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널 위해 뭘 해주니?
이 말은 제가 요즘 OTT 플랫폼에서 보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2> 드라마에 나온 대사에요. 잠시, 주인공들끼리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짧은 장면의 한마디였지만, 제겐 이 말이 계속 가슴속에 울리더라구요. 마치, 제 자신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말, 단순하게는, 네 자신에게 무얼 (선물)해 줄때 행복하니?라고도 들리구요. 질문을 계속 곱씹다 보면, 네 영혼까지 지치고 곤할 때, 너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게 뭐니?라고 메아리쳐 오더라구요.
나이를 먹으니, 벌써 지난 1월처럼 명절휴가비까지 두둑해진 월급통장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선물 줄 생각만 하지, 정작 나 자신에게는 선물하나 못 하고 살 때가 많네요. 친정에 얼마, 시댁에 얼마, 애들에게는 얼마, 조카들에게는 얼마... 이렇게 용돈을 주거나 혹은 무슨 선물을 살 지 고민하면서도 정작 날 위한 선물은 생각지도 않네요.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 게 어른이 되는 모습인 가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를 점점 잊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게 필요한 건 뭔지,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뭔지, 혹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뭔지, 생각 안 해본 적이 너무 오래되었네요. 내 마음속에는 내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나이 들면서 온통 아프신 부모님 걱정, 함께 늙어가는 게 서글퍼 보이는 남편걱정, 앞으로는 어떻게 키워야 되나 싶은 자식 걱정만 있고, 나에 대한 걱정은 1도 없이 말이죠. 그렇다고 나는 걱정할 것 하나 없을 정도로, 혹은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춘 채로 엄청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그래서, 시구절 같은 오래된 발라드 한곡만 들어도 가슴이 휑해지네요. 가슴속에 뭔가 꽉 차 있는 거 같아도 결국 나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마음이라서요. 그 마음 때문에, 애절한 노래 가사하나에도 눈물 터지기도 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래 가사나 멜로디 선율만큼 제 마음도 쓸쓸한 가 봅니다. 노래 가사 속 이별한 연인의 알 수 없는 소식만큼이나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만큼이나 오래전에 나와 헤어진 내 마음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에게 관심을 갖고 저를 좀 알아보려고 해요. 분명, 저에게도 갖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고,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던 시절이 있었는 데 말이죠. 그 때문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목표를 세우고 희망을 품고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는 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무언가를 모르고 사니 똑같은 날의 도돌이표 같아서 삶이 심심합니다. 지루합니다. 공허합니다. 그래서, 길을 잃은 듯 당황스럽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날마다 헷갈립니다. 헷갈려서 날마다 순간순간 주어진 선택을 잘못하고 후회하고 살 때가 더 많아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냥 습관처럼 반복되는 삶인 것 같은데도 순간마다 흔들리고 순간마다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 졌습니다. 제 중심을 잡아줄 그 무언가를요. 제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을, 제 영혼의 치킨수프가 되어줄 그 무언가를요.
넌, 널 위해 뭘 해주니?
자식이 밥 잘 먹는 모습만 봐도 기쁘니까 밥 해준다는 둥, 부모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쁘니까 부모님께 무얼 해 드린다는 둥 뭐 이런 착한 부모, 착한 자식 코스프레 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요. 혹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브런치라고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무얼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나만의 나를 닮은 그 무언가를 아직 발견하지도, 나답게 쓰고 있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늘 글 하나 발행하고 나서도 뭔가 뒤처리가 덜 된 듯 찝찝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질문의 핵심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하는 그 무언가입니다. 나만을 위한다는 건, 의무감이나 책임감과 같은 무거운 무게를 내려놓고 오롯이 내가 기쁨을 느끼고 즐기게 되는, 내 영혼까지 기뻐할, 내 영혼조차 속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쾌락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일 테 지요.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당장 바로 떠오르지는 않아도, 내가 잊고 살던 정말 나다운 무언가가 떠오를 것 같아요.
그냥, 이 질문 하나 툭 던졌을 뿐인데, 저는 어린 날, 혹은 젊은 날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하고 싶었는지가 생각났어요. 중, 고등학교 때는 언론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십 대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네요. 직장고민 말고요. 운전하는 게 무서워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장 늦게 운전면허를 습득했으면서도, 실제 면허증을 따고 나서는 운전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가장 먼저 차를 사서 몰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명퇴 후에는 개인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창 연애에 관심 많았던 젊은 어떤 날에는 찐한 사랑 이야기를 쓰는 삼류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네요. 왜 일류가 아니고, 삼류였냐구요? 모르겠습니다. 이름난 일류가 아니라, 남들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꿋꿋하게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때론, 사람들이 교사니까, 어릴 적 꿈이 교사였는지도 묻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저는 슬프게도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학창 시절 이상한 선생님들을 만난 적이 많아서요. 물론, 교사가 되어서는 어릴 적 그런 경험들이 반면교사가 되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계열로 비슷한 꿈이 있었다면, 한 때 심리학에 재미 붙여서 심리학과 교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대학 졸업반 때 뒤늦게 심리학 공부를 시작해서 부전공도 했었구요. 아버지의 반대로 더 깊은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으로는 이어지지는 못했지만요.
