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도 주제가 있을 것이다.
- 아직도 글의 주제가 없어서 글이 절망이 되는 순간에 적어보는 글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오후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과 오전에 스포츠센터에서 막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는 엄마는 곧 외출을 할 것이니 너희들은 얼른 샤워하고 점심 먹을 준비하라며 이후 계획을 알려주었다. 물론 땀에 흠뻑 젖었기에 나도 얼른 씻고, 점심을 차리면서 급하게 외출 준비를 서둘러야만 했다. 외출 준비 중에는 내가 몇 시에 돌아올지 몰라서 저녁 식사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까지도 포함되었다.
급한 마음으로 땀이 주는 불쾌감을 참으면서 아이들에게 샤워를 먼저 양보한 채 점심을 챙겨주려는 데, 밥솥을 열어보고는 내 머리를 쳤다.
아이고야~ 어제저녁에 밥을 다 먹었다는 것을 깜빡했네....
혼잣말을 되뇌며, 급한 대로, 아이들에겐 비상밥인 햇반을 대령해서 점심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 미리 저녁밥을 해 놓고 나가면 저녁 준비 시간이 좀 더 여유로울 거 같아서 밥만 미리 해놓을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었다. 또한,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부산한 주부의 움직임으로 아이들이 샤워를 하면서 제멋대로 벗어놓은 옷들을 하나씩 세탁기에 넣었다. 땀냄새라는 것은 집에 남겨둬서는 안 될 나쁜 그 무엇처럼 외출하기 전에 세탁기를 꼭 돌려놓고 가야 될 것만 같았다. 내 옷도 물론, 땀에 젖었기에 나쁜 그 무엇이라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얼른 세탁기를 채울 목적으로 샤워를 서둘렀다. 밥솥에는 밥이, 세탁기에는 빨래가 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로는 외출 시에 그다지 화장을 하지 않는 편이라 외모의 반을 차지하는 머리 스타일만은 포기할 수 없어, 모임 장소로 같이 가기로 한 친구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도 머리 드라이까지 열중했다. 친구에게 천천히 출발해 줄 것을 부탁한 후, 내 우아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듯 머리에 힘껏 바람을 넣어 볼륨을 넣었다. 내 얼굴이 가장 착하게 보일 정도까지의 볼륨을... 정말 결혼한 여자에게 외출은 나만 챙기면 되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집까지 생각할 때에만 허락되는 그 무엇과도 같았다.
여러 방면으로 부산을 떨어서 결국 외출에 성공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들. 약속에 늦어도 누구 하나 무안 주는 친구도, 미안해하는 친구도 없다. 약속 시간은 만날 수 있는 최저치 시간의 의미이지 굳이 시간을 꼭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 최저치 시간에 나온 친구부터 한 두 명씩 차례대로 나타났다가, 순서 없이 가야 할 시간대에 한두 명씩 먼저 일어서도 분위기가 망쳐지지 않는 것이 우리 모임의 특징이었다. 다들 그러려니 하며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 대화는 평화롭다. 설령, 다른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기에 한없이 평화로운 대화가 오갔다. 특정한 주제가 없지만, 우리 나이대(40대 후반)가 되면 으레 주고받게 되는 평이한 주제를 한 바퀴 돌아, 마지막 주제는 브런치였다. 서로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 우리 모임 중에도 브런치 작가가 있었다.
난 글을 쓰고는 싶은 데, 주제가 없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예전에 싸이나 카스 하던 시절에야 여행도 많이 갔고, 육아도 하던 때라 한창 쓸거리가 많아서 글이 절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는 데, 그 버라이어티 하던 시절들을 흘려보내고서, 덜컥 브런치 작가가 되어 보니 뭘 끄적여야 하나 고민이야. 내 직장이야기는 하고 싶지는 않고, 취미생활도 그닥이고, 밀키트로 애들 겨우 밥먹이는 주부라 요리이야기도 못하겠고... 평소, 적어 놓은 글들은 있지만, 특별한 주제 없이 적어본 글들을 어떻게 엮어야 될지 몰라 발행도 못 하고 있고. 특히, 본인 일기는 본인 일기장에 적어야 되는 거 아닐까란 생각에 멈칫하게 되고, 그나마 적어볼 용기를 내어도 이렇다 할 메시지도 정보도 없는 이런 글을 굳이 공유해야 하나 쉽기도 하고, 그러니, 글 쓰는 목적을 못 찾아서 못 적기도 해.
