배가 골라서 써 준 것이구요.


글씨도 이쁘지만,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주인의 자세로 임하라는 말 같기도 하구요. 또, 곱씹다 보니, 내가 머무르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라 그런 말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그래서, 혹여나 해서 뭐든 다 알고 있는 지식인에게 물어봤지요. 그런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저만 몰랐던 건지, 꽤나 유명한 말이었어요.


한자어로 말하면, 수처착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입니다. 임제 선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네요. 언제 어디서나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불교인이 아니어서 이런 말의 깨우침을 얻는 게 쉽지는 않지만, "주체적"이라는 말은 "나답게"라는 말과 일맥상통할 터인데, 언제, 어디서나 주체적이라는 말은 어떻게 하는 걸 말하는지 조금은 의문이 드는 겁니다.


동시에, 저는 과연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 지도 궁금하구요. 또한, 주체적이라면 무엇에서 주체적인 것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막연하기도 하구요. 주체적이라는 말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언제, 어디서"라는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추니 지금 제가 머무르는 "여기 이 순간에 좀 더 충실하라"는 의미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의 시간을 지배하라. 지금의 주인이 되어라 이렇게 들리는 겁니다.


혹은, "주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니, 누군가 나의 시간을 결정하도록 두지 마라, "적절한 때의 선택은 나 자신이 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벌써 새해의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보니, 나는 한 달의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반성케 되기도 하네요. 흘러만 가는 시간이라 붙잡을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활용하냐에 따라서 시간의 주인이 될 수도, 하인이 될 수도 있잖아요.


바쁘다고 흘러가는 시간의 끝자락을 붙들고 세상의 기준을 겨우 따라가는 삶을 살 수도 있고요. 내가 뜻하는 바, 마음에 둔 것이 세상의 기준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산다면,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은 겁니다. 그런데, 자꾸 세상의 기준과 비교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 많았네요.


이 정도 나이면,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 이 정도의 집, 이 정도의 차, 이 정도의 취미 생활, 이 정도의 자녀... 등.


늘 누군가 정해준 대로 살 때가 많았어요. 그 정해진 기준에 맞추느라, 늘 너무 조급합니다. 기준에 못 맞춰서 뒤처져 있을까 봐 불안하고 조바심 납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일을 당장 해결하여, 빨리 해치우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원하죠. 순간순간 주어지는 선택 앞에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지금의 시간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나 정신을 차리게 되면, 목표지를 향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지는 거예요. 약간의 불안이 내 마음 틈새로 스며들면 아~ 이게 아닌가 싶어 흔들리기도 하구요. 그러면 또, 확신 없는 삶을, 방향도 모른 채, 세상의 기준 따라 달려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기도 합니다.


결국,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 데, 내게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되지도 못하여, 방향도, 속도도 모르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방향도 모르고, 속도도 모르는 내가 머무르는 이 곳, 이 시간이, 어디매 쯤인지 몰라 또 헤맵니다. 내가 머문 이곳, 이 시간이 정말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 되어, 이젠 정말 어디로 어느 속도로 달려가야 할지 몰라 새삼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목표지를 찾아 헤맵니다.


아니, 이젠 지쳐서 달릴 힘도 없어요. 눈을 크게 뜨고, 여기가 어딘가 유심히 살펴봐야 다시 방향을 찾고 달릴 수 있을 텐데, 빨리 달리기에 관성이 붙어버린 습관 때문에 주변을 세밀하게 살피지도 못하네요. 이렇게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방향도 모른 채로 세상의 기준 따라 열심히 달려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시간의 노예.


하지만, 시간의 주인이라면 그러진 않겠죠? 시간이 흘러간다 해도 쫓기지 않고, 페이스(pace)를 유지하면서 달릴 거예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는 세상이 정한 시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잘 아는 길이면 조금 속력을 내면서 달리기도 하겠죠. 그냥, 목표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느린 삶이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시간을 나에게 맞춰 조절해서 달리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주변의 내 소중한 사람도 보일 것이구요.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주변의 풍경과 내 소중한 사람들 틈에서 그 시간을 느끼며 살게 되겠죠.


바빠서 못했다고 핑계 대는 삶이 아니길 바랍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도 않으며, 놓친 것은 주워 담으면서라도 나 자신의 페이스에 초점을 맞춰 천천히 지금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만큼의 주변 풍경과 이만큼의 소중한 사람들을 함께 느끼면서요. 내 주변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는 지도 느끼면서 말이죠. 그러면, 그다음은 어떤 방향으로 누구와 함께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도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잠시 이정표를 보면서 쉬더라도, 불안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요. 확신이 있다면, 느린 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중요한 건, 도달하는 그 과정에 마주칠 풍경과 함께 할 사람일 테니까요.


이정표를 확인할 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내가 원했던 방향이면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더라도 감사할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영 모르고 지나쳐서 영 엉뚱한 곳으로 가다가 끝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돌이켜 제대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으니, 다시금 원하던 방향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놓쳐버린 시간만큼 더 간절하게 살도록 다짐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모두 감사한 일입니다.


정말 반갑고, 고맙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늘 반복되는 삶 같고,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같고,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는 데, 후배가 써 준 글 하나로 돌이켜보니, 늘 반복되는 삶이어도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고,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같아도 모두가 똑같이 활용할 수 있는 공평한 시간은 아니었으며,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방향도 모르는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원치 않는 일들의 연속이고, 그 순간마다 내 선택의 연속이며, 그에 따른 내 모습의 연속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어, 나의 삶이 됩니다. 그 수많은 순간의 선택 속에서 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그 선택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물고기를 원하는 자식에게 현명한 부모는 물고기 대신 낚시법을 알려준다고 했던가요? 선택 방법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가는 곳마다, 내가 있는 곳마다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지요. 그래야, 오롯이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겠죠? 야속하게 빠른 세월이라고 세월을 욕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린 공평하게 주어진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시간을 호령하는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긍정을 선택합니다.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긍정요.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긍정입니다. 갑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해서가 아니고요. 어쩌면, 다짐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다짐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세상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나답게 느끼고, 좀 더 나다운 생각을 하며, 나만의 결정을 내리며 살겠다는 다짐요. 좀 더 주인다운 자세로 시간을 대하겠다는 다짐을요.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시간에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다짐을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이전과는 다르게 듣고 해석해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런 다짐 끝에도 순간순간, 내 선택이 제대로 된 것인지, 내가 느끼는 게 맞는 것인지, 나의 생각과 결정이 맞는 것이지, 불안하고 두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시간의 주인인 상태로 어떻게 느끼고 행동할지 결정한다면 그것이 곧 참된 진리임을 믿으려 합니다.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