젊을 때는 이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뭔가 하고픈 게 조금씩 있었네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런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 지도 알았어요. 언론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학창 시절에는 지방에 사는 내가 인(in) 서울 하겠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었지요. 그땐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게 참 재밌었어요. 심리학의 매력에 빠졌을 땐, 졸업을 늦추어가면서까지 공부를 했었네요. 또한, 운전이 재밌었던 나는 나를 위해 자동차를 한대 선물하고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방방곡곡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었구요. 어찌 보면, 늘 되고 싶거나 하고픈 그 무언가가 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소소한 것들을 찾아 하나씩 해 나가면서 삶의 기쁨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때마다 내 영혼은 웃고 있었구요. 그것이 나를 위한 선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교사가 된 이후로도 종종 삽질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 살기는 했어요.
근데, 요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잘 떠오르지가 않아요.
아! 그나마 최근에 날 위해 해준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연말에 감기처럼 찾아온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제 꿈의 에피소드를 살려서 소설을 썼던 경험요. 몇몇 작가님들이 용기 주시고, 응원해 주시니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도전하게 되었어요. 문득, 시도해보지 못했던 삼류작가가 되고 싶다던 꿈이 떠올랐거든요. 소설이란 것이 제게는 생소한 경험이지만, 처음이니까 잘 못 써도 어떠냐고, 글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운 데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어떠냐고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어요. 소싯적 네 꿈이 삼류 작가라면서... 이런 말과 함께요. 삼류 작가의 꿈이 떠오르자, 도전하고픈 용기도 생기더라구요. 읽는 사람 없다 해도 한번 써보자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소설은 처음이라 어설프고 서툰 그 무언가였지만, 제게는 최근 절 위해 해 준 최고의 선물이였어요. 정말, 남들의 평가보다도 그냥 제 소설 이야기에 제가 빠질 수 있었어요. 한창 쓸 때, 설 명절기간과 겹쳐서 가족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도, 제 머릿속은 온통 소설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까 그 생각뿐이었어요. 영어를 잘하려면, 꿈에서조차 영어로 말해야 된다던데 제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꿈속에서까지도 제 소설 생각만 했어요. 그렇게, 10여 일간 그 이야기에만 매달리자 연말에 찾아온 우울감씨는 떠나갔고, 그 빈자리는 행복감씨가 찾아왔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쓰고 보니, 조금은 낯부끄럽네요. 뭔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술술 글이 쓰여지던 그때의 행복감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너무 빨리 써서, 완성하고 나니 그 행복감을 더 지속시킬 수 없음에 다시 조금 공허했지만요.
물론, 어설픈 단편 소설하나 완성했다고 제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그 무언가는 없지만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이렇게 설렐 수도, 행복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새로운 감정을 느꼈어요. 겨울 같던 마음에 생기 돋는 봄이 왔지요. 앞으로도 이렇게 글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뭔가가 쌈박하게 떠오르지 않아 괴로운 순간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 순간들은 글 쓰는 설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표현되는 그 정도의 것밖에 안 되겠지요.
<쉬잇~! 이건 비밀인데요. 너무 기뻐서 속삭여봅니다.(사실, 제 소설로 지식인이 많은 사이트 웹소설에도 도전해 봤어요. 4일 만에 승격돼서, 제가 원하면 유료화도 시킬 수 있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료화시키진 않았어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니까요.)>
아! 글을 쓰다 보니, 날 위해 해 줄 것이 갑분글(갑자기 분위기가 글쓰기로...)이 되었네요. 뭐, 글쓰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레는 글쓰기가 될 것 같습니다. 목표는 삼류작가가 될까요? 여하튼, 차분하게 생각은 더 해 보지요. 이왕이면, 나답게, 나다운, 나만의 글쓰기를 하고 싶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제 글이 더 이상 발행되지 않는다면 생각해 주세요. 글쓰기보다 저를 더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을 찾아 떠나간 거라고요.
이렇게,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살짝 업(up)되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요. 근데, 실제로 행한다면, 삶은 또 다른 달콤함이겠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무얼 해 주고 계신가요?
저처럼, 바로 막 안 떠올라도 괜찮아요. 어쩌면, 이미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계신 분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박수쳐 드립니다. 아마도, 대단히 현명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일 겁니다. 그러면, 제 글 끝까지 읽으실 필요 없어요. 조용히 나가셔도 되요. 이미 행복한 프로 긍정주의자이실 테니... 단, 제 글에 라이킷은 꼭 눌러주시고요. 후훗!
저처럼 삶이 무미건조한 일상의 무한반복처럼 느껴지신다면, 일단, 자신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시면 어떨까싶어요.
넌, 널 위해 뭘 해주니?
실행은 그 다음 문제구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생각만으로도 설렙니다. 잊고 있었던 갖고 싶은 작은 선물이라도, 예전에 시도해 보지 못했던 작은 꿈이라도, 지금 바로 이 순간, 한 번 떠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