뭘 그리 고민하냐? 꼭, 뭔가 메시지나 공유할 것이 있어야만 적나? 난 내 기억들을 잃기 싫어서 기록한다는 의미가 강해. 하나의 기억 저장소라고 할까? 이래저래 뭐든 생각나는 거 적다 보면, 주제가 보이기도 하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생겨나더라. 주제가 제각각이면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각 생각의 꾸러미를 오늘은 이 폴더에 내일은 저 폴더에 생각나는 관심사대로 하나씩 테마를 만들어가면 되지. 난 12개의 폴더가 있다. 적다 보니, 이야기도 자꾸 가지치기를 하게 되더라. 오늘의 이런 일도 글로 적어봐.
친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전에는 운동 고민을 했고, 오후에는 글 고민을 했고, 저녁에는 밥 고민을 했으면, 각각의 고민을 다 적어보는 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면, 내일도 운동 고민을 하고 밥 고민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다. 아니,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날 수도 있을 테다. 그러면 고민 없이 그때마다 다른 폴더를 만들어 그 고민들을 적고, 또 쌓아나가다 보면, 하나의 주제로 내가 말하고픈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고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주제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할 수도 있지만, 나같이 뚜렷한 주제 없이 무작정 글을 써보기로 작정한 사람도 뭐든 하나씩 생각의 꾸러미를 열어서 글로 적다 보면, 이야기 주제가 하나씩 하나씩 생겨나지 않을까? 친구 말을 곱씹다 보니, 왠지 또 세 번째 글을 발행할 수 있을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훈훈한 맘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인데, 왠지 맘이 편치 않다. 갑자기 문득, 밥솥에 쌀은 잘 씻어 넣었는데, 취사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아~ 내 기억력 부족 탓인 가? 가끔씩 깜빡깜빡하지만, 지나간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고 불안할 때는 꼭 한번 더 확인해봐야 되던데, 집에나 도착해야 확인 가능할 듯 하니, 이래저래 찝찝한 기분이 들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해보니, 쌀이 설익어 있다.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아, 보온 상태였는 데도 밥솥이 따뜻하니 쌀이 밥이 되려다 만 모양새다. 밥솥 한가득해놓은 밥 같지 않은 밥을 다 버릴려니, 어릴 적 다 먹은 밥그릇에 쌀 한 톨이라도 남아있는 게 보이면 농사꾼의 땀인데 그러면 되냐고 호통치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라 한솥 가득 설익은 밥을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고 어찌 제대로 다시 지어보려나 저녁시간 내내 고민하고 씨름을 했다. 배고프다 보채는 아이들에게 또 햇반을 먹이면서 말이다. 고민의 흐름이 글에서 밥으로 순식간에 급변하자, 지난 고민은 쉽게 잊어버리는 나인데, 언제 고민이 충만히 농익어 제대로 된 글 한번 쓸 수 있을까? 이 휴가 기간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기는 한 건가? 갑자기 귀찮음이 확 올라오면서, 주제가 고민이 아니라 절필할까 봐 염려스러워졌다.
아이참~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할 거 같아. 둘 다 망치게 될 거 같아.
안 그래도 브런치의 다양하게 꾸준하고도 뛰어난 글들 속에서 잔뜩 주눅 든 내 맘에 부정적인 감정만 스르르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부정적인 감정은 금새 절망이 되어 맘 속 깊은 데서 일렁일렁 물결을 만들더니 파도처럼 커져 나를 삼킬 듯 위협했다.
저녁밥도 제대로 차릴 정신도 없으면서, 그냥, 이쯤에서 그만둬야지. 회사일까지 병행하게 되면 어쩔래?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야. 그러니, 그만두자. 그러자. 내가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무슨 대단한 작가라고.... 직업이 작가인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그렇게 절망의 깊은 바닷속으로 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습관처럼 무작정 글로 적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다시 정신이 든다.
그래도, 절필하지 말자. 글로 절망하더라도 절망에서 끝내지 말고 그 절망이라도 꼭 적어보자. 절망에도 주제가 있을 것이다. 나를 절망케 한 주제가, 나를 절망에서 구원해 줄 주제가, 내 절망 속에서 보지 못했던 희망의 주제가,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주제가, 내 절망을 밟고 일어선 희망의 주제가 있으리라.
아직은 알지 못해도 곧 알게 될 주제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다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