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신생아처럼 잠만 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냥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기에는 이게 또 잘 쉬는 게 맞나 싶어서 자괴감이 들었어요. 쉬기로 한 김에, 빨래도, 설거지도, 청소도 미뤄놓고 있으니 집안 일만 쌓이는 게 아니라, 나의 게으름도 같이 쌓이는 거 같아서 또 하루를 귀찮아했음에, 비생산적인 일로 시간을 떼웠음에 스스로를 꾸짖습니다. 이렇게 할 일들을 미루고 누워있는 것은 나를 한없이 게으르고 비생산적인 식충이 같은 느낌이 들게 해서 스스로 느끼는 불편한 마음 때문에 진정한 쉼이 되지 않네요.
그렇다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면 몸만 쉬는 거지, 머리는 쉬는 게 아닌 데 그게 또 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머릿속 생각을 막고 비우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기웃거리다 보면 그건 또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럼, 대체 쉴 때 뭘 해야 되는 거지? 어떻게 쉬는 게 잘 쉬는 거지?
나이 먹도록 제대로 쉰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살았으니 그 또한 나이 헛먹은 거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쉰다는 게 누워서 잠만 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뭔가 하겠다고 꼼지락거리고 정신을 깨우는 것 또한 쉬는 것은 아닌 거 같아 괴롭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독서가 쉬는 거라고 하는데, 사고형이 아니라 감정형인 나는 그게 또 어찌 쉬는 건가 싶어 쌓아 둔 책을 선뜻 집어 들지 못합니다.
3~4평의 네모난 방안에 틀어박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함은 심심함이 되는데, 심심함이 과해서 우울함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갱년기가 이런 것인 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이는 나뿐인 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런 자괴감을 덜어 버리려면, 어찌 쉬는 게 잘 쉬는 건가에 대한 고민부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몸이 쉬는 것처럼, 머리도 멍 좀 때리도록 쉬도록 내버려 둬도 될 터인데, 그것은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잘못된 거라고 단정 짓는 나의 사고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뇌를 움직이면서 살도록 권고받은 삶은 잠시의 멍 때림도 허락하지 않아 피곤하네요. 나를 어느 지경까지 몰아넣어야 쉬어도 된다고 허락해 줄려는 지...
네모난 방, 네모난 책상 위, 네모난 모니터, 이 네모의 틀을 벗어나는 음악으로 방을 채워봅니다. 사람의 소리가 없는 악기 소리로만 가득 찬 선율의 연주곡이 내 몸을 에워쌀 때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는 멍 때리고 있어도 되겠다 싶어 집니다. 음악은 듣고 있으니까요. 뭔가를 느끼고는 있으니까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것도 하지는 않는 데, 살아있는 느낌은 드는 거죠.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쉬어야 하나 보다 싶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환경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사람마다 쉬면서 자신의 빈 마음을 채우는 방식은 다르니까요. 사유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사유보다 느낌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사유의 힘이 강력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니, 가끔은 이 브런치에서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때로는 아무도 주지 않은 소외감을 혼자서 느끼며 말이죠. 그 소외감이 나를 많이 외롭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면 그 느낌과 마주하면서 벗어날 수 있겠죠?
고백하건대, 저는 느끼는 사람입니다. 사유가 깊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유가 없는 글을 쓰며 혼자서 자책했습니다. 사유가 많은 글들 앞에서 느끼는 글을 쓰는 나 자신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져서.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느끼는 세계와 사유의 세계는 마치 한국에 사느냐, 외국에 사느냐처럼 다른 세계에 사는 일과도 같다는 것을. 느끼는 세계에서 사는 내가 사유하는 글을 쓸려고 하는 것은 내가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인 양 행세하려고 하는 것과도 같아서, 정체성을 잃고 글 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인은 한국인인 채로, 외국인은 외국인인 채로 살면 됩니다. 그럴 때, 행복감이 채워집니다. 내 정체성에 맞는 글을 쓸 때 내가 나답게 되는 거고, 내가 나다움을 느끼니까 행복한 거예요.
그래도, 살다 보면 사람이란 게 내게는 없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하는 법이잖아요. 외국이 궁금하면, 해당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관련 서적을 읽거나, 세계 기행 다큐를 보면 됩니다. 좋아 보이는 외국인의 삶은 여행으로 체험하거나 다른 경로로 간접 경험을 하며 충족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행을 몇 번 다녀왔다고 해서, 한국에서 외국인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했다고 해서 한국인이 외국인이 될 수는 없어요.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진정한 외국인은 될 수 없지요.
이건 저에게 하고픈 말 입니다만, 생각과 느낌에는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할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건 전혀 다른 세상의 것이니까요. 다만, 자신은 생각하는 사람인지, 느끼는 사람인지는 꼬옥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느끼는 사람이면서 생각하는 사람처럼 사유가 가득한 글을 쓰려는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나답게 글을 써야 글도 써지고, 글 쓰면서 설레고 행복감도 느끼니까요.
쉬는 것도 그렇네요. 내가 나답게 쉬어야지요. 느끼며 사는 사람은 느끼는 게 쉬는 거예요. 생각하려 들지 않으려고요. 굳이 책을 읽으려 하지도 않으려고요. 그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게 만드는지 아니까요. 그래도 꼭 읽어야한다면, 시집이나 소설, 혹은 그림이 가득한 책을 보려구요. 자신의 느낌과 상상을 채워줄 책을. 좀 게을러지고, 생각 좀 안 하면 어때요? 저는 대신 느끼고 있는 걸요. 이 세상을. 이 삶을.
저는 느끼며 사는 사람이니까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의 편을 들어봅니다. 쌓아 놓은 책을 읽지도 않는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마음같기도 하고, 생각이 없으니 글이 안 쓰여지는 마음의 합리화같기도 합니다. 글을 안 쓰면 되는데, 굳이 쓰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