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벌써 '작가의 조건'을 잊었네요.
- 하마터면, 열심히 글을 쓸 뻔했어요.^^;;
금요일 밤 8시. 잊고 있었는 데, 브런치 알림이 왔다. 누가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았나? 라이킷을 눌렀나? 반가운 맘으로 알림을 확인했다. 알림이 이렇게 반가운 것은 글 발행 후 이틀 동안 독자들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가 삼일째부터는 조회수 0으로 그 어떤 발자취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브런치 작가를 지망하게 된 것은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글 쓸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앙처럼 품고서, 순전히 뭔가를 끄적이길 좋아하는 '나'의 글을 꾸준히 쓰면서, 어릴 적 막연한 꿈이었던 내 이름 석자 달린 책 발간 목표의 첫걸음으로 브런치 작가에 지망했다. 아직 특별한 글감이나 주제를 생각해 둔 것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이 정도 글 쓰고 싶은 열망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내 호기심이 부채질 역할을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글쓰기 계획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번번이 막혀 시도도 못했던 내가, 이번에는 특별한 글감이나 주제는 없지만, 글 쓰면서 꾸준히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고 답했다. 글은 이미 써 놓은 게 몇 가지 있던 터라, 글목록을 적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일단 시도해본다는 의미여서,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도 글 쓰고자 하는 맘이 크면 합격하는지 못 하는지 시험해 보는 의미도 강했다. 떨어지면, 그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보자는 작전이었다. 근데, 덜컥 합격해버렸다. 이쯤 되니, 첫 번째 발행 글도 대단한 주제가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내가 작가가 되도록 해준 글이었으니까 매우 충동적으로 쓴 즉흥적인 글이었음에도 발행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별 내용은 없는 데 제목만 조금 거창해서 회초리를 자초한 느낌이 드는 글이기에, 구독자가 없는 글, 댓글이 적고 하트 수가 적어도 나는 괜찮았다. 근데,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내버려 둔 내 맘이 알림 하나에 반색하는 걸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직 첫 번째 글을 발행한 지 만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난 마냥 벌써 잊혔다고 느껴지는 지루한 반응에 알림 하나로 들뜨다니... 찰나의 기쁨을 순삭 하고, 열어본 알림에는 [글쓰기로 약속한 시간입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에혀~ 꼭 스팸뿐인 메일함을 열어본 기분이었다. 순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글쓰기 알림을 설정을 하고, 혼자서 건필하리라 다짐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뭔가 실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일상이 지루하고 단조로워 쓸만한 글감이 없음을 잊었기에... 그렇다고, 내가 크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는 타입도 아니기에....
알림을 받기 전만 해도, 최근의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마지막 장을 읽고 있었다. 퇴사 후 남들과 같은 삶의 기준에서 노력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행복 기준대로 살기로 한 작가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와 질 때 일상을 얼마나 즐길 수 있었는지, 남이 정한 삶의 기준대로 노력하지 않으니 얼마나 행복한지에 도취되어서, 그래, 이렇게 사는 게 진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일 것이라고, 그런 깨달음을 준 작가에게 단번에 반해 인스타그램이라도 뒤져봐야 되나 이러고 있던 찰나였다. 글을 꾸준히 시간을 정해놓고 매주마다 무조건 열심히 써 보겠다는 나의 다짐 같은 알림은 충분히 무시당할만한 조건을 충족한 상태였다.
'딱히, 글감도, 주제도 없는 데, 뭐!'
라는 내 안의 소리가 더욱더 알림을 무시하시도록 강요했다.
'근데, 남들과 소통할만한 공통된 글감을 찾고, 거기에 뭔가 교훈을 줄만한 주제를 찾아, 남의 시선을 충족시켜 훌륭하다는 인정을 받아보겠다고 글 쓰는 거야, 지금?'
강요된 마음에 반항이 일어났다. 그 반항은 방금 읽은 책의 영향도 있겠지만, 첫 번째 글에서 내가 말한 작가의 조건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단지 책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 작가라며? 글감도 없고, 주제가 없을 만큼 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한 그 느낌까지도 글에 담아서 기쁨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즐거움이든 무엇 하나라도 느끼며 글을 쓸 수는 없는 거야? 글을 쓰며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과정만으로는 행복해 할 수 없는 거야? 하완 작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말하면서 제목만으로는 24시간 방바닥에 누워 하루 종일 천장 벽지 디자인만 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그는 실제로 글을 썼지? 나에게 남의 기준과 시선 때문에 노력하지 말고, 느리더라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내 시선을 의식하여 내 시선의 속도에 맞게 열심히 살라는 울림 있는 글을 선사했지? 남의 기준과 시선에선 자칫 고요한 호수의 물결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고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을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과 기준을 벗어날 때 오히려 자기 인정과 득도 수준의 행복의 새 기준을 발견케 하는 그의 생각이 있는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울림 있는 글이 되었는지... 그가 지금 내 옆에 있었다면 일정 기간 내에 몇 편의 글을 쓰고, 독자를 얼마나 확보해야 될지 목표를 세우고 전념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무언가 쓰고 싶을 때 쓰고, 글이 안 되면 억지로는 쓰지 않고, 글 안 쓰는 기간이 길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지금의 내 상태를 한번 견뎌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 당장 정기적으로 글 쓸 시간을 알려주는 알림부터 지우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 알림이 없어도 나란 인간은 나도 모를 어느 순간에 자연스레 글을 쓰고 있을 테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정과 생각 따라 자연스럽게 쓰인 글. 그렇기에 힘을 빼고 말해도, 친구와 가벼운 수다를 떨듯 끊이지 않았던 주제와 그럼에도 결코 가볍지 만은 않았던 주제를 풀어낸 글. 그거에 반한 거 아녔나?'
아~~~~~~ 벌써 첫 번째 글 속의 작가의 조건을 잊었구나!
하마터면, 열심히 글을 쓸 뻔했다. 일주일에 몇 편 쓸지 계획을 세우고, 남들이 읽어서 무릎 탁 칠만큼 "와아~ 어찌 이리 내 맘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잘 표현했을까?"라는 청량음료를 마신 듯 가슴 시원해질 만큼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낼 공감할만한 글감을 찾고, 정말 공감 백배되어 글을 다 읽은 후에는 위로가 밀려와 절로 눈가가 촉촉이 스며드는 마음 따뜻해질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할 주제를 생각해볼 뻔.. 것도 아니면, 한 번에 맘을 사로잡아 시간의 흐름은 잊게 만들 정도로 단숨에 다 읽힐 만한 재밌는 명랑 상쾌한 글을. 그런 멋진 글을 쓰고 싶어서, 남들의 시선을 끌만한 글감이 없다고 포기하고, 남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던질 만한 주제가 없다고 좌절하여, 남들이 크게 공감하지도 느끼지도 못할 나만의 사소한 좌절 정도 따위는 무시되어도 될만한 감정이라고 느끼며 글 쓰며 오롯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상태를 포기하고, 아예 글을 포기할 뻔했다. 하마터면, 하마터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글 쓸뻔했다. #하마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