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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Aug 10. 2022

꽃은 설레임, 꽃은 그리움

- 꽃을 보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일처리를 잘만 한다면 주된 업무는 오전에 끝낼 수 있고,

오후에 회의만 하나 진행하면 되는 일정,

여유로운 일정이라 그런지 퇴근 후 꽃시장 구경 가기로 한 약속은 더더욱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함께 약속한 지인이 꽃시장에 처음 가는 내가 잘 찾아오도록

아침부터 카톡으로 꽃시장 주소를 알려주었기에 사실은 아침부터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꽃을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유독 꽃을 좋아하시고 꽃 가꾸기를 취미로 하는 엄마 때문일까?

꽃 좋아하는 것도 어쩜 유전일까 싶으리만큼 꽃은 늘 나를 설레게 함과 동시에,

꽃은 나를 그리움에 젖게 한다.


사실, 나는 엄마에게는 다정함이라곤 1도 없이 무척 퉁명스럽고 깐깐하기까지 한 못되고 못난 딸이다.

아버지 생전에는 딸임에도 엄마보다는 아빠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엄마는 가끔 싫은 내색을 보이기도 하셨고, 아버지와 사소한 다툼이라도 있는 날에는 같은 여자임에도 내가 엄마 편이 아닌 것 같다며 속상해하셨다.

외모도 성격도 아빠를 많이 닮은 편이라,

아빠가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모습들은 사실 나조차도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령, 아빠는 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먼저 나서야 하는 타입이라면,

엄마는 서두른다고 서두르지만, 늘 약속에 늦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두 분이서 외출을 나설 때면 늘 옥신각신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늘 공주 모시듯 자가용 뒷좌석에 엄마를 태우고 외출하던 그 풍경은 이제 더는 볼 수 없지만,

대역 배우를 쓴 듯, 아빠 역할이 내게로 고스란히 넘어와 엄마와의 외출이 있는 날이면

엄마, 아빠 주연의 일상 드라마가 이제는 엄마와 내가 주연인 드라마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아빠 역할을 내가 넘겨받아서인지, 아직도 약속 시간에 늦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이해보다도,

왜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이렇게 꾸물거리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던 아빠가 느끼던 그 감정, 그 기분이

지금 내가 느끼는 그 감정, 그 기분이었을까 싶어 이미 고인이 돼버린 아빠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될 때가 있다.

그렇게 티 내지 않으려 해도,

여자라고 하기엔 이젠 할머니가 되어 퇴색해버린 육감을 가졌을 뿐인 엄마임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난 철저히 아빠를 닮은, 아빠 편인 사람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엄마를 닮은 유전자가 있었으니, 엄마처럼,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꽃을 좋아한다기보다 엄마를 이해하는 맘이 좀 더 커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는 덤덤했던 엄마에 대한 마음이

이젠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그리움만큼, 꽃만 봐도 살아 계신 엄마가 그리운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4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밤마다 눈물을 훔치시는 엄마가

활짝 웃거나 미소 짓는 경우는 꽃을 볼 때뿐이라는 걸 알기에, 꽃은 엄마의 미소가 되는 것이다.  

어떤 꽃을 보던지, 이 이쁜 꽃 울 엄마한테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싶은 맘이 드는 것이다.

이쁜 꽃이 피는 계절이 된다던지, 이쁜 꽃이 핀 공원이 있다던지, 이쁜 꽃이 있는 관광지나 축제가 있다던지

하여튼 어찌 되었던지 간에, 꽃이 있는 곳에는 아빠가 그러했듯이,

약속시간에 늦은 엄마가 빨리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차 시동을 먼저 걸어 히터를 켜고 좌석을 데우며 흘러나오는 라디오에 주의를 기울이다

운전석 뒷 칸에 엄마가 앉고 안전벨트를 하면, 제발 좀 빨리 내려오라고 채근을 하게 되면서도

안 간다는 소리는 절대 하는 일 없이 고이 차를 몰아 꽃이 있는 곳으로 모셔가는 게

이제는 엄마에 대한 내 사랑 표현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무심하고 다정다감한 면이라고는 1도 없는 딸 같지 않은 딸이라고 하신다.

울 집 베란다의 꽃들이 방치되는 거 같아 불쌍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내가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어딨냐며 불퉁거리는 이 딸이 못마땅해서

내가 직장 가고 없을 때 울 집에 한 번씩 들러 꽃에 물을 주고 가시는 엄마... 아니, 어머니

이제는 치매약을 챙겨 먹을 정도로 깜빡거리는 경우가 조금 더 잦아진 엄마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방치하다시피 베란다에 내팽개쳐 둔 이 꽃들을 나 대신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방치하다시피 해서 사실 꽃이 폈는지도 모를 만큼 무심하게 넘어갈 때 많았듯이,

엄마가 치매약을 먹게 될 만큼 늙어버렸다는 것도 종종 잊을 만큼 무심할 때가 많았지만,

이제 큰 화분은 무거워서 옮기기 힘드니 큰 화분은 다 버려야겠다고 말하면서도 키운 정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짠~해하시던 엄마의 모습,

이제 매일 물주는 일도 귀찮아서 꽃 그만 키울래 하시면서도 여전히 꽃화분을 정성스레 돌보던 엄마의 모습,

울 집 베란다에서 노래진 잎새들을 정리하시며 화초는 이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잔소리하시던 엄마의 모습들이

이제는 꽃처럼 내 가슴속에 하나씩 하나씩 피어서 엄마라는 고운 꽃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엄마에겐 내가 표현을 잘하지 않기에 여전히 다른 편처럼 느껴지는 곰살맞지 않은 딸이지만, 어느새 나에겐 꽃이 돼버린 울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세상의 꽃이란 꽃은 다 보여주어 환하게 웃게 만들고픈 울 엄마..

엄마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꽃은 분명 설레임이다.

꽃만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는 건 ,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내 가슴속에 쌓아 온 엄마에 대한 추억들 하나하나가 이제는 그리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종종 도어록 비밀번호마저도 깜빡하는 일이 잦아져 알약의 개수가 늘어날 일만 남았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화초를 가꾸며 미소 짓던 엄마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드는 꽃은 분명 그리움이다.

뛰어난 적응력과 강한 생명력으로 계절 상관없이 언제나 꽃 피우는 제라늄처럼,  

엄마도 곱게 오래오래 계속 피어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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