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언니랑 이야기 중이었는 데, 우리가 이야기 중인 테이블로 언니 신랑이 불쑥 끼어드니 언니가 가방에서 약통 하나를 쓰윽 꺼내 신랑에게 건넸다.
"지금 물은 없어. 이거부터 먹고 마셔."
형부라고 불러도 될 만큼 친분 있는 언니의 신랑은 잘 훈련된 반려견처럼, 약 한 알을 얼른 입에 넣고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데? 좋은 거면 나눠먹자."라며, 난 너스레를 떨었다.
언니는 약통을 들어 서너 번 흔들어 보여주더니, 1초도 안 되어 거둬들였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고, 먹어보고 글 써달라고 받은 약이야. 요즘, 이래저래 글 써준다고 제품도 많이 받고, 때론 돈도 받기도 하고 그러고 있다."
"어디에? 블로그에?"
"응."
"얼마나 됐어? 주소가 어찌 되는 데? 나한테도 알려줘야지."
"1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아직은 아니고 파워블로거 되면 나중에 알려줄게."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잘 되면 마땅히 내 일처럼 축하해 줄 의향이 200% 충족되는 언니이기에, 분명,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그런 질투는 아니었다. 뒤통수 맞은 듯한 고통은 그간 잊고 있었던 나에 대한 자각의 울림이었다. 나는 언니보다도 더 훨씬 이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려 왔었지만, 그런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뭘 바라고 글을 적은 것은 아니지만, 몇 년을 꾸준히 하면 나도 뭐라도 될 거라는 희망에 한 때는 열심히 공들여 글을 써봤지만, 역시나 평범한 인기 없는 블로거일 뿐이었다. 내 글은 그만큼 다수가 공감하고 좋아요를 누를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쯤되니, 언니와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끔, 언니에게서 편지를 받아본 나로서는 언니의 필력 수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글을 잘 쓰긴 하지만, 브런치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큼 깔끔한 필력은 아님에도 독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은 있음이 분명했다. 그 차이를 고민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센스'였다.
평소, '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언니는 패션 센스가 좋다. 처녀 시절에는 40kg 대의 날씬한 몸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아줌마 몸매임에도 늘 공주 같은 패션 센스로 당당하게 옷을 입고, 값비싼 옷이 아니어도 당당하게 자신만의 브랜드화될만하게 그 옷을 소화해낸다. 말투도 어느 행사에서 내레이션이나 진행을 맡아도 될 만큼 나근나근하고, 말솜씨 또한 좋다. 물론, 그 센스는 글에도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홀리는 매력, '센스'가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언니는 최고 인기녀이다.
언니랑 친하기에, 어떤 때는 내 옷 입는 스타일이나 모습들이 언니와 닮아있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난 언니의 그 '센스'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다. 대체 '센스'란 무엇이란 말인가? 정확한 우리말로 되짚어 보고 싶어, 사전까지 뒤적거려 보았다.어떤사물이나현상에대한감각이나판단력.
그래, 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감각이 좀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한 이유로 내가 글 쓰고 싶은 것을 포기하라고?
이렇게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나니, 갑자기 오기가 생겨났다. 끝까지 한번 해보자. 감각이 좀 떨어지면 어때? 감각이 떨어지는 평범한 글을 쓰면 되는 것이지.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잖아. 그냥, 난 글을 쓰고 싶을 뿐인 것을. 아직, 글감의 주제는커녕, 글감의 소재도 못 찾았을 뿐인 작가. 반백살이 다 되어도, 일상에 대한 통찰력 부족으로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따뜻한 글 한 줄조차 못 쓰는 작가. 하지만, 이런 내가 작가가 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리 소질이 없고 센스가 없어도, 좋아하고 노력한다면 글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정도는 품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작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현요아, '지망생이어도, 스스로를 작가라 불러야 하는 이유')은 글쓰기 연습 중이라도 매일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이면 자신을 작가 지망생, 혹은 습작생이 아니라, 작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크게 공감하며 용기얻어서, 감히 제대로 된 글 하나 브런치에 올린 적도 없는 제가 이 글 속에서 작가라고 칭해 보았습니다. 혹시 이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저를 건방지다고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단, '매일 글을 쓰며'라는 부분이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요. 되도록이면 더 자주 글을 쓰고, 글로써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 성장하는 '나'가 되고 싶습니다.
앗! 혹시나, <글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글을 읽고 무슨 댓글인지 궁금하셔서 오신 분이 계시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실 지 아시죠? 그 댓글은 제가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